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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Sep 16. 2024

유령하는 여행

#24 조금만 더 멈춰 있어도 될까

타이베이를 헤매는 동안 나는 철저히 유령이었다. 누구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나를 찾지 않았으며, 나를 걱정하지도, 내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하던 대만의 이미지와 달리 심지어 대부분의 이들과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몸을 이용한 언어도 통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에선 내가 앞에서 무어라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는데도 눈을 딱 감은 채 외면하기도 했다. 없는 사람 취급을 하다니, 여긴 참 불친절한 도시구나. 이제 와 솔직히 말하자면 대만에 와서 첫날 느꼈던 감상은 그것이었다. 불친절하다. 그리고 불쾌하다.

  같은 모양의 건물을 여러 번 지나친다. 사람으로 번화한 거리와 누구도 지나지 않는 버려진 거리를 지나친다. 언제부터 버려졌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와 마른 잎사귀를 지나친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다 보면 내가 마치 죽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선 누구도 내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도 내게 계속해서 움직이라고,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응원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정처없이 걷고, 보고,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서 타이베이가 좋았다. 유령 취급을 받을 수 있어서.

  최근에 내게 고민이 있다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는 것.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는 마음이 불안해야 하는데 불안하지가 않아서 불안하다. 나도 안다. 지금이 내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걸. 이때다 싶을 때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걸. UX라이터로서도, 소설가로서도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인지하고 있으나 현실을 생각하면 몸이 불에 달군 돌덩이처럼 뜨겁고 무거워진다. 오사카에서 돌아와 서울에서 예정된 일정을 마치자마자 쉬지 않고 공항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서울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이런 때일수록 서울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엔 이상하게도 자꾸만 서울과 멀어지고 싶었다. 유령이 되고 싶었다.  

  서울을 떠나 있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때로는 내가 누구인지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누군가 내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직업이 무엇이냐고, 나이는 어떻고, 어떤 시간들을 보내왔는지 물어왔을 때, 나는 자주 기억을 더듬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나는 그저 나를 한국인, 여성, 여행자로만 소개했다. 다른 것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에서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낯설어졌다. 일을 위해 다시 들어와야만 했던 한국에서의 이틀이 오히려 한 밤의 꿈같았다. 현실 감각을 아주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서울에 돌아가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유령으로 살아가도 괜찮을까. 나를 조금만 더 잃어버려도 괜찮을까.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잃어버릴 이유가 전혀 없는데,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머나먼 어른이 되어 버렸는데 나는 자꾸만 어딘가 고장 난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춘기가 이제야 찾아온 걸까. 아니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늪지에 발을 담궈버린 걸까. 알 수 없었다. 힘을 내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어 보지만 도저히 힘이 나지 않고,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온종일 숙소에 누워 잠만 자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타이베이를 여행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실은 고궁박물관에서 101 타워로 가는 길이었다. 길을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던 루트였다. 비교적 접근하기가 쉬웠던 다른 루트에 비해 박물관에서 이동하는 경로가 많았을뿐더러 구글에서 알려주는 경로를 따라가기가 어려웠고, 한자를 읽지 못해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어서 그런지 매우 지쳐있었다. 오사카는 히라가나의 음이라도 읽을 수 있어 눈치껏 루트를 따라갈 수 있었다면, 타이베이는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코 앞에서 버스를 몇 대를 놓쳤을 땐 또다시 차오른 무기력함에 조금씩 눈이 감겨오기까지 했다. 이대로는 고립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앞으로 다가온 한 대의 버스. 작은 마을버스 규모에 문이 미어터지도록 사람이 올라탔다. 그걸 타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갈 것이라는 정보가 없었는데 그냥 타버렸다. 될 대로 되라지. 오늘 숙소에 못 가면 비행기 놓치는 거고, 이대로 놓치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여긴 길가 아무 데나 누워 있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 말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헛웃음을 짓는데 함께 탄 사람들-주로 고딩들 같았다-이 나를 밑에서 밀고, 위에서 밀고, 심지어는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이미 좌석에 앉아 있던 노인들은 나보고 내리라고 손짓했다. (이전에 사람이 붐벼 한 번 내렸다 버스가 쌩하고 지나친 경험 이후로 더더욱 내릴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승부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 여기서 절대로 못 내려.”

  분명 관광객들만 탄 것 같았는데, 박물관에서 한국인도 많이 봤는데. 마을버스 크기의 그 작은 S19번 버스엔 한국인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영어로 나 이거 타는 거 맞냐.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버스 안은 침묵. 그러다 누군가 또 손짓하면 알 수 없는 언어가 이리저리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는 끊임없이 영어로 얘기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국의 언어로 얘기했다. 우리는 서로 손짓하고, 나는 손잡이(가 없어서 기둥 같은 걸 붙들었는데 심지어 자리가 없어 문 앞에 낑겨 있느라 한 발은 허공에 들려 있었다)를 잡은 채 또 무어라 얘기하다 결국엔 한국어로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싫다, 나 타워 갈 거다. 나 아직 버블티도 못 먹었다. 나 아직 못한 게 너무 많다. 나 숙소 가서 글도 써야 한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 여기 와서 이러는 줄 아느냐. 다시 한국 가서 예정된 일들을 또 해야 한다. 그런 말들을 예의도 범절도 버린 채 그들에게 막무가내로 쏟아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상상이었다면 감동의 물결 내지는 무언가 변화가 있었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작은 마을버스는 커브를 돌자마자 끼익 소리를 내었고, 버스 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수다를 떨기 바빴다. 나도 씩씩거리는 분을 삼키고 다시 휴대폰을 들어 구글맵을 검색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어디든 내려주겠지. 그렇게 제대로 된 경로 설정도 하지 않은 채 내가 움직이는 경로만 확인했다. 예정대로라면 스린역에서 내려야 했지만 전광판이 고장 나 있던 버스에 역을 지나쳤고, 네비는 생각보다 스린역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또다시 겁이 났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진짜 겁이 난 이유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오늘 하려 했던 타워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 자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얼마나 강박적인 삶인가. 평생을 이렇게만 살아왔으니.

  평소의 나였다면 다음 정거장에 내려 스린역으로 걸어서 되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스린으로 돌아가는 대신 다음 지하철역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몇 번 지도를 보다 보니 여행지를 찾아가는 일은 정해진 루트가 아니더라도 넓은 시선으로 지도를 봐 가며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방향을 알아간다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새 버스에는 3분의 2이상이 내렸고, 여전히 기사와 승객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구글맵을 다시 보았다. 온통 알 수 없는 이름들 뿐이었지만 한 가지, 지하철 모양의 아이콘이 눈에 띄었다. 저기다! 저기서 내려야 한다! 아마도 중산역이었던 것 같다. 다시금 목적지가 정해졌다. 즉흥적인 판단과 결정이었다. 괜찮을까. 괜찮을까. 등 뒤로는 모르는 아저씨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해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원래 가려던 101 타워와 더 가까운 루트에 있는 역에 내릴 수 있었다. 그런 걸 노린 건 아니었는데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외국을 여행하면 온 정신을 당장의 목적지에만 몰두하게 된다. 어떻게 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면 오히려 생각이 단순해진다. 다른 선택지나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은 싹 사라진 채 당장의 도착해야만 한다는 생각, 그 욕망에만 충실해진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목표지점을 벗어나 완전히 통제력을 잃고 싶을 때도 있다. 목적지가 아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스르륵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날의 나는 그랬다. 그러나 가장 힘이 빠져 있을 때, 내 자신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시금 나다운 기질을 발휘해 버렸다.

  타이베이는 나와는 맞지 않는 도시다. 깔끔하지 않고, 정돈되어 있지 않으며, 친절하지 않다. 그다지 애쓰는 듯한 노력도 없는 것 같다. 방치된 도시. 방치되어 있지만 어딘가에 애정이 묻어 있는 듯한 인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말라고 내버려 두는 듯한 도시. 당장의 더위와 배고픔만 해결하면 그만이라고, 아니 어쩔 수 없는 걸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도시. 대만은 나를 자꾸만 깨웠다. 아무런 정보 없이, 대비 없이 한국만 아니라면 된다고 생각하고 떠났던 그곳에서 원래의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고, 가장 무력하고 가장 힘이 들 때 그 위기 덕분에 나는 더 독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대만은 죽어가는 나를 자꾸만 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대만이 좋다. 그리고 그래서 이곳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체되어 있으려 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을 테고, 아마도 내가 지금을 불안하게 여기지 않는 건, 그만한 욕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로 돌아갈까, 회사로 돌아갈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볼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다음 티켓을 예매했다. 아직 숙소도 정하지 않았고,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도시를 말이다. 겉멋이 들어, 혹은 사는 게 여유로워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여전히, 서울을 견디지 못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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