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암스테르담~헤이그 (D+13)
암스테르담에서의 첫 기억이 매우 인상적이었으므로, 나는 전날까지도 헤이그로 가는 열차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전날 브뤼셀에서 함께 방을 쓴 룸메는 모두 입을 모아 헤이그에 가보라는 말을 해주었고, 만일 헤이그에 가게 된다면 이틀간의 암스테르담 중 하루를 온전히 헤이그에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헤이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편도로만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일정인 데다, 로테르담에 가까이 있어 굳이 둘러가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이 엄청나게 자유로운 암스테르담에서의 하루를 포기할지 말지.
결론적으로는 헤이그를 선택했다.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간 곳 중 실패한 곳이 없기 떄문이다. 다시 인터시티 열차를 타고 헤이그로 가는 길, 맞은편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인쇄된 종이를 열심히 읽고 있었고, 그동안 나는 짧은 글을 썼다. 평소 같았다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역과 지도를 번갈아 보는데 시간을 다 보냈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어쩐지 지도를 보지 않아도 척척 잘만 길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 언제고 이곳에 온 적이 있는 것만 같은 인상.
헤이그는 역사에서나 등장할법한 지명이다. 헤이그 특사가 파견된 곳이자, 지금의 한국의 정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최후의 시발점이 그곳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헤이그에는 이준열사기념관이 있다. 한국사람에게는 ‘헤이그 특사’가 가장 크게 기억에 남겠지만, ‘헤이그’라는 지역 자체는 예술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헤이그에는 스피노자의 생가가 있고, ‘마우리츠하이스’가 있다. 바닷가와 인접해 있어 문화가 조금 더 개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이그에 대한 첫인상은 내가 암스테르담에 대해 느꼈던 첫인상과 유사했다. 고요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도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거리에 누워 있는 노숙자들. 우중충한 날씨와 풍경. 강물 위에 떠 있는 썩은 낙엽들. 조금 걷다 보니 한국어 간판이 눈에 보였다. 몇 곳의 한식당을 지나니 보이는 이준열사기념관. 그곳은 그가 한때 묵었던 호텔을 개조하여 만든 공간이었다. 문을 열기도 전에 도착해 2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주변을 빙빙 돌다 제시간에 맟춰 도착하니 이미 와서 사진을 찍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벨만 누르고 들어가지를 않는다는 거다. 내가 들어가려 벨을 누르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네?”
“몇 번이고 노크를 하고, 문을 두드렸는데도 인기척도 없어요.”
나는 그럴리가 없다며 벨을 누르고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상하네... 오늘 휴무일이 아니에요. 심지어 벌써 문을 열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나도 모르겠네. 11시에 문을 열려나? 오늘은 휴일이 아니라 일찍 열어야 하는데..”
세한 기운이 그들과 나 사이를 지나가는 듯했다.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상상 속의 내부를 떠올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파른 계단이 하나 나온다. 그리고 나면 호텔 방의 객실이 차례차례 기념물들로 꾸며져 있다.
“우리는 카페에 가서 조금 기다리려고요. 아니면 내일 와야죠. 시간은 조금 촉박하지만. 헤이그에 왔는데 이곳을 지나칠 수 없지.“
그들은 그 말을 남기고는 카페가 있는 곳으로 사라졌고, 나는 자리를 뜨는 대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30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11시가 지난 시각. 헤이그에 이것 때문에 왔는데 이렇게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좋은 암스테르담도 내던지고 왔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다니. 이렇게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지도를 보니 연락처가 하나 남겨져 있었다.
’국제 전화 함 걸어봐?‘
통화 요금에 몇 번을 망설이다 걸었던 전화. ’할로.‘ 네덜란드의 인사가 들린다. 통화를 받은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로 보였다. 나는 순간 영어로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한국어로 해야할까 고민하다, 조심스레 한국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안녕하세요! 저 여기 문 앞에 와 있는데요! 혹시 오늘 휴무일이실까 해서요!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여기 너무 와보고 싶어서...!‘
내 말에 할머니는 갑자기 ’아, 이런!‘하고 탄식을 내뱉으시더니 미안하다는 말을 시작했다. 순간 불길했으나 이어 들려온 이유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암스테르담에 사는데, 스키폴공항 쪽에 열차 열차 지연이 심각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아요.‘
늦게? 얼마나 늦게?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직행 열차는 오후 네시 반 경이 막차였고, ’늦는다‘는 말에 나는 눈에 휘둥그레해졌다. 할머니는 내 목소리만 듣고도 눈치를 챘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이미 10시 30분에 열었어야 하는 문을 11시 30분쯤 도착해 열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11시 25분. 할머니는 이미 헤이그역에 도착하신 상태에서 전화를 받으신 것이다.
“아, 그렇다면 천천히 안전하게 오시길요! 빗길이라 조금 미끄럽습니다.”
할머니는 이곳을 찾아온 한국인이 있는데 어떻게 느리게 가겠냐며 빨리 달려오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말끝마다 숨소리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이 서둘러 오는 듯한 모양새였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다가 꽈당하고 미끄러지시면 어쩌지? 손이 시려워 손 모아 장갑을 낀 손을 호호 불며 괜히 운동화를 픽픽 차며 기다리는데 멀리서 보랏빛 깃털을 꽂은 할머니 한 분이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왔다.
“여기에요, 여기!”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코가 빨개져 있다며 내 팔의 한쪽을 쓰다듬었다. 아이고, 학생 추웠겠어. 할머니는 바닥이 젖어있는 줄도 모르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이어 들려오는 전화벨소리. 할머니는 전화 따윈 나중에 받겠다며 내게 태극기를 한 번 걸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12월의 첫 손님이잖아. 내가 첫 오픈할 때 손님이 기다리면 특별히 태극기를 달게 해 주거든요. 한 번 해보지 않을 테야? “
할머니의 말투는 조곤조곤 천천히 들려왔고, 정확했고, 또렷했다. 할머니는 내게 긴 나무막대기를 손에 쥐어주며 태극기를 꽂는 법을 알려주었다.
”카메라 줘 봐요. 내가 사진도 찍어줄게. “
나는 혹여 태극기가 망가지거나 나무 막대기로 건물에 스크래치를 낼까 조금 두려웠지만 맘 크게 먹고! 태극기를 걸었다. 별 거 아닌 거였는데, 이국에서 역사적인 장소의 태극기를 건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벅찬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한국인이라는 거, 잘 체감되지 않는데 이럴 때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태극기를 달고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런 벅찬 감정을 느끼겠지? 여권검사를 할 때마다, 혹은 내 국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동양인’이라는 것과 ‘한국인’이라는 것에 묘한 차별을 둔다. 이곳에서 내가 받은 한국에 대한 인상이 그랬다. 한국을 흥미롭게 여기는 외국인이 많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헤이그의 명소들은 대부분 늦게 문을 열었다. 미술관도 1시에 문을 열고, 일주일에 단 두 시간 문을 연다는 스피노자 생가도 오후 2시가 되어야 문을 연단다. 이준열사기념관을 나오니 1시간 정도 붕 뜨는 시간이 생겼다. 잠깐 점심을 먹을까 생각하다 나는 전날 검색해 둔 정보로, 여기서 조금만 트램을 더 타고 가면 해변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앞으로는 내륙으로만 갈 예정이기 때문에 만일 바다를 보게 된다면 이곳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유럽의 바다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스테르담에서 헤이그까지 이동하는데 든 금액은 약 14유로 정도. 충전해 두었던 카드의 잔액이 충분하지 않은 듯 보였고, 헤이그는 암스테르담보다는 덜 발달되어 있는지 충전소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나는 거의 바닥인 잔고로 헤이그의 끄트머리까지 갔다 와야 했던 것이다. 만일 바다를 보더라도 10분 남짓한 시간만 쓸 수 있었다. 조금 불안했지만 (또다시)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 보자. 그래, 가고 싶은 곳을 가야지!
여러 여행지를 머물고 계획을 짜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 고민하는 루트들이 있다. 시간을 거기에 쓰다 정작 현재의 투어를 즐기지 못해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여행을 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결정들은 순식간에, 단번에 내려버리는 것 같다. 내가 이곳 유럽에 오는 것도 너무나 예측 가능하지 못한 곳에서 내린 결정이었고, 순식간에 내린 결정이었다. 벌써 여행의 절반에 다다르고 있는 시점. 헤이그의 바다에 가는 것은 예상한 적도 없었고, 가려는 용기가 남아있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트램을 타고 마지막 정거장까지. 목표물은 해변가 근처의 알지 못하는 미술관을 지정해 두었다. 탈 때부터 조금 불안했으나 그날 나는 꼭 바다를 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9 정거장 정도 지나 30분 정도의 이동 끝에 도착한 곳. 트램에서 내렸을 땐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우산을 챙기지 않아 눈앞이 흐릿했다. 날은 어찌나 춥던지. 그러나 멀리서 맡아지는 익숙한 냄새. 바닷가 특유의 물비린내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10분 남짓한 거리를 더 걷는 동안 수없이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나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것을 보겠다고 가끔 고집을 부릴까. 주면엔 관광객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람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날은 우중충하고, 안전하지 않은 기분이 들고, 몇 번이고 망설였다. 돌아가야 하는 길을 말이다.
그러나, 끝까지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결말의 끝을 봐야지. 좋든, 싫든 말이야. 끝을 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주한 첫 파도.
살면서 그렇게 신성해 보이는 풍경을 본 적이 없다. 당시 내 기분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날 내가 본 바다의 풍경은 환희 그 자체였다. 그 어떤 것도 없던 해변가. 산책을 나온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만이 남겨져 있던 모래사장. 주변은 공사장이었고, 아주 멀리 관람차가 있었으나, 내가 도착한 곳은 그저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해변가 같았다. 비바람이 언제 몰아쳤는지 그쳤고, 그림 속에서나 볼법한 두터운 구름이 층층이 하늘빛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신기했다. 묘했다. 그리고 경건해졌다. 나는 그날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도 잊은 채 잔잔하게 덮쳐오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도달한 순간 바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10분을 있겠다고 1시간을 쓴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헤이그의 바다. 유럽의 해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날 ‘마우리스하이스’에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것도 인상적이었고,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와 담 광장과 왕궁을 본 것도 멋있었고, 야경을 따라 걷다 목도리를 입 안 가득 꽉 물며 걸었던 홍등가도 기억에 많이 남지만, 내 기억에 진실로 많이 남을 것은 아마 헤이그의 바다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