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반했던 알로카시아는 펜션 통창 앞에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아이였다. 통유리창은 마치 액자처럼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담고 있었다. 햇볕이 강해 한겨울에도 보일러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유리 안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해가 뜨고 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매일 보면서 자란 알로카시아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곳의 알로카시아가 나와 남편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렇게 알로카시아는 위시리스트 상단에 올라갔다.
화원에 간 날 그때의 알로카시아와 비슷한 알로를 발견했다. 1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안방 TV 옆에 알로카시아 특유의 고운 잎선을 뽐내며 매일 아침인사를 해주었다.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장이던 잎 옆에서 새순을 뽑아내고 있었다. 새로 나온 잎은 원래 있던 잎보다 훨씬 컸다. 그 후로도 세 번째 잎을 내어주었다. 새로운 잎이 나오자 원래 있던 구엽이 고개를 푹 떨구더니 점점 노랗게 변했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신엽이 나오면 구엽은 하엽이라는 상태로 변한다고 했다. 점점 노랗게 변하면서 말라가는데 초록색 잎들 사이에 있으니 보기가 안 좋았다. 떼 버리려 했더니, 하엽이 자연스럽게 질 때까지 기다려야 된단다. 하엽 지면서 그 잎이 가진 영양분들을 다른 잎에게 전달해주고 간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희생정신이 투철한 식물인가.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몸을 바쳐 자식의 첫 영양분을 제공하는 거미가 떠올랐다.
손목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손등 쪽으로 손목을 조금만 각도를 올려도 안쪽에서 시큰거림이 느껴졌다. 출산 후에 손목을 과하게 사용해 그런 것이라 했다. 병원에서 인대강화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자 조금씩 괜찮아졌다. 조금 살만해지자 병원을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다시 시큰거리는 손목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되었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엘리베이터에는 혼자였다. 자연스럽게 거울을 보게 되었다. 거울에는 코로나와 마스크 때문에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에는 주름살이 늘고 주근깨가 생긴 30대 후반의 여자가 있었다. 그날따라 스포츠 브랜드의 아노락 바람막이를 입고 갔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부조화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옷은 젊으나 내 피부는 늙었다. 하엽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내 늙음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고 있었다. 말하다 보니 눈물이 찔끔 났다.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기가 갑자기 휙 돌아보더니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또 돌아보더니 안아서 토닥토닥 두르려 주었다. 그렇게 장난감-엄마 토닥토닥을 세트로 네 번 정도 반복했다. 눈에는 흐르던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는데 입은 웃고 있었다. 아기의 반복 행동이 너무 기계적이라 웃겼고, 10개월 동안 어르고 달래기만 하던 아기가 나를 어르고 달래는 순간이 오다니. 10개월 동안의 시간과 내 주름살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