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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May 16. 2024

동생이 생기는 기분

#맥문동숲길



  “막내만 아니면 돼요.”


  외향적인 성격을 타고난 탓일까, 어쩌다 보니 주변에 소개팅을 주선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니까 외모 합이나, 나이, 그간의 대화를 복기하며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소개해 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얘기다. 직무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사내에서 서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사적 모임으로 만난 이들을 맺어주기도 했다. 뭐, 소개팅을 주선한 이후엔 아무것도 묻지 않은 편이니 그들의 엔딩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턱이 없지만. 대체로 사람의 성정을 파악하는 능력과 눈치가 빠른 편이라 나의 매칭 실력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개팅을 주선하는 데 있어 내가 지키는 철칙이 있다면 단 한 가지다. 정말 안 되는 조건 3가지를 이야기할 것. ‘안 되는 조건’이라 함은 외모 중에 있을 수도 있고, 성격 중에 있을 수도 있으며 혹은 사소한 습관에 있을 수도 있다. 누구든 사람마다 타고난 개성과 성정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하지 못한 특징이 있다는 거다. 즉, 이상형을 만나는 건 쉽지 않지만 적어도 안 되는 것 3가지 정도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안 되는 조건 3가지만 말씀해 보세요.”


  내가 이런 질문을 말하면 사람들이 내세우는 조건은 의외로 (적어도 내쪽에서는) 사소하지만 본인에게는 중요한 것들이 제법 있다. 나보단 키가 커야 한다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거나, 괄괄이 같은 성격이면 안 된다는 둥. 나로서는 아 정말로? 하는 요소들이 있었는데 사소하게는 패션 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있었고, 담배를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있었고. 아, 타투가 몸에 있으면 안 된다는 조건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성격이나 인간성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런 질문을 나누는 것이 엠비티아이에 대해 떠드는 것보다 즐겁기도 했다. 대체로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내게도 그것에 대해 물었다. (소개팅도 안 시켜줄 거면서 다들 왜 물어보는 건지 원.) 물론, 내게도 명확한 ‘안 되는 조건 3가지‘는 있다. 아니 나는 그것을 이제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 조건이 내게도 있었다. 애초에 소개팅의 철칙을 세운 이유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시작한 것은, 내게 그것이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막내는 절대로 안된다.

  둘째, 작가는 안된다.

  셋째, 서울에 살아야 한다.


   그 밖에도 사소한 것들이 조금 더 있는데 mbti로는 다음의 유형은 되도록이면 피했으면 했다. 인프제, 인티제, 잇티제, 엣티제, 엔티제, 잇팁. 제법 까다로운가? 대신에 외모라던가 문신 여부, 패션 센스, 키.. 그간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외적인 부분은 정말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수년간 사람들을 봐오면서 내가 호감을 느끼는 기준에 대해 탐구해 보자면 대체로 그런 편이다. 나는 외모보다는 인간성을 더 보는 편이고 잠깐의 대화로 훅하고 관심을 쏟게 되는 편이다. (외모 관리는... 적어도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 손을 씻을 수 있는.. 위생의 개념만 탑재하고 있으면 된다)


  글 쓰는 사람은.. 단지 나와 같은 계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고,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조건은 내가 보고 싶어 질 때마다 쉬이 찾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고로 첫째라는 조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굳이 세 가지 조건을 채워 넣어야 한다면 꾸역꾸역 써내는 조건. 한편으로 첫째이면서 인프피, 잇프피, 엣프제, 엔팁과 같은 유형, 나와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이공계열의 사람을 보면 내 안에 없던 사려 깊음도 불쑥불쑥 탄생하는 편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첫째’라는 조건은 내게 너무도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작년까지 나는 첫째가 아니라면 단 한 번도 상대를 이성적으로 생각하거나 생각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무수한 비난을 받아왔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아니면 성격이 잘 맞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내 주변에는 막내이면서 인티제 성향인 친구들만 있다. (나도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그들과 나눌 때면 나는 매번 뭇매를 맞는다. 강약 조절과 필터링 없는 설득과, 그들 내면의 심연으로부터 차오른 진심을 거부 의사도 없이 맞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처음엔 마음이 좀 따가웠는데 이제는 스파에서 안마를 받는 것 같다. 무뎌졌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도록 ‘막내’가 안된다는 조건은 내게 확고했다. 내가 아는 막내들은, 그러니까 동생들은 예외 없이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특성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동생이 생기는 기분.


  나는 막내들이 싫었다. 원하는 건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금수저. 날 때부터 양보와 희생을 풀옵션으로 장착한 것으로도 모자라, 결정적인 순간에 손에 쥔 것들을 포기할 줄 모르는 당당함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과시하는 모습도 질렸다. 손해를 감수하는 것을 회피하고, 책임감도 없이 누군가에게 떠넘겨지기를 바라는 요행을 부리는 것도 끔찍했다. 문제의 본질은 스스로에게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이 나서 막내를 감싸고도는 그 행태도 싫었다.


  그러니까 나는 첫째.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회사에서도 유일하게 첫째다. 막내들과 있으면 도무지 일의 시작이 끝이 나질 않는다. 막내들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없고, 뜬구름 잡는 하소연부터 해댄다. 이성보다 감성에 쉬이 휘둘렸고, 상당히 감정적인 편이었다. 그래놓고 가치 판단이나 최종 결정은 타인에게 떠넘긴다. (역시나 감정적이어서) 그건 나이가 많고 적고의 차이가 아니었다. 동생으로 살아온 환경, 성장배경,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양으로 탄생한 괴랄한 결과였다.



  하늘이 맑아도 너무 맑아서, 거리를 쐬는 빛이 너무도 강렬해서 뜨겁다고 생각했다. 떡갈비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엔 광주가 서울처럼 별 특색 없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떡갈비가 유명하다고는 했지만 그다지 시그니처 음식처럼 보이진 않았다. 문득 서울에 대해 생각했다. 서울 사람인 내게 누군가 서울의 대표 음식을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할까. 김밥? 아니다. 불고기? 아니다. 국밥? 그것도 아니다. 생각나는 음식이 없었다. 서울의 특징은 무엇인가. 남산타워와 대궐이 생각났지만 ‘부산’이나 ‘제주’ 같은 지명을 생각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서울에 살아서 그런가. 서울에 너무 무감각해진건가. 그런 면에서 나는 광주와 서울의 첫인상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특색은 없지만 꿋꿋하고, 도도하다.



  시장 안쪽을 둘러보다 우리는 가게 중에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들어가기로 했다. VJ특공대네, 3대천왕이네, 생생정보통이네 하는 그런 플랜카드를 걸고 홍보하는 집들이 즐비했지만 의외로 나는 맛집을 잘 찾아다니지 않는 편이다. 무릇 음식이란, 앞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니던가 싶기도 하다. 너무 오래 식탁에 앉은 경험이 없어서인가 보다. 너무 오래 쉐이크만 삼켜왔다. 그러다 사람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면 나는 내 앞에 앉은 사람을 신경 쓰느라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온전히 혼자가 되어 쉬는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앞에 사람을 두고도 식사를 정말 잘할 때는 상대를 그날 한 번의 인연으로 생각할 때다.



  떡갈비는 정말 맛있었다. 진수성찬도 그런 진수성찬이 없다. 남도의 음식은, 특히나 전라도 손맛은 전국팔도에서 알아준다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반찬을 깔끔하게 다 비웠다. 고기도 냠냠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쌈을 싸 먹는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전날 밤을 새고, 기차 안에서 단잠을 자고 나니 허기가 졌는지도 모르겠다. 가게를 나오는데 시원한 라떼가 땡겼다. 입 안을 깔끔하게 만들어줄 라떼 한 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벌써 두 시가 지나고 있었다. 다음 일정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다.



  다음으로 가기로 한 곳은 인터넷에서 사진이 꽤 그럴듯하게 보였던 ‘맥문동숲길’이었다. 사실 그곳을 첫 관광지로 정한 것은 단순히 거리 때문이었다. 여행 계획을 짤 때는 ‘트리플’이라는 어플을 이용하는데, ‘트리플’의 장점은 여행기간과 장소를 선정하고 나면 숙소와 관광지를 추천해 주고 그 경로를 설정하면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숙소로 가는 길에 잠깐 들리기 좋은 스팟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전날까지도 이동방법도 몰랐을 정도로 자세하게 알아보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빙빙 둘러가는데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다.


  트리플에는 분명 ‘맥문동숲길’이라며 보랏빛 물결이 이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네이버 지도에는 ‘맥문동숲길’이라는 스팟이 검색되지 않는 거다. 우선 시간을 아껴 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 검색이 되지 않았을 때 트리플 어플에 있는 도로명주소를 무작정 입력해 놓고 움직인 것이 오산이었나. 경로를 검색하면 검색할수록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좌표를 찍어두었다. 나는 조금 불안한 얼굴로 선엽과 정원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조금 전에 식당에서 찍었던 사진을 공유하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창 밖으로는 대학가의 풍경이 펼쳐졌다. 남도의 날씨는 서울보다 따뜻하다. 그래서인지 대학 건물 사이로 벚나무가 톡 터진 꽃봉오리를 털며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아, 예쁘네.


  나는 좌표를 따라 움직이는 지도를 보면서 작게 속삭였다. 정원이 덥다며 입고 있던 가죽자켓을 벗었다. 정말로 봄이 온 듯 따스하게 봄바람이 불어왔다. 봄바람은 달콤하다. 이마에 맺힌 땀을 부드럽게 쓰다듬듯 털어내는 듯하다. 광주와 봄은 매우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려야 하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맥문동숲길’이라고 하기에 거창한 유원지 앞에 내릴 줄 알았는데 웬걸. 시내 한복판에 내렸다. 다시 지도를 보니 바로 앞에 목적지가 있었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앞에는 아파트단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혹시 동네 공원 아니야?”


  선엽이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내게 물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선엽의 추측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몇 번이고 목적지를 다시 설정했지만 결과값은 틀리지 않았다. 근린공원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곳에 숲길이 있다는 거다. 나는 조금 전보다 더 작아진 듯한 존재감으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그.. 일단 왔으니까 보고 가자.”

  “뭐야. 당연히 봐야지. 왜? 내 말이 맞아?”

  “나도 잘 모르겠어.”


  내 말에 정원이 팔짱을 낀 채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어쩐지 신경이 그슬리기 시작했다. 아니, 여행 계획을 짠 것도 나. 예약을 한 것도 나인데 관광지를 가다 보면 실패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전문 가이드도 아니고. 지금까지 나한테 다 의지해놓고 실수 한 번에 이렇게 분위기가 냉랭해질 일이냐고. 짜증이 났지만 괜히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그러는 사이 공원에 도착했다.



  “맥문동숲길”은 트리플에서 추천하던 명성과 다르게 말 그대로 공원이었다. 서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근린공원. 심지어 아직 가지는 앙상한 뼈처럼 잎사귀 하나 피어 있지 않았다. 넓은 잔디밭 위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과 그 주위를 비잉 감싸고 있는 계단식 관람석에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동네 주민 같았다. 바로 양 옆으로 아파트 단지가 이웃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보드를 타는 이들도 있었다. 손뼉을 앞뒤로 부딪히며 운동을 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낭패라고 생각했다. 힘이 빠졌다.


  겨울 동안 나는 첫째들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첫째만으로 구성된 마작 모임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첫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에 대해 실컷 풀어놓았다. 그 속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첫째로 살아오며 내가 느꼈던 중압감과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몰래 흘려버리고 싶었다. 내가 첫째가 아니었다면 조금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성격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의 인생이, 나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그 당시의 나는 깊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엠비티아이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자기통제광. 그 나오기 어렵다는 100% J 유형이 나왔으니 말 다한 것 같다. 나는 늘 결정하는 일을 맡았다. 가족구성원에서 검사와 변호사, 판사가 있다면 나의 포지션은 주로 판사였다. 막내들로만 구성된 작은 사회, 가정에서 내가 사랑하는 막내들은 늘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바빴다. 작게는 메뉴를 고민하는 문제부터 크게는 막내들의 또 다른 가족에 대한 일들까지. 가구를 사러갈 때도, 형광등을 교체할 때도. 심지어는 병원에 따라갈 때도, 안경을 맞출 때도 막내들은 내가 동행하길 원했다. 우리 집의 큰 막내는 내가 작은 막내를 따라 동행하지 않으면 쉬이 불안해했다. 다들 성인이면서. 나는 그런 것들이 피곤했다.


그래서 막내가 싫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주도하는 것이 싫었고, 이끌고 나가는 것이 싫었다. 효율적이고 좋은 방향이 있다면 쉬이 이끌리고 싶었다. 나를 이끌어줄 첫째가 있다면 물의 속성처럼 그 유속을 따라 흔들리고 싶었다. 흔들리고 싶었다. 내가 첫째만을 고집한 것은 흔들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그만큼 지쳐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누적된 상처로 인해 첫째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적어도 애인만은 첫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그러니까 독립적인 성향을 만나야겠다는 조건 하나만이 생겼다. 다른 건 보지 않았다. 자연스레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째들과 막내들의 특성이 눈에 띄게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런 걸 나름대로 바라보다 보면 사람들이 조금 재밌어진다. 공통된 특성이 있다. 첫째와 막내들 말이다. 첫째는 대체로 의젓하다. 일의 성과를 늘 달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일은 적어도 스스로 한다는 말이다. 좋게 말하면 자기주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독선적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일의 효율 이상의 의견이 아니라면 논쟁 자체를 피곤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도 맞닿아 있는 성격인 듯하다) 첫째는 다정하지만 냉정하다.


  반면 막내는 어떤가. 대체로 막내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편이며, 좋게 말하면 여린 마음을 가졌고 나쁘게 말하면 나약하다. 그리고 그 나약함은 미약하게나마 사랑스럽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위로를 잘 해내는 편에서는 동생들이 더 우성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원하는 위로는 그런 나약함이 아닌 강인한 결정권이었다. 그래서 내겐 ‘나만의 첫째’가 필요했다. 나는 나를 압도하는 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둘째’라는 옵션을 발견했다. ‘당신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예언이 내게 다가온 날에. 둘째는 생각지도 못한 옵션이었다. 재밌지 않은가. 첫째와 막내.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게 둘째는 정말로 뇌를 도끼로 찍는 듯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사실 그 둘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내가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의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내 소설을 거의 완성 단계까지 마무리하고 있었다. 결말만을 앞두고 있었다. 결국 ‘막내는 첫째를 배신한다’는 것이 그 소설의 주제였다. 막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회피 성향을 보인다.


소설 속에서 주요 인물인 ‘나’는 첫째라고 믿었던 ‘썸남’이 실은 막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막내는 몇 년 전 사고로 떠나보낸 누나를 잃은 뒤 외동이 되었다. ‘나’는 그 남자의 사촌동생을 친동생으로 착각하여 그를 첫째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 첫째들만으로 꾸려진 마작게임을 하며 ‘나’는 변수에 대해 생각한다. 첫째만 구성된 사회라면 ‘막내’에게 사랑에 빠질 일이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변수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쟁이 막내와 묘한 관계를 이어간다. 막내는 끝내 자신에게 실은 자신이 막내라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그동안 자신이 들었던 ‘첫째 프레임’에 대해 ‘나’로 하여금 경멸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실은 그 '막내'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변명하는 것뿐이라는 걸. 그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결말을 쓰는 단계를 앞두고 나는 잠시 내 작품을 유예해야 했다. 한번 의심해보고 싶었다. 다른 결말이 생겨날 수도 있을지.  



  내가 쓰던 그 소설은 마치 ‘맥문동숲길’ 같다. 거창했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굉장히 사소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거다. 그 거리를 걸으면서, 등허리에 무거운 짐을 진 채 그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그 순간 나의 ‘첫째’에 대해 생각했다. 웃음이 나왔다. 정원이 신경질 내며 손부채질을 해도, 선엽이 다음 목적지는 어디냐고 물었을 때에도 나는 배를 잡고 소리 내어 웃기 바빴다. 그러다 무거운 짐에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붉은색 아스팔트 위로 손바닥을 찧고, 꽃봉오리가 맺혀있던 목련나무에서 꽃잎이 조금 떨어졌다.


그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둘러 다음 목적지를 검색했다. 원래는 바로 숙소가 있는 동명동, 그리고 양림문화마을을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나는 우리의 일정에 변수를 한 번 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생각지도 못하게 둘째가 등장한 것처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친구가 된 것처럼.  


  여기서 비엔날레까지는 20분 정도인데, 그냥 택시 탈까? 내 물음에 정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사이엔 침묵만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사람은 선엽도, 정원도, 나도 아닌 택시 기사님이었다.


  “운동하러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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