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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May 16. 2024

당신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광주송정역


  왕자와 공주처럼 이분법적으로 세계를 나누는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내게 남은 선택지가 운명과 기회 중 하나뿐이라면 나는 기회를 사냥하는 쪽이다. 얌전한 공주처럼 성벽 안쪽에서 비바람을 피하는 일 따윈 아무래도 나와 맞지 않는다. 열 살의 나도, 스물의 나도, 서른의 나도 늘 한결같았다. 나는 나침반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나침반을 보는 방법을 배우는 편이 좋다. 삶을 살아내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으로만 느껴졌던 지도를 보는 방법을 배우고, 목적지를 정하고, 무기를 손질하며 가시넝쿨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그것이야 말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날 새벽까지 일정을 마치고 밤을 고스란히 샌 채 목포행 기차에 올랐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출발 전까지 카페에서 글을 쓰다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했다.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는데 선엽이 먼저 카페에 도착했다. 정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해보니 이제 막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듯 싶었다. 인프피답다 생각하고 있는데 선엽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민주야. 너 이렇게 일이 많아서 여행은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지. 왜 못해.”

  “아니, 여행 가는 데 노트북을 챙겨 오는 애가 어딨냐.”

  “아.. 기차 안에서 쓰려고 했지. 숙소 도착해서도 할 일이 없을테니까 혹시나 해서.”

  “이렇게 여유가 없어서야.”


  선엽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컵 바닥에서 찰랑이던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입 안에 달콤하고 쓴 감각이 느껴졌다. ‘이렇게 여유가 없어서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려고.’ 문득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게. 내가 이런데 다짜고짜 여행을 가겠다고. 그것도 없는 시간을 쪼개어 악으로 깡으로 광주에 가겠다고 티켓을 구매했어. 참 나답지 않네.



  절반은 몽롱한 상태로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탑승구를 찾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정원은 예상했던대로 아슬아슬하게 출발 시간에 맞춰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여행을 즐긴다거나 자주 다녀보지 않았기에 기차를 타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특히나 KTX는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2시간이면 전라도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도 내심 신기했다. 노트북을 챙긴 것은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나는 노트북을 품 안에 안은 채로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눈썹과 눈썹 사이로 한 번 쏟아진 졸음은 역에 도착할 때까지 깊은 잠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도착했을 땐 머리가 개운했다. 전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웬걸 하늘이 돕는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오와. 광주 진짜 처음이야.”


  정원이 서울보다 기온이 높은 것 같다며 손목에 차고 있던 머리끈을 입에 물었다. 하나로 질끈 묶는 동안 나는 역 밖의 광주를 바라보았다. 내가 광주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광주구나. 그리고 광주역에는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고?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아무래도 광주역을 거점으로 환승을 하는 승객도 있는 반면, 나처럼 여행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도 제법 보였다.


  “여기 오기 잘했지?”


  나는 창밖으로 광주의 풍경을 마구 담고 있는 친구들에게 씨익 웃어보이며 물었다. 친구들은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올렸다. 경주보다 광주네. 진주보다 광주고. 민주보다 광주네! 선엽이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뭐? 대답 다시할 기회 줄게.”


  나 역시 선엽의 가방에 괜시리 무게를 실으며 답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던 한 문장이 있다. 당신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사주나 타로, 혹은 포춘쿠키 같은 운세를 얼마나 믿는 편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 따윈 믿지 않는 편이지만 한 번 기억에 박힌 글귀는 잊지 않는다. 그 글귀를 마주했을 당시는 나는 부사수님이 추천해 준 사주관상가-대구 5대 부자가 간다는 신통방통 철학관-에게 사주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스무 살, 사주에 거의 미쳐 있었던 친구를 따라간 적이 있다. 생년월일만 알려 주면 과거와 미래를 척척 짚어낸다길래 아무래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처음으로 청담에서 사주를 봤다. 무려 5만원이었으니 당시 대학생이 턱 하고 쓰기에는 매우 큰 돈이었다. 그때 사주를 보고 눈물을 왈칵 흘렸던 기억이 있다.


  평소 나는 나의 어려움을 주변에 말하지 않는 편이다. 의지를 잘 하지 않는다고 봐도 되겠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의 말에 왈칵 눈물부터 흘리자 나와 사주를 보러 간 친구가 되려 당황해하고 놀라며 내 눈물을 수습하기 바빴다. 늘 괜찮은 척, 아무일도 없는 척 웃고 있었지만 내게도 곪아 있는 상처가 있다. 평범하고 무난하게 자란 듯 보이는 사람들, 웃으면서 안온한 하루를 보낼 것 같은 사람에게도 상처가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어느쪽도 완벽하지 않다고 믿는 편이다. 누구나 결점이 있고, 누구나 몹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점이 있다. 그것을 함부로 대하려 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천방지축의 투박한 성격이긴 하지만.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그때 보았던 사주는 내 인생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 요소가 있었지만 결국 하찮은 인간의 평에 따라 내 인생이 움직이는 것을 나는 그리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주에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운명을 믿고 싶지 않아 외면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주는 신기하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으니 기를 쓰고 무시해야만 했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사주를 볼 만큼 마음이 많이 어지러운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은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회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냉혹해지기만 했다. 여러 가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무렵에 조언이나 들어보자 싶어 반 정도의 믿음으로 철학관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다 알아서 해주겠지 싶었다. 생년월일과 시간을 말하고 나니 선생님(당시에 내 인생의 몇 가지 구간을 정확하게 짚었으므로 선생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은 곧바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듣는 내내 오오..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신통했던 것은 회사에 대한 이야기. 먼저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음에도 ‘지금 회사를 다니는 게 힘들다면 옮겨도 좋다’고 운을 떼던 그 한 마디에 나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이직에 대한 고민, 아니 더 나아가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향후 5년간은 마음먹는 일들은 다 해 보는 게 좋겠어요. 운이 좋아.”

  “아.. 그러면 말씀대로 이직을 하면 더 좋은 사람들을…”

  “내가 약속 같은 걸 잘하는 편은 아닌데, 그건 내가 보장하지. 적어도 지금보단 좋을 거야. 아가씨가 관운이 좋은 편이거든.”


  10년 전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내 사주는 겨울 중에서도 가장 차가운 시간대에 태어나 차고 예민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데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나, (내가 아닌) 주변을 돕는 수호천사의 기운을 담고 있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 말고) 다 도움을 받는 데다 좋은 기운을 받아 간다고 했다. 대성을 거두는 편은 아니어도 관운이 좋아 한 직장에 머물면 오래가는 편일 거라고. 그때는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였던 것 같다. 평생 직장이 없는 요즘 세대에 오래 다니는 직장을 갖게 된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렇게 7년 차 직장인. 한 회사에만 햇수로 5년을 다니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더 다닐 수 있는 회사라지만 역시나 사회생활이 공부보다 어렵다. 나는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한 인연을 쉽게 끝맺지 못하는 편이다. 사람 고쳐 쓰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이왕이면 헌 것을 고치고, 기우고, 덧대어 다시 쓰는 편이 좋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지금의 환경에서, 지금의 사람들과 최선을 다해 보자. 포기하지 말자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오래보는가 보다. 새로운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을 누리려 하고 있으니. 이러한 마음가짐과 성격은 어쩌면 열정 가득한 성정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예언을 애써 부정하는 편도 아니다.  내 인생은 징크스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예의 바르고 씩씩하게 자란 첫째라 하지 말라는 일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지독한 자기통제광. 나는 내게 찾아온 운명의 말들을 애써 무시하지 않는 편이다.


  “당신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언젠가 포춘쿠키를 부쉈을 때 손에 잡히던 종이의 질감. 손톱보다 얇은 종이에 얄팍하게 적혀 있던 한 문장. 더 나은 선택? 애초에 내게 더 나은 선택이란 건 없는데. 나는 처음부터 무엇을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 선택에 후회도 없다. 그런데 그날의 문장은 한동안 내 마음에 깊이 박히는 한 마디가 되고 말았다.


  처음 그 글귀를 보았을 때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때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사람에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문장이 그 사람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날의 예언은 그 사람이 아닌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났던 사람에 대한 경고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애써 마음을 숨기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으며 호감 표시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나다 헤어지더라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확실한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나 연애의 기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재고, 따지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런 모든 것들을 조금 피곤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 것 말고도 인생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서른을 지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도 과감히 생략하고 싶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정원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원은 지금까지 총 서른 번의 연애를 했다. 짧게는 일주일을 사귀었고, 길게는 3개월을 사귀었다. 정원은 그 많은 사람을 만나는 동안 매번 사랑에 빠져 있는 듯보였다. 정원은 너무도 막내 동생 같은 재질이다. 늘 정서적으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교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편이기도 하다. 정원은 연애는 반드시 밀당이 필요하고, 사랑을 지속하려면 긴장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정원의 연애학개론을 새겨 듣다 망한 전적이 있기에 그다지 신뢰 자산이 쌓이지는 않는다. 정원은 쉽게 연애를 시작한다. 보통 소개팅으로 만나 세 번의 만남에 바로 연애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재고, 따지고, 불평하고, 싸운다. 저렇게 싸울 거라면 헤어지는 게 맞지 않나? 싶을 즈음엔 이미 헤어져 있다.


  임정원의 지금 애인은 신해준이다. 정원은 매번 내게 묻는다. 해준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나는 정원에게 답한다. 너는 해준이한테 너무 의지해. 각자의 인생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정원은 내게 코웃음 치며 그러니까 네가 연애를 못하는 것이라고 반론한다.


  “민주야, 너는 일체감이라는 말을 모르지?”


  일체감이라. 오호라. 일체감이라. 정원은 연인 사이에는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고, 때로는 허락을 받아야 하는 요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출근길에는 적어도 몇 번의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하고, 점심에는 무엇을 먹었는지 인증샷을 찍어 보내야 하며(참고로 나는 피티쌤과도 식단 공유를 하지 않지만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먹으므로 우리 사이엔 신뢰 자산이 있다.) 퇴근 후에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를, 저녁은 무엇을 먹을 예정인지를 굳이굳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흐음. 그러면 나는 씁쓸하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그것은 너무 다정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손꾸락 끝에 그런 오글거리는 참담함이 피어나게 되다니.


  그런 것말고도 효율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최근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세계관을 두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떤 부분이 잘 풀리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 같은 걸 나누는 것.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제야 선엽이 나서 꿀밤을 때린다. 너희 가족이랑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 봐! 선엽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가족과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지 않게 된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평소 밥 대신 쉐이크와 영양제로 해결을 보려는 편이기도 하고, 그마저도 회사에서 해결을 하거나 주말에는 사람들을 만나며 대충 채우게 된다. 출퇴근길엔 잘 갔다오라는 말 같은 걸 생략한 지는 오래다. 특히나 나는 아침형 인간인데다 늘 약속이 있으므로 평일이고 주말이고 가족들과 마주치는 일도 많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화를 할 때는 집안의 대소사에 결정권이 생겼을 때 판단하는 일이라거나, 큰 금액의 주문이 필요한 온라인쇼핑을 봐줄 때라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라거나, 물건을 조립하거나 조명을 교체할 때다. 그 외의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나서부터는 더더욱 대체로 그런 편이다.


  선엽은 첫 연애에 한 사람과 9년을 사귀었다. 중간에 헤어진 적도 없다. 그러나 선엽은 애인과 결혼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헤어질 때는 그리 힘들어하더니 어찌됐건 헤어졌다. 나는 선엽도, 정원도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선엽은 적어도 자신이 찐한 사랑을 했다고 떠드는 캐릭터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번씩 선엽의 신경을 살살 그슬르고 싶어지는데 그 첫 반격이 바로 이것이다.


  ‘진짜 사랑이 어디 있어? 사랑은 없어.’


  그저 계속 만나면서 유희를 즐기는 것 뿐이지. 다들 그런 거 아니야? 내 말에 선엽이 뒷목을 잡으며 입술을 들썩이면 나는 기세를 허세처럼 몰아붙인다. 사는 게 재미가 없으려니까, 우리 나이쯤 되면 생활이 안정되고 그다지 호기심이 일 것도 없으니까 그런 욕구를 채우려고 장난감을 조물거리듯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지. 그러다 관계가 명명되면 연애라고 부르기도 하고. 연애도 우습지. ‘애’를 빼고 ‘연’만 남겨서 언제든 발을 빼고, 말을 바꾸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연’만 남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은 없어. 야, 일상을 세세하게 공유하는 게 일체감이라고 했니? 그런 게 사랑을 증명하는 거라고 했어? 나는 가끔 메모앱에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정리할 때가 있어. 네 말대로라면 퍽이나. 그럼 난 아이폰이랑 찐하게 연애를 했겠다야. 내가 보기엔 너희들은 그저 관계를 유지할 만한 수단으로 일체감을 변명처럼 갖다 붙이는 거야. 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삼십대의 사랑이란 내가 꿈꾸고, 바랐던 느낌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냉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사랑을 왜 하는지에 대해 최근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은 필요하지 않다. (혼자 살기도 바쁘다는 소리다) 만일 사랑이 필요하다면 진정으로 사는 게 재미없고 심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고, 걱정을 받고 싶고, 챙김 받고 싶은 그런 욕구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호기심이라는 말도, 재미라는 말도. 그래서 참으로 뾰족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렇게 말해주던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수치스러웠다. 내가 마치 고무로 만든 장난감이 된 것만 같았다.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되갚아주고 싶었다. 작정하고 곤경에 빠뜨려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돌이켜보면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듯하다. 어떤 관계는, 어떤 사랑은 책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를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   



  광주송정역에서 벗어난 우리는 근처에서 그 유명하다는 떡갈비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떡갈비는 담양이 유명한 줄 알았더니 선엽이 말하기론 광주가 원조라고 한다. 아무렴, 원조가 어디면 어떨까. 나는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쓴다거나 정확하게 해두고 싶은 피곤한 성격은 아니다. 떡갈비 골목을 가는 길에 선엽이 문득 내게 물었다. 그날 우리가 나눴던 대화에 대해서.


  “민주야, 너 이정도는 아니었잖아.”

  “뭐가?”

  “전에, 일체감 얘기할 때.”

  “뭐가.”

  “왜 사랑이 없다고 믿어?”


  선엽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포춘쿠키 속 한 문장이다. 역시나 다시 되돌아오게 되는 그 문장. 당신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반복하겠다. 나는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예언을 애써 부정하는 편은 아니다. 내 인생은 징크스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마음에 두고 있는 그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회유하는 듯한 그 문구. 그런데 아무래도 그때 그 문구가 가리키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역시나 나는 나의 직관력을 믿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내 운명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마작 게임처럼 복잡하고 다단하게 흘러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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