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믿는 사람
최근 두 달 동안 7곳을 여행했다. 예정대로라면 전주에서 시작한 여행기는 홍콩에서 끝을 맺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파리행을 결심했다. 조금 더 쉬어도 된다는 말, 풀어져 있어도 된다는 누군가의 무책임한 한마디가 방아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무엇이라도 핑계를 대고 싶으니까. 그랬다고 말하고 다니려 한다. 어제는 파리행 항공편을 예매했고, 프랑스를 시작으로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9개국을 돌아볼 예정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즈음에 돌아오게 될 것 같다. 올해 생일은 하늘 위에 있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떠나서는 언제 귀국하게 될지 모르겠다. 힘이 들면, 어려우면 예전처럼 볼 안쪽에 생채기가 나도록 이를 악물고 버티는 일 따윈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젠 기꺼이 포기할 생각이다.
홍콩행 티켓을 예매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여행이 하고 싶어 떠난 것이 아니었다. 되도록이면 서울에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아니, 있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있으면 안 됐다. 서울에 있으면 자꾸만 나답지 않게 잠을 잤다. 무기력해졌고, 방 안은 치우지 않아 엉망이 되어갔다. 근 두 달간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소화해 내기 위해,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와 있는 동안에는 거의 한강을 달리거나 체육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편이 가장 좋았다.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면 웃고 있었으나 사회적인 가면을 걷어낼 수 있을 땐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눈을 감고 잠을 잤다. 꿈은 꿔지지 않았다.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보면 어차피 그 현실이 몽롱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있는 동안에 말이야. 나는 마치 내가 죽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좋았어, 라는 말을 어디에도 해본 적이 없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좋았다. 내게 역할을 부여하지 않아서, 그래서 좋았다.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만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타이베이역에는 노숙자가 많았다. 어느 날엔 그들 사이에 앉아 가만히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런 때면 지독한 냄새가 내게도 옮겨지는 듯했고, 그 냄새는 내 존재를 지워가는 듯해 애석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여러 번 크게 길을 잃었고, 7곳을 여행하는 동안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사전에 정보를 하나도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도 몇 번 마주했었다.
두 달 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묻고 다녔다. 그런 실없는 소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이나 그저 묻고 다녔다. 외국인들에게도 묻고, 친구에게도 묻고, 트레바리에서도 묻고 다녔다. 나의 이야기를 이곳에서까지 내밀하게 털어놓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어쩌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가장 사소한 걸 얻는 게 어려울까. 왜 내게만 항상 어려운 선택지가 떨어지는가 싶었다. 여행을 하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속이 너무 상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올해 내내 마주했던 사람들, 내가 살아오며 경험했던 이야기들, 그런 것들을 미루어보아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절망스럽게도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었다.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조차도 없다는 걸 믿고 싶다는 이야길 들었을 땐 실망감이 컸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살아가야 할까? 나는 왜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더 보겠다고. 얼마나 더 무너지려고. 선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무엇을 더 지켜야 하고 인내해야 할까.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나라는 인간은 희망이 없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행하는 동안 사람들이 나를 보고 퍽 놀랐던 것은 18리터짜리 배낭이 내 짐의 전부였다는 사실이다. 통영을 여행할 땐 호스트인 할머니 분께 여자애가 뭐 이렇게 더벅하게 다니냐며 꾸지람도 들었다. 나의 짐은 사실 노트북과 잠옷, 그리고 여벌 옷 1세트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비닐 같은 소재의 옷을 구입해 매일 옷을 빨아 입었다. 여행 초기에는 괜찮았는데, 날이 추워질수록 덜 마른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좀 힘들긴 했다. 주변의 오래된 친구들에게 비난을 받는 나의 가장 큰 단점 중에 하나는 소중한 것들을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모으지 않는다. 이를테면 손 편지나 사진, 작달만한 인형이나 스티커 같은 것들. 우정링이나 친구가 여행에서 사 온 액세서리 같은 것도 실은 버리는 편이다. 내 방에는 이불보와 책상, 그리고 5단 서랍장이 전부다. 아파트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방에서 전화를 하면 목소리가 울릴 정도니까. 얼마나 비어 있는지 가늠이 될 듯싶다. 나는 소중한 것이 많을수록 쉽게 불안해진다는 것을 안다. 여행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기념품을 사지 않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거나 중요한 것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몸을 더듬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여행지를 떠날 때마다 속으로 되뇌인다. 잃어버려도 돼. 떠날 수만 있다면 괜찮아. 핸드폰과 신분증만 손에 꼭 쥔 채 확인한다. 나머지는 잃어버려도 되는 것들뿐이니까.
그리고 여행을 하며 인생도 그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쓸모를 찾아 헤맸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내 스스로도 역할을 원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찾아 헤맸다.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 분명하게 있어야만 했다. 세계의 모든 것들이 나의 계획과 통제로 이루어졌다. 오만하게도 나는 내가 가장 정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니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보여지는 허영에 불과했을 뿐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나는 너무나도 손에 쥔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중요한 것, 우리는 중요한 걸 찾아 끝내 헤매다 죽어버리겠지만 여행을 하며 내가 느낀 것은 그것이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라는 걸. 그저 그 자체의 본질만이 있을 뿐이라는 걸. 서울을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서울을 떠나든 떠나지 않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을 떠나오며 계산하고 걱정했던 모든 것들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사실 거창하게 보였던 나의 행보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파리행 티켓을 예매할 수 있었던 건 홍콩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것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덜 마른 빨랫감을 몸에 걸치고, 축축했던 속옷과 여권을 넣어두었던 복대 사이, 가슴속에 손을 넣고 생각했다. 이제 여행을 그만 마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현실로 돌아가서 내 인생의 통과의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런 계획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중요한 건 내게 불안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다스리느냐이지, 무엇을 불안해하느냐를 찾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어떤 선택도 몹시 애쓰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여행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인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탑승 30분 전에 전화를 걸었던 친구가 있다. 시작은 뜬금없이 보았던 모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 그 친구를 생각했다. 나는 그 친구가 나의 허영을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이 싫었는데, 그래서 멀어지고 싶었는데 어쩌면 그 친구는 나의 허영을 좋게 본 것이 아니라, 내가 허영이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악하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의 면면들이 어쩌면 순수하고 진실됐는데 내가 오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사과를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순간에도 나는 나의 고고함을 세우는 게 우선됐던 것이다.
너 어떻게 생각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니? 내 물음에 그 친구는 뜸도 들이지 않고 말했다. 있지.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 없다고 하는 사람 말 듣지 말고, 설사 없다고 하더라도 있다고 믿어. 그렇게 살아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났다.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온몸에 힘을 빡 주고 여권을 쥔 다른 손의 주먹을 꼭 쥐었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할 때마다 ‘글쎄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쓰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런 비밀스러움이 너무 불편했는데. 강인하고 단호하게 뱉던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하늘 위에서 오래 울었다.
그때의 목소리와 내가 바라보고 있던 탑승구와 해가 지고 난 뒤의 공항의 풍경.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젠 알겠다. 어떤 사람이 되는 걸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면적이고, 그 이유 또한 모호하고 다양할 것이다.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듯 무엇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그리고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겠다. 나는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고, 씩씩하지 않는 데다 엉망진창이고, 미성숙하고, 별로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런데 그뿐이다. 그것도 실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