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물메기 동네
겨울 땅거미가 어둑해질 무렵, 만선의 깃발을 단 금양호가 우렁찬 뱃노래를 울리며 선창으로 들어왔다. 삼색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본 엄마는 “오늘 메기 많이 잡았나 보다” 하며 갱번 외갓집으로 내려갈 채비를 서둘렀다. 눈만 내놓은 털모자를 쓰고, 몸뻬 바지를 두세 겹 껴입는다.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메기를 다듬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물메기는 열 마리를 한 뭇, 백 마리를 한 동이라 불렀다. 풍어의 날이면 열 동이 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한밤중까지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피곤함도 잊은 채 손질을 이어갔다. 큰 대야 위에 나무 도마를 놓고 메기를 올리면, 시린 손끝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배가 들어오면 활어차가 큰 메기들을 서로 받아가려고 대기한다. 하지만 말려서 팔면 더 비싸게 팔 수 있기에 조금은 생물로 판매를 하고 보통은 손질용으로 남겼다. 메기는 버릴 게 없는 생선이었다. 부드러운 알은 따로 모아 판매를 했고, 통발에 같이 딸려온 억센 알은 오도독거리는 식감이 좋아 주로 된장국에 넣어 먹었다. 통으로 말린 메기는 껍질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된장국에서 건져낸 주먹만 한 알을 손에 쥐고 오독오독 씹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뱃일을 하는 집 아이들도 늘 일꾼이었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메기를 씻어 헹구거나, 건조대에 한 마리씩 걸어주는 게 일이었다. 메기는 겨울 바닷바람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건조되었다. 그렇게 잘 말린 메기는 겨울철 최고의 별미이자 특산품이었다.
선창가는 연일 만선으로 돌아온 배들로 북적였다. 물메기들이 쏟아져 들어오면 사람들은 서로 조업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었다. 바닷가 사람들에게 물메기는 노다지 같은 보물이자 생계 그 이상이었다.
일을 놓지 않는 엄마의 손은 늘 바빴다. 손질이 끝나면 회를 떠서 저녁상에 올리거나, 시원한 메기국을 끓였다. 통통한 흰 살은 담백하고 국물은 시원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 맛만은 잊히지 않는다. 겨울철 메기가 넘쳐나면 집집마다 메기국 냄새가 가득했고, 고양이조차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흔했다. 푸른 지붕마다 메기가 가득 널려 있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갱번에 내려가는데, 아버지가 메기를 바지게에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계셨다. 겨울 바닷바람을 견디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발걸음은 무겁고 묵직했다. 나는 그 무게가 얼마나 힘겨울지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뒤에서 지게를 밀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대신 지게를 메기도 했다. 바지게에 한가득 담긴 생메기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다.
'아버지 지게 주시다'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힘에 부친 날엔 말없이 지게를 내어주셨다. 그날 이후, 아버지가 힘겨워 보이면 내가 지게를 이어받았다. 묵직한 바지게를 지고 앞장을 설 때면, 괜스레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을 잘 모셔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다 이루지 못한 그 다짐은 세월이 흘러 아쉬운 눈물로만 남았다.
겨울이면 마당은 덕장으로 변했다. 기다란 나무를 기둥 삼아 메기를 빼곡히 널었다. 바짝 말린 메기는 상품으로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다. 반쯤 말린 피데기 메기는 조금 부드러워 아이들의 간식용으로 인기가 많았다. 겨우내 물메기를 말리는 동안 마당은 온통 특유의 메기 향으로 가득 찼고, 봄이 오기 전까지 우리 마을은 늘 메기 냄새가 풍겨 나왔다.
출출한 밤이 되면 고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남새밭 창고에 서리를 하러 오기도 했다. 다들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다. 살짝 말린 물메기를 불에 구워 초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으면, 세상 어떤 간식보다 맛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학생이었지만, 어른이 되고 싶던 철없는 청춘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외갓집 배의 선장을 하셨다. 그러다 우리 집도 배 한 척을 건조했고, 이름을 해영호라 지었다. 만선의 깃발을 달고 고사를 지내던 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축하했다. 대나무 작대기에 색색의 깃발이 펄럭이고, 사람들의 웃음과 환호가 선창을 가득 메웠다.
얼마 전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보다가 그 시절 풍경이 떠올랐다. 깃발이 바람결에 나부끼던 모습, 고사를 지내던 아버지의 얼굴, 메기 냄새와 겨울바람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화면 속 장면과 내 기억이 겹쳐지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겨울, 지게 위에 얹힌 것은 메기였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짐은 가족을 짊어진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나는 어린 어깨로 지게를 함께 졌다.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영영 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셨다.
그 무게를 함께 졌던 기억은 이제 눈물로만 남아 내 가슴을 적신다.
첫 아이를 낳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왜 그렇게 빨리 가셨나요."
*주시다: "주세요"라는 뜻의 남해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