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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May 04. 2024

징크스 한 번 깨보지 않을래?

#프롤로그


내게는 빠지지 않는 점이 있다. 눈 바로 밑, 광대뼈 위쪽에 위치한 일명 ‘장원영’ 점이다. 이 점에 대한 역사를 떠올리자면 후천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탄생년도를 따져보자면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어찌 됐건 장원영에겐 매력적일지도 모르는 이것은 내게는 그저 애물단지다. 이상하게도 점 때문에 애인이 생기지 않는 것만 같았다. 점을 빼러 갈 무렵엔 썸 비슷한 무언가가 생길 것도 같더니, 관계가 헐거워지거나 말짱 도루묵이 될 때면 슬며시 점이 빠진 자리에 새살 대신 새 점이 돋아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점은 내게 얄미운 점, 영영 사라졌으면 하는 점이다.


  내게는 사랑과 관련된 징크스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점을 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주한 사람에겐 이성으로서는 절대로 애쓰지 말 것.

*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장남이 아니라면 시작조차 하지 말 것.

* 동생에게 느끼는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셋째, 무슨 일이 있어도 좋아하는 친구와는 뮤지컬 <빨래>를 보자고 하지 말 것.

* 누구든 그걸 함께 보면 이상하게도 꼭 마지막 만남이 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이번이 세 번째다.


그 밖에도 이곳에 다 털어놓을 순 없지만 나에겐 ‘사랑’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징크스가 있다. 나는 제법 징크스를 믿는 편이다. 나의 직관력은 꽤 정확한 편이고, 공교롭게도 나의 징크스는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첫사랑에 실패한 뒤 가장 먼저 점을 뽑으러 갔다. 빼러 간 것도 아니고 뿌리까지 잘게 쪼개어 없애버리고 싶었다. 다섯 번째였나, 여섯 번째였나. 중학교 때 처음 이마에 난 사마귀점을 빼준 것을 시작으로 매년 명절마다 약과 대신 약발을 받겠다며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사라지지 않는 점을 두고 위치상 나쁘지 않은 점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못 빼어 안달이 났느냐고 타박까지 했다.


햇빛을 보면 안 된다고 하기에 여름 동안 나는 내내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다녔다. 며칠 동안 씻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하길래 방 안에 콕 박혀 있던 날도 있었다. 피부 표면에 엉겨 붙은 솜털을 타고 색소가 잘못된 역할을 하는 거일 수도 있다고 하니 때마다 눈썹칼로 점 주위의 솜털을 쓱쓱 밀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점을 소탕하는 데 꽤나 열정적이었고, 꽤나 열심히였다.


여름에서 겨울까지. 그리고 겨울에서 봄까지. 날마다 얼굴에 캐릭터 밴드를 붙이고 있으니 나를 관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어떤 이들에게 불편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누구와 싸웠느냐고. 다쳤느냐고. 혹은 패션이냐고. 아니다. 셋 다 아니다. 틀렸다. 그것을 질문하는 것조차 잘못되었다. 나에게는 몹시 중요하고 내내 대단히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화려한 문신을 새겨 넣는 사람이 있다. 내 얼굴의 밴드는 아마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나는 진짜 사랑이 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딱 한 번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것도 숫자부터 매력적인 ‘서른’이라는 나이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웃는다. 내게 어리석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건 마치 럭키박스를 고르는 일과 같은데, 발칙하게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것과 다름없는데 살면서 연애를 한 사람하고만 하겠다고? 마음을 아끼고, 아끼면 똥 된다.



‘선엽’과 ‘정원’은 나의 14년 지기 친구다. 그들은 봄과 여름에 태어났고,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나는 주로 방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고, 늘 친구들이 나를 먼저 찾고 불렀다. 나는 늘 방 안에서 바빴다. 회사 일도 해야 했고, 회사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공부도 필요했고, 회사 밖의 커리어도 쌓고 싶었다. 그러려면 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래서 바빴다. 그렇게 내가 방구석에서 꿈을 키워나가는 사이 친구들은 활발한 연애사를 뽐내고 있었다.


  내게 그렇게 말하며 웃었던 두 친구의 사랑은 어떤가. 서른이면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을 시기가 아닌가, 하고 십 년 전의 나는 생각했다. 그쯤에 만난 사람과 결혼해야지.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할 애는 ‘민주’인지도 몰라. 그럼 우리 차례차례 부케를 던지고, 축가를 불러 주자. 나는 애기도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신혼을 좀 더 즐길래.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10년 전의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선엽’은 학부시절 CC로 만나 오랜 관계를 맺어오던 애인과 고민 끝에 마침표를 찍었고, ‘정원’은 수없이 많은 연애를 하면서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하겠다던 첫 섹스를 사랑이고 나발이고 어처구니없게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사랑을, 여전히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래서 사랑이 있긴 한 걸까? 실은 사랑은 없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척하는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거 아니야? 마치 자위처럼 말이야.”

  “내 생각엔, 자기애도 없고, 그냥 ‘자아’만 있는 거라니까.”


  그렇게 아무도 가지 않을 것 같은 여행지를 골라 보기로 했다. 오래전 16년 지기 친구와 떠났던 내일로 여행지로도 가보지 않았던 곳. 관광지 같기도, 관광지 같지 않기도 한 곳. 지금이 아니면 영영 가보지 못할 것 같은 곳.


  “이번엔 광주 어때?”



  빛나거나. 미치거나. 내 사랑의 주인은 바로 나다. 그렇게 우리는 광주를 방랑해 보기로 했다. 각자 떠나는 목적은 달랐지만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는 같았다. 진짜 '사랑'을 찾기 위해. '자기애'를 찾기 위해, 아니 '자아'를 찾기 위해. 돌아와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티켓은 편도로만 예매했다. 올라오고 싶은 마음이 들면 올라오자. 그것이 우리 셋이 결정한 하나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ENTJ인 나와 INTJ인 선엽과 INFP인 정원. 정체기에 머물러 있던 우리 모두의 시절엔 이제 회복기가 필요했다.


  “돌아오면 뭐가 달라질까.”

  “야, 걍 떡갈비나 주구장창 먹자.”

  “무등산 산책하고, 내려와서 호수 보고. 야, 여기 테마파크도 있는데?”



  시작부터 우리는 각자의 성향답게 서로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광주역으로 가는 직행 열차는 없었다. 처음부터 뭐 하나 시원하게 갈 수 있는 게 없네. 여행지로 광주를 제안한 건 나였다. 친구들은 내게 몇 번이고 ‘광주’를 가자고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거기가.. 관광지는 맞아?”


  관광지. 글쎄,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여행지가 되는 것 아닐까.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물이 묻은 휴지 위로 펜을 들고는 ‘빛나거나, 미치거나.’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야,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도시 아니냐? 빛나거나, 미치거나.”

  “광주는 빛 광 아냐?”

  “빛나는 도시에 미친 여자가 간다고 치자.”

  “오, 그거 설득력 있네.”


  친구를 설득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여행을 가는 것 자체에 이미 신이 나 있었으니까. 친구들은 내게 왜 하필 ‘광주’를 제안했느냐고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때 우리에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내가 선택한 여행지라는 대가로 나는 혹독하게 광주를 공부해야만 했다. 여행 일정도, 숙소도 모두 다 내가 예약했다. 친구들은 그저 나의 배터리가 방전되기를 날마다 고대하는 듯했다.



  아니, 다시 고쳐 말하고 싶다. 친구들에게도 하지 않았던 내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나는 광주를 한 번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 광주를 방랑하며, 내가 이해한 광주를 마음 속 한 켠에 묻어 버리고 싶었다. 태어나서 수련회로도, 여행으로도 MT로도 전라도 지역을 가본 적이 없다. 전라도 사투리는 어쩐지 낯설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섭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광주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광주,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광주에 대한 이야기. 뉴스에서 접하는 광주. 세상이 답하고 있는 광주. 어쩐지 교과서에서만, 책에서만 존재하는 듯한 그 도시. 나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도시.


  나는 직관력이 매우 좋은 편이다. 사람에 대한 ‘감’도 꽤 들어맞는 편이다. 나는 내가 이해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여행의 처음과 끝에는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결정과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체로 나의 심증은 결국 물증이 되어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쉽게 바꾸지 않는 편이고, 나의 첫 느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어떠한 계기로 인해 나의 ‘직관’을 한 번 의심해보기로 했다. 가보지 않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자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광주’를 유영해보고 싶었다. 내게는 가장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도시였으므로. 그 첫 인상을, 눈빛에 기회를 줘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이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봄’에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무용하고, 고요하게.


  그렇게 도착한 광주. 그 도도한 첫인상에 우리는 첫날부터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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