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혼자 사는 나의 집은 자주 바뀌었다. 특히 대학생 때는 이사가 정말 잦았다. 첫 집은 번화가 쪽에 위치했었다. 집 바로 앞에는 술집이 있었다. 새벽 2~3시까지 시끌벅적한 소리는 매일 들렸고, 휘황찬란한 술집 간판의 조명도 우리 집으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고통이 전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다음 살 게 된 집은 좁지만 깨끗하고 조용했다. 학교와 가까워서 등교하기도 좋았지만, 그다음 해에 휴학을 하게 되어 더는 살지 않았다. 복학하고 살 게 된 집은 오래되었지만 넓은 집이었다. 바퀴벌레가 종종 등장하긴 했지만, 자취 n년차에게 그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대학 시절 통틀어 그 집에서 가장 오래 살았지만 나는 곧 졸업을 해야 했다. 어디로 취업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학교는 떠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가 오랫동안 머무는 집은 아니라 생각했다.
잦은 이사와 정착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집’은 항상 잠깐 머무는 곳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SNS에 나오는 아늑하고 예쁜 인테리어는 쉽게 시도할 수 없었다. 다음 집이 어느 지역인지, 어떤 집인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쉽게 물건을 사들일 수 없었다. 그동안 내 자취방은 무조건 풀옵션으로 찾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던 인테리어는 엽서와 포스터 붙이기였다. 필사한 종이를 뜯어 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색감이 채워진 방이 좋았다.
졸업과 취업을 하고 지금 이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 생활하며 삶의 터전을 찾다 보니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 생활에 120% 만족하고 있기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이곳에서 계속 살 게 될 거 같다. 서울 자취집은 엽서와 포스터에서 벗어나 작게나마 인테리어를 도전하게 되었다. 우선 집의 메인 컬러를 정했다. 네이비 컬러와 우드로 맞추고 싶었지만 좁은 원룸에서 그 색감은 집을 더 좁아 보이게 했다. 아쉽지만 가장 무난하고 넓어 보이게 하는 베이지로 정했다. 베이지와 브라운 계열이 섞인 이불과 커튼. 그리고 옅은 그레이 색의 러그로 바닥을 깔았다. 큰맘 먹고 흰 수납장을 샀다. 즐겨보는 한 브이로그의 유튜버가 사용하는 수납장이었다. 책과 오브제로 수납장 위를 꾸몄고 자잘한 물건들은 다 수납장 안으로 숨겼다. 프리랜서 특성상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작업할 공간도 필요했다. 방 한쪽에 집주인이 옵션으로 준 흰 책상을 놓았다. 나는 책상에 앉으면 등 뒤에 벽이 있어야 집중을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방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의자를 놓았다. 내가 이런 성향이라는 것도 혼자 살아보니 알게 된 것이다. 엽서와 포스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좁은 방에 포인트를 주는 건 그것만 한 게 없다. 아름다운 사진이 실린 포스터 2장과 신문과 같은 타블로이드 판형의 잡지를 붙여 놓았다. 예전에는 여기저기 많은 양의 사진을 붙였다면 지금은 소량으로 붙여 깔끔하고 심플한 분위기를 냈다. 지금 사는 이 집의 가장 멋진 인테리어는 채광이다. 자연만큼 좋은 인테리어 소품은 없다. 매일 아침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내가 사는 이 공간을 밝게 비춰줄 때, 지금 이곳에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가지게 해준다. 인테리어에 겁을 먹었는데 막상 해보니 크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집 꾸미기는 메인 컬러와 예쁜 소품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집에 오랫동안 살고 싶지만 나는 아마 또 이사하게 될 것이다. 집을 찾아 나서고 꾸미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다. 하지만 점점 내 취향대로 꾸며져 가는 집과 한 지역에 정착하려는 나의 마음을 보면 한편으로는 또 즐겁기도 하다. 내 취향이 가득한 집을 꿈꿔보며 오늘도 인테리어 앱을 뒤적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