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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Dec 06. 2019

맨홀


2014. 금색 숫자가 반쯤 지워진 수첩을 펼쳤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그 이름 앞에 서면 알아보리라는 것을 윤은 알고 있었다. 그것 앞에서 피가 반응할 거라고. 주소록이라 따로 나뉜 것도 없는 수첩에서 가나다순으로 기록된 연락처의 이름을 눈으로 좇아 내려갔다. 강영순, 강영호, 강영민. 낯익은 외가 식구들의 이름을 지나 명희(여의도 떡집), 지욱(정금당)처럼 상호로 통용되던 사람들 무리를 끝까지 통과할 무렵 최무영이라는 이름 앞에서 눈길이 멈췄다. 아마도 이 사람이 맞을 것이다.


최무영, 엄마가 늘 그 인간, 혹은 그 사람이라고 했던 이의 이름이었다. 잠결에 이모와 삼촌들 대화에서 묻어 흘려들었던 이름이었다. 최무영 그 작자, 혹은 최무영 그 인간으로 묶여 불렀던 이름. 누구도 윤에게 그가 누구인지 말해 주지 않았지만, 윤은 알고 있었다. 그가 맞을 것이다.


윤은 휴대전화를 꺼내 최무영의 전화번호를 따라 눌렀다. 새로운 연락처 등록. 이름을 뭐라고 저장해야 하나 고민하다 문자 그대로 입력했다. 최무영. 세 글자를 또박또박 새기듯 누르고 저장 버튼까지 누르니 32년 간 윤의 인생에서 부재했던 최무영이 손가락 끝부터 시작해 몸 전체에 깊숙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최무영.


아버지 이름을 적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정환경조사서 같은 신상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는 것은 늘 엄마 몫이었다. 윤이 태어날 때부터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부재를 알고 싶지 않았다. 가끔, 외가 친척들의 입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실재를 눈치채긴 했으나 있어도 없는 척했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 속에서 윤의 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사는 게 가당치 않은 사람이었고, 심지어 남들처럼 일가를 이루어 새끼 낳고 잘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며 강 씨 집안사람들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인간이었으므로, 윤은 모르고 싶었다.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 실체였다. 그런 인간의 피를 반이나 받고 태어났다는 사실 만으로 이미 윤이 가진 원죄는 충분했다. 뭔가를 더 알아 내 죄의 질과 크기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30년을 넘게 가리고 살았다.


그러나 눈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진실을 덮고 있던 눈. 윤의 생 전체를 걸쳐 아주 조금씩. 사실의 바닥을 드러나게 하는 삶의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실재의 민낯을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오고 있었다. 가림막이 되어준 삶, 32년의 시간 동안 윤과 단 둘이 생활하며 채 다섯 번도 아버지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엄마의 삶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딛지만 않았더라면, 그 날 약속이 미뤄지지만 않았더라면, 눈은 조금 더 천천히 녹거나 아니면 더욱 단단히 뭉쳐졌을 수도 있었을까?


안타까움과 다급함이 혼재된 구급대원의 목소리와 건조한 의사의 목소리가 뒤섞였던 그 날 오후, 윤은 외근 중이었다. 회사 선배와 신호를 기다리며 주머니 속 담배를 만지작거리다 전화를 받았다.




‘아드님을 찾으시네요.’




엄마는 아파트 1층 계단에서 미끄러졌다고 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쓰러진 엄마를 발견하고 119를 불렀고, 구급대원의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윤의 놀라움은 크지 않았다. 구급대원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 엄마의 상태를 전해 듣고 나서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걸려온 전화는, 작은 우려라고 믿고 싶었던 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는 곳으로 몰아갔다. 그곳은 어둡고 끝없는, 깊고도 아득한 맨홀 같았다. 나갈 수 있을까. 다음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의식을 잃으셨어요.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할머니! 눈 뜨세요! 할머니, 주무시면 안 돼요! 할머니, 눈 감지 마세요!’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윤 또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깨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어떤 여지도 없다는 단호함의 커튼. 의사가 친 것은 응급실 침대의 우윳빛 천 조각이었으나 윤 앞에 보이는 것은 카메라 필름 같은 불투명한 갈색의 아크릴 판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고 걷어낼 수 없는 두껍고 무거운 판. 잠에 빠진 사람처럼 눈을 감은 엄마도 그랬을까? 윤을 낳는 순간, 혹은 윤을 가진 걸 알았던 순간, 최무영, 그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다 엄마에게 고한 순간 아니면 계단을 헛디뎌 미끄러지던 순간, 머리를 부딪치며 쓰러지던 순간. 엄마에게도 아크릴 판이 쳐졌을까? 삶의 어느 순간, 어느 때에 예고 없이 내려오는 그것을 윤은 처음 인지했다. 이 판은 그대로 닫히는 장막 같은 것이었다. 앞으로 전혀 다른 시간이 시작될 거란 예고편. 있던 것이 사라지고 없던 것이 생겨났다. 심연으로 꺼져가는 엄마의 낡은 수첩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만져본 적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지만 그는 윤의 아버지였다. 호주 최무영으로 시작하는 호적등본 맨 마지막 장, 윤의 이름과 나란한 엄마의 이름이 말하고 있었다. 윤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마지막 장에, 엄마는 그의 인생에 거의 숨겨지다시피 들어 있었다. 그런 지금에 와서 윤이 앞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막은 내렸으나 빛은 보였다. 불투명한 갈색의 판 뒤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것은 진실이었다. 한쪽의 진실. 나머지 반은 이제는 확인할 길이 없으므로. 윤은 그게 무엇이든 지금 확인해야 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또 무엇인가. 이번 장에서 밑줄을 그어야 하는 것은 그 답이었다. 윤은 전화기에서 초성을 입력했다.




ㅊㅁㅅ.




의지와 다르게 손가락은 자꾸 엉뚱한 글자를 눌렀다.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ㅊㅁㅇ.


딩동댕동댕, 통화연결음이 나오자 윤은 전화기 화면을 다시금 확인했다. 최무영. 받을까, 그가? 엄마 전화로 걸 걸 그랬나. 연결 중 글자를 내려다보다, ‘여보세요’ 목소리에 재빨리 귀를 갖다 댔다. ‘여보세요’ 한 번 더.




“윤이에요.”




윤이 서 있는 이곳과 어딘가의 저곳, 전화기 이편과 저 편 사이에서 매미가 울었다. 찌르르르, 에에 앵앵. 찌르르르, 에에 앵앵.




“최 윤이에요.” 다시 한번 매미가 울었고, 그가 대답했다.




“어, 그래. 윤아.”




윤은 상상했었다. 누구냐고 물으면 어쩌나,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강정순 씨 아들입니다,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끊어 버릴까. 왜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고 그가 먼저 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 윤아.”


그런데 그가 말했다. 그래, 윤아.




“뵙고 싶습니다.”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먼저 꺼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나와 엄마를 버리고 간 사람이었다. 윤의 생각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가족의 판결이었다. 그는 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윤과 윤의 어머니를 버리고 간 사람이었다. 버림받음은 서른 두 해 동안 윤의 언어였다. 그런 사람에게 먼저 만남을 청하지 않으리라 속을 단단히 다지고 있었다.




“그래, 윤아.” 그는 또 같은 말을 했다.




“엄마가 쓰러지셨어요. 의식이 없어요.”


그래, 윤아 한 마디에 또 두서없는 말이 쏟아졌다.




“그래, 그렇구나. 윤아.”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답니다. 오래.”




그는 또 같이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윤아.”




그 대답에 윤은 또 저도 모를 말을 뱉었다.




“뵙고 싶습니다.”




그가 또 같은 말을 했던가, 모르겠다. 윤은 그가 불러 주는 주소를 받아 적었다. 찾아올 수 있겠냐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여의치 않으면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라고 그는 진짜 아버지 같이 말을 이었다. 용인 어딘가에 있는 제조 공장이었다. 윤은 알아서 찾아가 보겠노라 했다. 전화를 끊고 윤은 모르는 세계, 알지 못하는 시간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알아내려 해도 알 수 없을 엄마의 아크릴판 저편의 세계. 깊이 잠든 엄마를 깨워 묻고 싶었다. 그는 왜 우리를 버린 거죠?


목구멍에 호스를 낀 엄마는 대답해 줄까? 지금까지 꽁꽁 숨겨 없던 일처럼 살아왔던 사람이 이렇게 쓰러져서 마음이 약해졌다 한들 꿈에서라도 윤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없던 것처럼 살아왔던 윤은 지금껏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 아무것도 물을 게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내 이름을 아는 그가, 아버지처럼 구는 그가 우리를 버린 게 맞을까? 엄마의 진실, 뒷면은 무엇일까?




지하철역에서 내려 그가 알려 준 버스를 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와이퍼가 두어 번 빗줄기를 걷어냈다. 잠시 후, 와이퍼는 쏟아지는 빗방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물에 빠진 이가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리듯 소용없는 힘을 쓰며 앞 유리에 쌓이는 물을 밀어내고 있었다.




“올여름은 비가 지겹게도 안 오네 했더니만 이게 뭔 일이여? 누가 구멍이라도 뚫은 겨?”




앞좌석에 앉은 노인이 연신 창에 들어찬 습기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던 윤도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봤다. 버스의 안내 방송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어이, 젊은이 어디까지 가는가?”




노인이 등을 돌려 윤에게 말을 걸었다.




“오산리요.”




“오산리? 거 맨 흙길에 이렇게 쏟아지면 있던 길도 없어지는데, 거기는 무슨 일로 가나? 어이, 김 씨. 여 오산리에서 내린단다.”




노인은 윤의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말이 끝나자마자 버스 기사를 향해 외쳤다. 버스 승객은 윤과 노인뿐이었다. 운전기사는 아무 말 없이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느리게 헤엄치듯 도로를 구르던 버스가 멈춰 섰다.  




“여기가 오산린데, 내릴 겁니까?”




버스 기사가 백미러로 윤을 올려봤다. 빗물에 가려진 창밖으로 동그란 버스 표지판이 보였다.  




“네? 네.”




버스 기사의 물음에는 정말 내릴 거냐는 되물음이 들어 있었다. 진짜 내릴 것인가, 정말 그를 만나러 갈 것인가.




“아이고, 여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이 차 타고 종점서 기다렸다가 비 좀 그치면 가지. 여간해서 거 못 걸어갈 긴데.”  




노인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윤은 버스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마지막 계단은 바로 불어난 빗물과 맞닿아 있었다. 찰랑찰랑 강물 같기도 파도 같기도 한 물 너 미가 버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버스 표지판 둥치는 빗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땅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어이쿠, 소리가 나왔다. 불어난 빗물에 바닥이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삐이, 버스 문이 닫히고 우산에 부딪히는 빗방울에 모든 게 묻혔다. 한 발이 앞서서 뒤 엣발을 끌었다. 정강이까지 찬 물에 한 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이 길로 곧장 올라가다 저 위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돌면 바로 공장이 있다고 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왼 발을 앞으로 끌었을 때 발 닿을 땅이 없는 걸 알아차린 것은. 어어엇! 비명과 함께 나머지 몸이 왼 발을 따라갔다. 코에서 흙냄새가 났다. 물은 질컥였다. 따갑기도 부드럽기도 했다. 버스 창 와이퍼를 보며 물에 빠진 사람의 손놀림을 상상했던 게 떠올랐다. 지금 내 꼴이네, 윤도 손을 위로 들어 뭔가를 잡아 보려 했지만 걸리는 게 없었다. 엄마는 윤을 낳을 때, 윤이 작아 수월했다고 했다. 산도가 열린 지 하루가 지나도 아이가 자궁 아래로 내려오지 않아서 간호사가 배를 눌렀는데, 아이가 쑥 내려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떠올렸다. 점점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지금이 그때 같았다. 이제 더 있고 싶어도 못 있는 건가, 그래 윤아.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싶어요. 그래 윤아. 아버지는 제 아버지인가요, 아버지의 시간은 무엇이었나요, 아버지는, 아버지였나요. 그래, 그래, 윤아. 윤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코 속은 흙이 가득했다.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다. 엄마는 잠들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래, 윤아. 그래, 그래, 윤아.  




“아이고! 김 씨, 여 잡어! 여기, 여기! 됐네, 됐어! 나왔구먼, 아이고! 비 때문에 누가 맨홀 뚜껑을 열어 뒀구먼. 그래도 여봐, 여봐! 다행이네, 젊은이. 수로가 막혔기 망정이지 아니었음, 아이고야! 곧 119 올 텡게 괜찮여. 거봐, 김 씨. 내 뭐랬어. 이 젊은이 뒤통수가 밟히더라니께. 그래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아이고야, 그새 뒤통수가 사라져 버리더라고. 귀신 하나가 붙잡고 아래로 휙 끌고 들어가는 줄 알았다니께. 아직은 이 생 목숨인 거여, 젊은이.”




그래, 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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