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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Jul 13. 2024

우아한 정거장이되겠어

#양림문화마을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나 같은 뚜벅이 여행자에게 버스는 꼭 필요한 교통수단이지만 한편으로 뚜벅이 여행자이기 때문에 놓쳐버리는 것들이 있어 아쉬울 때가 많다. 첫째,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은 명소가 있더라도 때로는 안전을 위해 포기하게 된다. 둘째. 경유지가 많은 버스라면 최초 시간보다 둘러 도착하기 때문에 시간 소요가 상당하다. 주로 주말을 이용하여 여행을 떠나는 꼬마 여행자인 나에게 하루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원고를 쓰는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여행이기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떠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버스는 비효율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서울에서는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은 택시를, 여행지에서 고민 없이 이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택시는 여행에 시간 단축이 된다. (또 그러한 이유로 나는 올해 장롱면허를 꼭 탈출할 계획이다)



  올해 2월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여행을 가는 미약한 목표(?)가 생겼다. 2월엔 창원을, 3월엔 부산을, 4월엔 광주, 5월엔 대전, 6월엔 수원,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은 속초에 가고 있다. 물론 10월까지 여행 일정이 이미 잡혀 있다. 여행을 떠날 땐 선엽과 정원처럼 친한 친구들과 함께하기도 하지만 실은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편안함을 더 느끼는 편인 것 같다. 배낭 속에 노트북 하나만 넣고 있으면 세상 모든 곳이 내 작업실이 되었고, 나는 키보드의 자판과 자판 사이를 뛰넘으며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내밀한 마음들을 건드려 글을 써냈다.


  한편, 혼자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얼굴을 트기도 했다. 대체로 한 번 보고 말 사람들, 인연이 계속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처음엔 서로의  SNS계정을 나누며 여행지의 추억과 감성이 잊히지 않도록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순수한 착각이었다. 현생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여행지에 두고 온 기억처럼 점점 흐릿해져 갔다. 커뮤니티에서 모임장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껏 학창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 한때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스쳐 지나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작년 여름이 특히 심했던 것 같다. 커뮤니티에선 마지막 모임 때 눈물을 참지 못하고 줄줄 흘렸고, 여행지에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표를 더 뒷 시간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람과 점점 멀어지는 감각은 익숙하지 않았다. 친구와도 그렇게 연락을 하지 않는데! 그래서 한동안 나는 허전함과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걸 극복해 보려고 막무가내로 여기저기 새로운 사람긓읗 만나러나가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 마음을 채우겠다고 ‘대체제의 사랑’을 하려 했던 것이다. 어리석었다.


  원효사에서부터 출발한 버스는 한 번의 경유 끝에 양림문화마을에 도착했다. 예정대로였다면 벌써 저녁을 먹어야 했지만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간단하게 빵을 먹기로 했다. 웨딩거리를 지나 동남아 음식을 파는 가게와 마라탕집이 즐비한 골목을 지났다.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휑했다. 또래의 사람들은커녕 노인도 지나가지 않는 거리. 광주의 골목골목을 걷는 동안 사람 대신 그들이 놓고 간 쓰레기 조각들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서울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만큼 지방도시에 모인 사람들은 줄어든다. 너무 당연한 원리이자 결과다. 그러니까 어딘지 모르게 광주에 머무는 것보다 이곳을 경유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는 소리다. 선엽에게 내가 받은 이 휑한 느낌이 드는지 물어보려는데 정원이 먼저 선엽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최선엽. 너 왜 구래. 아까부터.”

  “아니, 그냥. 너 보니까 내가 질투 나나 보다. 그냥 기분이 별로야.”

  “지우 때문에?”

  “지우랑 나는 할 만큼 했지. 이젠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거지.”

  “왜 다시 못 만나는데?”


  애석하지만 이번 질문도 내가 했다. 정원과 선엽이 동시에 나를 바라본다. 진짜 모르는 거야? 정원이 입을 뻐끔거렸고, 나는 쿨럭거리며 마른기침을 했다. 정원이 뒤에서 입으로 닫힌 지퍼를 만들어 보였다. 양림문화마을로 가는 동안 길잡이가 된 사람은 나였다. 지도 앱을 켜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때로는 나 스스로를 너무 믿은 나머지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한다. 내가 지도를 보는 동안 뒤에서 따라 걷던 선엽이 말을 이었다.



  “어제 네가 해준이랑 맞춰가려고 한다고 했잖아. 그런 노력들.”

  “그치. 우린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애들이니까.”

  “나는 그런 노력을 충분히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너무 참을성이 없었나, 하는 생각도 그냥 갑자기 드네.”

  “너 지우한테 미련 있구나.”

  “내가 헤어지자고 했는 걸. 그때는 그게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을 했다? 근데 막상 지우랑 연락도 하지 않고, 지우가 없이 보내니까 너무 허전하고 이상해.”

  “애인이 아니더라도 9년 지기 친구를 잃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럴만하지.”


  정원이 선엽의 등을 토닥였다. 선엽이 고개를 푹 숙이며 땅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선엽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우리는 마을의 가장 끝까지 도달했다. 웨딩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사람들도 저 미소를 짓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지. 어쩌면 저 때의 웃음마저도 진실된 웃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보여야 하는 웃음.


  “쉽지 않네.”


  선엽이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우리 앞으로 버스 한 대가 스윽 하고 지나갔다. 정류장 이름 옆 표지판에는 ‘광주향교’라고 써 있었다. 아, 여기 향교가 있구나. 나 향교 좋아하는데. 소싯적에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열렬 애청자였기에 여행을 떠날 때마다 향교를 발견하면 꼭 방문하는 편이다. 그나저나 향교라면... 완전 반대로 걷고 있었잖아? 이 와중에 길을 또 잃었다니. 나는 선엽과 정원의 눈치를 쓱 보며 조심스레 반대편의 횡단보도로 유인했다. 반대편 횡단보도를 통해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평소에도 천하무적 길치의 유전자를 타고 나 길을 잘 잃는 편이다. 하필이면 꽤 많은 시간을 걸어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내가 또 길을 잃었다고 한다면 무지막지하게 화를 낼 게 분명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아직까지 이 사실을 모른다)



  양림문화마을은 광주시에서 근대 역사 문화를 가장 먼저 유입이 된 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물들이 동서향이 융합되어 있거나 서양식의 구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는 베이커리나 카페, 레스토랑, 소품샵 등이 입점되어 젠트레피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곳 같기도 했다. 광주 거리를 걷는 동안 길에 쓰레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들은 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 마을에서만큼은 거리가 깔끔하게 잘 정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적한 거리를 걸어서인지 순수함과 투명함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양림문화마을과 잇는 구조에는 ‘펭귄마을’이 이어져 있다. 처음엔 펭귄이 광주의 마스코트인가 했지만 고령화 사회가 가속된 만큼 빈집이 늘어나고, 노인 인구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마을을 걷는 노인들의 걸음걸이가 마치 펭귄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니 마냥 우습다고 웃기도, 그렇다고 슬퍼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펭귄마을은 당시 빈 집에 예술품을 가져다 놓은 예술가들의 마을로도 유명하다. 한켠에는 공예가들의 공방과 소품샵이 마련되어 있기도 했다. 곳곳에 전시된 벽화와 공예품들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어딘지 모르게 선엽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건 정원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어깨에 멘 고민의 무게를 안은 채 나아가고 있었다. 어떤 고민을 업고 있든 정류장에서 내가 타야 하는 방향의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이다. 버스에 탑승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은 자신이 내려야 하는 버스 안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다시 버스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영영 헤어져버릴 수도 있다. 지금 선엽에게 지우가 그랬다. 9년 동안 함께 타왔던 버스에서 선엽이 내린 것이다.


  나는 언젠가 소설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곁에 있을 땐 몰랐는데 헤어지고 나서야 그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얼마만큼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주영은 스스로 사랑하는 것을 먼저 놓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떠나가는 감각은 역시나 낯설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 소설 <인어의 시간> 중 한 구절이다. 그 문장을 쓸 때 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여러 번 곱씹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친구들과 크게 다투거나 연락을 그만둬 본 경험이 없었다. 또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는 경험이 많지 않다. 언제나, 어느 집단에서나 사람들을 만나면 꽤 오래 인연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작년 한 해 동안 활동했던 커뮤니티에서 모임이 끝난 이후에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상실을 겪곤 했었다. 그런데 선엽의 마음이 그에 비하면 얼마나 큰 상실일까. 누가 먼저 헤어지든, 어떤 이유로 헤어지든 ‘상실’의 감각은 여전히 낯설도, 두렵다.


  그 사람을 알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언제고 그가 ‘내’가 타고 있는 버스를 떠나버릴까 전전긍긍했다. 언제고 끝은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그런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시간은 왔다. 나는 언제나 ‘상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누구와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버려지는 감각은, 그리고 버리는 감각은 유쾌하지 못하잖아요. 내 말에 그 사람은 생각이 조금 다른 듯했다. 내가 버스를 모는 운전수라면 그는 버스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여행자에 가까웠다. 이리저리 어울리다 언제고 발견할 수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바람 같기도 했다.



  “정거장을 지나친다고 생각해 봐요. 내려야 하는 곳이 온 거지. 우린 어른이니까, 이젠 웃으면서 내리는 방법을 잘 준비해 둬야죠.”


  그때 나는 그 사람이 ‘나’와 함께 타고 있던 버스에서 곧 내리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떤 것들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문제는 내 마음에 남겨진 그 친구의 흔적이 꽤 커서 헐거워진 마음의 둘레를 원래의 크기로 되돌릴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일도, 사랑도.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내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내 것인 양 떼를 쓰고 붙잡을 수도 없다. 오랜 기간 소설을 써 오며, 끊임없이 실패하고 허우적거리며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다간 큰 코 다치니까.


  “선엽아.”


  토종밀로 만들었다는 베이커리에 들린 우리는 캄파뉴와 바게트 같은 것들을 주문해 놓고 저녁을 대신해 먹기 시작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건 나였다.


  “나는 있잖아. 이제 ‘우아한 정거장’이 되기로 했다.”



  내 말에 선엽이 마시고 있던 커피를 푸웩 하고 뱉었다. 그 바람에 빵을 올려 둔 쟁반 위로 커피의 거무튀튀한 자국이 퍼졌다. 나 말 안 해.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나자 선엽이 쉬쉬하며 정원에게 냅킨을 내밀었다.


  “우아한 정거장이 뭐야? 너 또 막 소설 얘기하고 그런 거냐.”

  “아니.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이야. 예전에 누가 나한테 그랬거든. 나보고 정거장에 사람들을 내려줄 줄 알아야 한다고. 뜨거운 안녕, 뭐 그런 거?”

  “뜨거운 안녕?”

  “그게 뭐야.”
  “잘 된 이별이겠지.”


  나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입 모양으로 ‘안녕’하고 뱉었다. 그러자 정원이 이번엔 인상을 퍽 구긴다.


  “야, 뜨거운 안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뜨거운 안녕이란 세상에 없어. 그냥 찌질한 안녕만 있는 거지. 사랑하는데 어떻게 ‘뜨겁게 안녕’할 수 있냐. 데이고 싶냐 진짜?”


  나는 정원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근데 그때 내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한테 나는 ‘버스’가 아니라 ‘정거장’이 되겠다고 했었던 거 같아.”

  “왜?”

  “늘 그 자리에 있으려고.”

  “......”
   “그렇지만 나를 떠나가는 사람들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으려고.”

  “무슨 말인 지 알 것 같아.”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때로는 인연이 스쳐 지나간다는 게 무지 아쉽지만, 내가 언제든 그 자리에 있다면 사람들은 지도를 보고 날 찾아오면 되잖아. 그거면 충분한 거 같아. 우린 어른이니까. 그리고 나를 찾는 방법은 이제 어렵지 않으니까.”

  “어떻게 찾는데?”

  “네이버에 내 이름 치면 나 나오잖아. 이 정도면 지명등록 제대로 되지 않았냐.”

  “맞네.”


  선엽이 푸훗하고 웃어 보였다. 나는 선엽에게 뜨거운 유자차를 내밀었다.


  “자. 달달한 거 먹고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지. 늘 그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숙소로.”


  그 사람을 알게 된 이후로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잘 살고 싶은데, 가능하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이 성장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두런두런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 성장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성장욕구에 목말라하며 나아가는 것이 성장일까. 그러던 차에 그 사람에게 좋은 친구로 기억되고 싶어 ‘우아한 할머니’라는 말도 안 되는 워딩을 조합해 ‘아름답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우아한 할머니’가 되는 길엔 결코 우아하지 않은 성장이 따라붙는다. 여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방황과 방랑 끝에 스스로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랑해 준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내’가 ‘나’라는 정거장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 때로는 나를 떠나가려는 사람들의 무사와 안녕을 빌며 응원해 줄 것. 그리하여 언젠가 나를 다시 찾았을 때 더 성장한 모습으로 힘껏 웃어줄 것.


  아마 그때 그 사람이 내게 해주었던 말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선엽이 내게 엄지를 척하고 세워 보인다. 정원이 그 위로 또 엄지를 척하고 붙인다. 나도 웃으면서 엄지를 척하고 붙인다. 사람들이 그런 우리를 쳐다본다. 부끄럽다.


  “민주야.”

  “응?”

  “우리 숙소 각기 전에 거기 가자.”

  “어디?”

  “어제 너 못 간 책방. 아직 시간이 좀 남았잖아.”


  잊고 있었다. 어제 가지 못한 책방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길은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 왜냐면 나는 몸으로 기억한 길은 제법 잘 찾는 편이거든. 사람과의 인연도 마찬가지겠지. 한 번 만든 인연은 어떻게든 다시 잘 찾을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또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덧 광주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별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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