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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 Aug 22. 2020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 <부활>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전하는 사랑

내게는 보통 두 종류의 영화 감상법이 있다. 영화관 한가운데 앉아 팝콘을 씹으며 보거나, 집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대개는 눕거나 엎드리는 편이다) 보거나. 후자의 경우엔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전자를 택한다면 꽤 까다롭게 영화를 고르는 편이다. 왜냐면 큰 스크린과 영화관이 주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그에 걸맞게 영상미가 뛰어나거나, 사운드가 빵빵하거나, 몰입이 필요한 영화를 고른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며 예매를 부탁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故이태석 신부님과 남수단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울지마 톤즈>의 후속작, <부활>이었다. 나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런 건 꼭 영화관에서 안 봐도 되지 않아? 나중에 다운 받아서 집에서 같이 봐." 완곡한 거절이었다. 되돌아보니 매우 쓰레기 같지만 상영관과 시간대도 별로 없었고, 장마라 비가 와서 귀찮았다. 나이가 많은 엄마는 이런 부분에서는 내 의견을 잘 수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강경했다. 상영관이 없어지기 전에 이 영화를 꼭 봐야겠노라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때 <부활>을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故이태석 신부님과 막내 브린지

<부활>은 신부님이 세상을 떠난 후, 톤즈에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기 때문에 미장센 같은 건 기대하기가 어렵다. 사운드도 거의 날 것의 느낌이다. 심지어 나는 영화 시작 전, 밀크셰이크를 먹어 입안이 굉장히 텁텁한 상태였고 비에 젖어 꿉꿉한 발도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기 수단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너무도 많아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고 다른 하나는 손만 대면 금방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이곳 아이들의 눈망울이다.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너무 커서 왠지 슬퍼지기도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흘러나오는 감탄사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연발됨을 느낄 수가 있었다.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태석 저


한순간에 빠져들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그 눈망울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 묻지 않은 눈망울들이 오직 한 사람만을 간절히 부르고 있었다. 신부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놀라울 정도였다. 눈이 먼 할머니에게 제작진이 사진을 건네자, 할머니는 손으로 조심스레 사진을 더듬어 사진 속 신부님에게 오래도록 입을 맞췄다. 나의 가족도 아닌 사람을 이렇게까지 그리워할 수 있을까? 문화도 피부색도 다른 지구 반대편의 사람을 이렇게까지? 처음엔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의문은 금세 해결됐다. 신부님은 톤즈의 사람들에게 병원을 선물하고, 학교를 선물하고, 음악을 선물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사랑이었다. 신부님은 톤즈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갖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마음을 내어 보였다. 그들은 아마 신부님의 피부가 파란색이고, 외계인이었어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톤즈의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

개인적으로,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존재에 높낮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건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의 격차를 말하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겪는 아이들, 매매혼에 내몰린 여성들, 모두가 꺼려하는 한센병 환자까지. 故이태석 신부님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다.

  

음악을 선물 받은 아이들

"총과 무기를 녹여 트럼펫과 클라리넷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총성과 고통의 신음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이 음악을 만나고 한 말이다. 故이태석 신부님은 전쟁을 겪으며 자란 아이들이 보통 아이들과 같은 상태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에게 음악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당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이 음악이었기에, 톤즈의 아이들 또한 음악으로 치유받으리라 믿은 것이다. 하릴없이 동네를 서성이던 아이들은 신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저마다 악기를 잡았다. 그 결과, 아이들은 활기를 되찾은 것은 물론, 남수단 최초의 브라스 밴드로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아순타 씨

故이태석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남수단은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라는 것이다. 남수단에서는 딸을 낳으면 최대한 예쁘고 보기 좋게(?) 기르는데, 이것은 여자를 인격체로 존중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수단에서는 대개 결혼을 하면 남자가 여자의 집에 소를 지불한다. 그러면 여자는 지불받은 소값만큼 평생을 고생하며 산다.(심지어 본인이 소를 받는 것도 아닌데!) 때문에 여자가 예쁠수록 남자 측에서 지불하는 소가 많아지는 것이 이곳의 이상한 진리다. 

 

톤즈의 딸내미 중 하나였던 아순타 또한 매매혼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아순타를 위기에서 구해줄 故이태석 신부님은 이미 세상과 작별을 고한 뒤였다. 당시 절망에 빠진 아순타를 구해준 건 바로 신부님의 형, 故이태영 신부님이었다. 이태영 신부님은 아순타를 한국으로 데려와 이화여대 어학당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왔다. 원치 않는 결혼으로 평생 소값을 치르며 살아야 했을 아순타는 이화여자대학교 신소재공학과를 당당히 졸업하고 톤즈로 금의환향했다.      


故이태석 신부님의 진찰을 바라는 사람들

남수단에는 신부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의사이자 성직자였던 故이태석 신부님의 방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이 찾아왔고, 먼 곳에서 찾아온 그들을 내칠 수 없어 신부님은 하루 300명가량의 환자를 돌봤다. 하지만, 제 발로 찾아올 수 없는 환자도 있었다. 한센 마을에 사는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발이 썩어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없는 그들을 신부님은 직접 찾아갔다. 신부님이 방문하지 않으면 좀처럼 치료받을 기회가 없는 한센인들은 늘 신부님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한센인들의 삶은 예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마을을 찾아와 성심성의껏 그들의 상처를 돌봐줄 사람은 사라졌으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사람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화 제목이 <부활>이라는 것이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 것일까?


흰 가운을 입은 톤즈의 청년들

신부님이 돌아가신 지 약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훌쩍 큰 아이들은 청년이 되었고, 톤즈에는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무려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의사, 약사 등 의료계 종사자로 자란 것이다. 청년들은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하나같이 말한다. 신부님이 생전에 보여주셨던 사랑을 자신들이 계속 이어가겠다고.


비록 故이태석 신부님의 육신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두었던 조그만 씨앗이 이제는 그 어떤 것보다 탐스러운 열매가 되었다. 그리고 이 열매는 다시 씨앗이 되고, 또 다른 열매를 낳을 거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아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는 그렇게 계속해서 부활할 것이다.





이미지 : <부활>, <울지마 톤즈2:슈크란 바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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