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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Dec 02. 2024

내 시간은 정시를 가리키고 있어

#27 인정을 받는다는 것

무언가 한 가지 일에 오래 빠져 있다 보면 점점 확신이 사라진다. 내가 정말로 그 일을 하고 싶었던 게 맞는지, 나는 지금 인정을 받고 있는 게 맞는지.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다다라있고,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을지. 처음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평가를 해내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르겠다.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다. 겸손한 척 고개를 숙였던 과거와는 다르다. 나는 정말로 사람들이 나를 멋지다고 해줄 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고 말해줄 때 가장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노력하고 있는 게 맞나? 내가 정말로 인정을 받아도 되는 게 맞나. 그러다 보면 진심으로 마음이 겸손해지고 말을 뱉을 때 조심스러워진다. 누군가 나를 좋게 봐줄 때 의심하는 마음이 들고, 자꾸만 속셈을 알아차리려는 못난 마음의 결이 흐르기 시작한다.


시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내 인생의 시간만큼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크게 하고 있었다. 내 나이에 비해 나의 성숙도가 높지 않은 것 같다고, 사람을 대할 때나 일을 대할 때 나는 아직 어리숙하고, 나이에 비해 제멋대로인 데다 별로인 선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도록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 스스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누군가 나를 좋게 봐주면 그 사람이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설적으로 물어대곤 했다. 내 예상을 빗나가지 말고 저리 가. 이게 필요하면 이걸 내어줄게.


가족,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한때 나는 마음은행을 들락거리듯 거래를 하며 지내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의 본질을 보기 보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곤 했다. 그런 게 가늠되지 않을 땐 어쩔 줄을 몰라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미성숙함’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동안 나는 나의 미성숙함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인생을 살아오며 내가 수집한 데이터대로, 상황과 사람의 태도가 예측 가능해진다는 것은 퍽 우울한 일이다. 그러나 예측했던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황에 직면에 다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시곗바늘을 조금 더 다음으로 밀어내는 일이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내 시계는 정시를 가리키게 되었다.


얼마 전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구사하는 문장과 언어들이 퍽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는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므로, 그 말을 들었던 밤에 나는 더 이상 나의 능력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직면하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거나 대단하진 못해도, 무언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인가 보다. 문장을 쓰는 스킬과 플롯을 짜는 능력에는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해낼 줄 아는 이야기꾼인가 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내 스스로 나를 평가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나를 인정하는 건, 내가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자 하는 길을 향해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아닌 나를 관통한 사람들이 말해줄 것이다. 그중에 나아져야 하는 길은 보수하고, 좋은 이야기는 기꺼이 받아들이며 내 세계의 폭을 조금씩 천천히 완성해 가려한다. 내 시간엔 지금 시차가 없다. 완연한 서른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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