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예스터데이를 기다리며 1

다시, 1년

by 장명진

다시, 1년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약간 술에 취해 있었고, 정류장 위의 편의점에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day)가 라디오 사연의 신청곡으로 들려지고 있긴 했다. 그리고... 그래 그리고 잠깐, 아주 잠깐 1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고 해도 좋다. 정말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떠올렸으니까. 그냥 순간의 영상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기억. 그녀가 버스 유리창 속에서 내게 손을 흔드는 한 컷. 흔들바람이 불면 휘휘 흩어지고 말 장면. 사진으로도 남겨둘 수 없는 순간의 미소.


그런데... 아니 그렇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그 환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싶었다. 그리고 난 손을 흔들었다. 그 뒤 내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변함없이 내 자취방에서 깨어났고 볕은 여느 때처럼 희미하게 방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가지 기이한 일을 말하자면, 서기 2000년에 잠든 나는 서기 1999년에 깨어난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게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냐고 부정하고 싶겠지만(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 소설 같은 이야기는 나에게 일어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소설처럼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깨어난 곳, 아니 때가 2000년이 아닌 1999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여느 영화들에서 보여준 것처럼 지나간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아니었다. 왜냐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TV를 거의 보지 않는 까닭이다. 내가 깨어난 때가 1999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조금 섬뜩한 일을 통해서였다. 바로 죽은 친구로부터의 전화였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철썩 같이 믿고 있던 K는 1999년 12월 31일과 2000년 1월 1일 사이에 죽었다. 그는 개인을 통해서라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위대성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죽기 전에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10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생의 끈을 묶지 않은 번지점프였다. 소원은 푼 셈인가. 아무도 K가 왜 죽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K는 종교적 신념을 위해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언젠가 국사 교과서에 이차돈의 순교처럼 기록될 날도 있을까. 비록 그가 다니던 노스트라다무스교는 예언의 실패와 함께 해체되었고, 교주는 신도 살해혐의로 구속되었지만. 그 모든 일이 2000년 1월, 한 달 사이에 신속히 처리되었다. 20세기의 안 좋았던 기억들을 털어버리려는 사람들처럼 사회도, 세계도, 어쩌면 지구도 다를 게 없었다.


그런 K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내가 죽었구나.’였다. 그러나 곧 K와 일상적인 얘기에 돌입하고 어디서 언제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동안, 마음 안에서 쾌활함이 반짝거리며 자라나자 도무지 죽었다는 생각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이 이렇게 신나는 것이어도 되느냔 말이다. K는 죽지 않고 멀쩡했다. 우리는 1999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김동률과 이적의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은 카니발 음반의 얘기라든가, 드디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실현될 날이 다가온다 등의 이야기. K는 자살을 할 만큼 그렇게 우울한 아이가 아니었다. 되려 나보다 밝고, 주위 사람과 잘 조화되는 성격이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늘 겉돌고, 일대일이 되어야 마음을 조금 풀어놓는 나와는 달랐다. 어쩌면 한 사람이 끊임없이 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어둠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K와의 전화통화를 끝내고 지금까지 내가 어째서 1999년으로 온 것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보다는 ‘어째서’가 더 고민거리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도무지 모르겠다. 정답이 없다. 그래서 난 그냥 다시 주어진 1년을 군말 없이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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