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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Jul 14. 2024

마지막을 직감할 땐 빨래를 제안한다

#동명책방1974, 그리고 ACC


  사람들이 내게 ‘대단해!’라고 말해줄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내게 기대하는 것만큼 내가 겉으로 보기에 보여줄 만한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열심히 써왔다고 했지만 등단 이전까지 나는 나를 공식적으로 증명할 만한 매체가 없었다. 퇴근 후엔 4시간을, 주말엔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글을 썼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까. 아마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꿈’에만 몰두하는 무모하고 미련스러운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보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20대를 글을 쓰는데 모두 쓸 것 같다. 쓰는 행위가 좋았다. 에이포용지에 꾸역꾸역 문단을 채우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대체로 나는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크게 후회하거나 마음을 쓰지 않는 편이다.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는 대신 ‘가능성’을 잘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타고난 직관력과 결단력도 있는 편이다. 나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시도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간절하더라도 일의 가능성을 미리 점쳐보는 편이며 이때 내가 내린 판단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결단력이 있는 편이다. 결단력이 빠르다는 것은 언제나 예스맨일 것 같은 나도 안 되는 것 앞에서 쉽게 포기하는 무력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양림문화마을에서 책방으로 가는 길. 책방은 숙소 근처에 있는 동명동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나는 하루에 휘낭시에 1개를 꼭 먹을 만큼 휘낭시에에 빠져 있었는데 그날도 거리를 걷는 동안 빵집을 발견하면 휘낭시에부터 찾았다. 스콘과 휘낭시에를 양손에 들고 가면서 선엽과 정원은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했다. 거리엔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쌀국수와 규동, 짬뽕과 파스타.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임정원이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야, 그냥 숙소에서 배달시켜 먹자. 솔직히 말하면 오늘 너무 걸어서 좀 지쳐.”

  “맞다. 나 치킨 쿠폰 있는데 그거 쓰면 되겠다.”
   “좋아. 그리고 뭐 포장하고 싶은 거 있으면 길 가다가 포장해 먹자. 오늘은 푸드트럭의 날이야.”


  이야기를 하며 가는 사이 지도가 가리키는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지도에 표시된 곳이 거리에는 없다는 거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거리의 한복판. 지도는 한 집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그 집에는 간판 하나 달려 있지 않았던 데다 불이 꺼져 있었다. 잘못 찾아왔나 싶어 몇 번이고 거리를 뱅뱅 돌았다.


  “민주야. 여기 맞아?”

  “응. 근데 이상하네. 망했나.”
 

  정원이 내게서 주소지를 받아 들고는 다시 검색을 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그다음엔 선엽이 검색했고 또 결과는 똑같았다. 지도는 변함없이 눈앞의 일반 가정집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식으로 앞장서 거리를 빠져나왔다. 정원이 뒤에서 뭐해? 하고 물었다.



  “숙소 가자. 망했나 보다.”


  선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런데 정원이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책방으로 전화를 걸어보라는 것이 아닌가. 전화를? 원래의 나라면 전화를 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날 터였다. 누가 봐도 책방이 없어진 게 아닌가. 문은 닫혀 있고 불은 꺼져 있고, 간판은 없고. 이 정도면 주인이 영업할 의지가 없는 거 아닌가. 설사 주소가 기록된 거라 하더라도 그 또한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주인의 잘못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내게는 ‘지도에 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서인지 가게가 없어졌다는 확신이 있었다.


  “됐어. 내가 보기엔 없어진 것 같아.”

  “왜, 그래도 전화해 봐. 혹시 모르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아냐. 괜찮아. 뭘 굳이.”
   “너 어제 여기 오고 싶어 했잖아. 우리가 크레페 먹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지마안. 한 번 전화해 봐.”


  정원의 말에 나는 홀린 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어서인지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초봄이었으나 바람이 제법 사나워 바람막이만 입고 있던 나는 추워하며 옆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뒤에 댔다. 첫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땐 받지 않았다. 이 봐. 주인이 의지가 없다니까. 내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하자 정원이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보라고 재촉했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으나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이번엔 전화를 받는 것이 아닌가.


  - 네.

  “어.. 거기 혹시 책방... 주인님.. 맞으신가요?”
   - 아, 네. 혹시 어떤 일로?

  “아.. 그.. 저희가 책방 앞에 왔는데 지도가 잘못 찍혀 있는 것 같아서요. 영업 중이라고 써 있긴 한데.. 혹시 어떻게 가면 될까요?”

  - 아, 여기 앞이세요?

  “네. 혹시 오늘 일찍 문을 닫으신 건가요...?”



  내 말에 사장님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곧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는 우리가 서 있는 집 안쪽에서 철컥, 끼익. 철컥. 끼익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더니 대문 하나가 열렸다. 정말로 일반 가정집 같은 곳의 대문이 열린 것이다. 선엽과 정원, 나는 모두 입을 헤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해진 하늘 아래 불 꺼진 집. 그리고 갑자기 불이 켜진 가로등과 가동을 시작한 책방까지. 다정한 이모 같은 아주머니와 그 뒤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고양이까지.


  “안녕하세요. 미안해요. 어제 행사가 있었어서 내가 정신이 없었네요.”

  “아. 아닙니다! 저희가 괜히 전화를 드려서.. 저희가 괜히 연락을 드린 건 아닌지... 여기 꼭 오고 싶었거든요.”

  “아! 아니에요. 내가 워낙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해서, 반가워요. 오늘은 사람이 안 올 줄 알고 내가 문을 닫아 놓고 있었네.”


  사건인즉슨, 이 책방은 원래 북스테이나 소규모 북토크로도 쓰이는 공간이며, 책방이라고 하지만 실은 사장님이 보유하고 있는 헌책 위주로 판매하는 곳으로, 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차를 나눠 마시며 대화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문 안쪽으로 들어서는데 세월이 밴 집의 풍경이 보였다. 흡사 어릴 적에 자주 가곤 했던 외할머니집을 떠오르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마당을 구성하고 있는 소규모 화단까지도.



  어릴 때 외할머니집에는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 식물을 좋아했던 할머니는 ‘ㅁ’자 구조의 집의 한가운데에 바위만 한 돌을 울타리처럼 덧대어놓고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식물들을 키워냈다. 동백나무부터 커다란 석류나무까지 종류별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옥상에도 식물이 있었다. 고추 같은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었다. 집 안에도 식물이 있었다. 난초나 선인장이었다. 여름방학 때마다 할머니집에 놀러 갔다. 이게 뭐예요? 내가 물으면 할머니가 대답해 주었고, 내가 또 식물에 관심을 보이면 할머니가 하나 가져가겠느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손재주가 필요한 일엔 영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마음을 읽으셨는지 가끔 할머니는 내 가방에 선인장 하나를 똑 떼어 몰래 넣어주셨다. 물론 서울에 오면 선인장은 버려졌다. 키울 수 있는 화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책방은 할머니집이 생각나는 집이었다. 유령이 있다면 어쩐지 할머니 유령이 있을 것만 같은 공간. 나는 아랫입술을 꾹 문 채 책방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선엽과 정원 역시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는지 말없이 뒤에 서 있었다. 내 표정은 누구에게나 읽히는 것인지 이번엔 책방 사장님이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실은, 내가 여기에 항상 상주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원래는 무인책방처럼 운영하려던 건데.”

  “무인책방이요?”

  “네. 여긴 사실 내 어머니의 집이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비어있는 집을 가만히 놔둘 순 없어 이렇게 책방을 열어볼까 생각했죠. 내가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광주에 책으로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기 어렵기도 하니까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죠. 여기서.”

  “오. 너무 멋있어요. 어릴 적에 살던 집을 개방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책방까지 여시고.”

  “사람이 좋고, 내 어릴 적 기억들이 휘발되는 게 너무 아쉬우니까요. 이렇게 하더라도 우리도 모두 잊혀지겠죠. 끝이란 건 그래서 참 슬픈 일이에요.”


  책방 사장님은 커피를 준비해 주겠다며 부엌으로 가셨다. 곧 고소한 커피향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라인더에 갈리는 커피콩의 소리와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멜로디. 그리고, 소파와 책장 사이를 넘나드는 개구진 고양이까지. 우리는 조금 더 차분한 마음이 되어 자리에 앉았다. 꼭 민박집에 놀러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남짓한 시간. 해는 저물어 가는데 사장님과 책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에 김애란 작가의 <입동>이라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입동>은 내가 아는 김애란 작가가 쓴 작품 중에 가장 최고라고 소문을 내고 작품이다.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인해 어린이집에 다니던 어린 아들을 잃고, 그 집에서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 죽은 아이.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 무력하게 무너져 가던 두 사람의 이야기. 그걸 극복해 보려고 노력을 해도 상처는 벽지에 튄 오미자즙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 작품을 읽으며 나는 ‘상실’이라는 단어를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나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은 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선엽이 하품을 하는 모습에 나는 이만 일어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사장님과 책으로 수다를 떨면 밤새 떠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배도 꼬르륵 거리는 것이 정말로 일어나야할 것 같았다. 나는 책방을 나오기 전 책을 하나 골랐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다. 전에 읽은 적이 있었으나 그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나만의 비밀로 묻어두겠다. 다음 숙소로 가려는데 사장님이 문득 ACC는 가보았느냐고 물어왔다. ACC요? 이번 여행지에선 ACC가 목적에 없었다. 전시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리 인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떄문이다. 그러니까 동대문에 있는 DDP정도의 인상. 숙소 근처에 있어 버스를 타러 갈 때마다 늘 지나쳐오던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들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에엥?! 광주하면 ACC죠. 가 봐요. 공연도 하고, 꽤 볼거리가 많은데. 아직 시간이 남았네. 서울 가기 전에 한번 들러요.”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기억이 있다. 언젠가 나는 그 사람에게 광주에 가면 무엇을 보야야 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무어라무어라 이야기를 했는데 긴장을 해서인지 그날의 대화가 기억에 나지 않았다. 광주로 여행을 가야겠다는 걸 결심했으면서도 내내 그가 어디를 가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포기를 하고 있었던 차였다. 영어로 뭐라 뭐라 했는데. 그걸 왜 봐야 하는지도 말을 해주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여기구나.”


  나는 짧게 탄식을 뱉었다. 나는 책방 사장님께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날 밤 나는 끝내 ACC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책방을 검색해보지 않았다면, 정원이 책방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내가 광주여행의 즐거움과 아쉬운 점을 사장님께 말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것들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그곳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직관력과 판단력만을 믿었다면.



  나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마지막을 직감할 땐 빨래를 제안한다.


  빨래는 뮤지컬 <빨래>를 말한다. 이상하게도 <빨래>를 본 친구와는 인연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창작 뮤지컬이기도 하다. 너무 좋아해서 내가 정말로 마음을 열고 싶은 사람들, 혹은 유쾌발랄해 보일 거라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와 다르게 진짜 나의 성정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빨래>를 보면 꼭 얼마 안 되어 인연이 끊어지는 걸 보고 나중에는 마지막을 직감할 때마다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로 <빨래>를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에게 <빨래>를 보자고 제안했을 때에도, 광주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던 것도. 나는 내 직감만을 믿으며 스스로 천진한 이별을 받아들이듯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그날 책방에서의 일을 이후로 내게 변화가 있다. 눈 밑의 점을 더 이상 빼지 않기로 했다. 10번을 넘게 뺀 점이지만 언제고 다시 자라나 내 마음을 괴롭혔던 점은 실은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관상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얼굴엔 초년운/중년운/말년운이 있다고 하는데 얼굴에 점이 있다면 그만큼 시련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일명 ‘장원영 점’이라 불리는 그 점은 배우자운이 좋은 점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아무리 없애도 자꾸만 피부의 표면을 타고 올라오는 점을 이젠 그냥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이상 화장으로도 가리지 않는다.


  둘째. 이별을 할 때마다 뮤지컬 <빨래>를 보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이별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 오면 먼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잘 갖춰진 선물 포장을 하듯 예쁘게 정리해 놓기보단 있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상황을 마주하고 떠나보내기로 했다. 조금 더 낙관적으로 변한 것 같다. 어떤 인연은 열심히 노력한다 해서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내 자리에서, 내 위치에서 꾸준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 운명처럼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운명을 믿지 않는 데다 기회를 탐하는 편이지만, 나는 이제 운명을 믿어 보기로 했다. 책방에서 ACC를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선엽과 정원을 먼저 숙소로 돌려보내고 홀로 ACC를 둘러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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