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일 또 만나
라디오에서 ‘시간을 훔친다’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시간을 훔쳐서 라디오를 듣고 있어요. 훔친 시간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요’ 등. 그 순간 나도 시간을 훔치고 있었다. 60세 후반의 두 사람의 시간을 매일같이 꼬박꼬박 훔쳐 쓰고 있다. 보통은 주중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대략 6시간 정도. 가끔은 주말에도 틈만 나면 훔쳐댔다. 6시간의 훔친 시간으로 출산으로 뒤틀린 몸을 끌고 요가와 필라테스도 하고, 식물이 궁금해 가드닝 클래스도 듣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이제 막 잡고 서기 시작한 아이를 100일이 막 지나자 마자부터 부모님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시간만큼은 새벽에 못 잔 잠을 보충하려고 했는데, 기질 때문인지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아니다. 아기가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잠에 쓰기에 아까웠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나에게는 잠보다 육아 말고 ‘딴짓’이 휴식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오전 4시간 정도였는데, 이것저것 배우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점심 먹을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고, 아기를 데리고 와서 밥을 먹는 거보다 밥을 먹고 아기를 찾으러 가는 것이 훨씬 간편한 일이라 시간이 점점 늦춰져 지금처럼 오후 2시가 돼버렸다. 아기 이름을 받으러 갔을 때 사주도 봐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아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아기는 사주처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안녕만큼 양가적인 단어가 있을까. 반가움을 표현하거나, 아쉽지만 다음 만날 때까지 당신의 ‘안녕’을 고대하며 잠시 헤어지는 순간에 하는 안녕. 아기를 데려다주면서 ‘안녕~’이라고 손을 세차게 흔들며 인사를 해준다. 아직 어린아이를 맡기고 딴짓을 하러 간다는 게 처음에는 죄책감도 들고 신경 쓰였었다. 그래서 더 세게 손을 흔들면서 안녕이라고 힘차게 인사를 한다. 100일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할머니 집에 갔다 오면 박수나 도리도리 등을 배워오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는 엄마가 아기가 안녕을 할 줄 안다고 했다. 아마 아기를 맡기고 내가 흔드는 손과 아기를 찾고 집에 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하는 안녕을 많이 봐와서인지 금방 습득한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쓰였다.
시간을 훔쳐서만 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내 시간도 훔쳐지고 있었다. 대를 이어오면서 시간을 훔치고 훔쳐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 시간을 뚝 떼어내서 아기에게 주고 있듯이, 내가 어렸을 때에도 엄마의 시간과 젊음을 훔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아기를 맡기면서 다시 한번 엄마 아빠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함이 가득했다. 가까운 미래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엄마 아빠의 ‘안녕’을 빌며 ‘안녕’하고 인사할 수 없을 수 도 있겠다. 아기를 맡기면서 그 시간을 당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말은 언제나처럼 마음과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튀어나오기 일쑤다.
안녕. 내일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