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인테리어 03
병원은 왜 온통 하얀 색으로 가득할까. 페인트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는 재밌는 견해도 있지만, 역시 정설에 가까운 것은 위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라는 견해 쪽이다.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곳이니 해로운 균들이 증식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를 위해 위생 상태 식별이 쉬운 하얀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유럽의 집들은 또 왜 그럴까? 북유럽 인테리어 역시 벽을 하얗게 칠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특히 위생에 민감해서 그런 걸까? 아니다. 북유럽 인테리어에 하얀색이 주로 사용되는 것은 북유럽 지역의 날씨 탓이다. 믿기지 않지만 북유럽의 해는 이르면 오후 1시부터 저물기 시작한다. 자연의 빛을 머금고 살기 어려웠던 북유럽인들은 최대한 집 안에 빛을 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인테리어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하얀색은 바로 태양빛을 반사시켜 집안을 빛으로 가득하게 만들기에 최적의 색이다.
그러나 단지 색의 ‘기능’에 집중했던 시대는 점점 저물고 있다. ‘색채심리학’의 발전에 따라, 자주 마주하는 색이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패스트푸드점에서 애용하는 빨간색은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 쉽게 질리도록 만드는 색이다. 보다 많은 손님을 끌어들인 후, 이들이 빨리 매장에서 나가도록 만들고 싶은 패스트푸드점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색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바야흐로 색의 ‘마음’에 집중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북유럽 인테리어’를 목표로 했던 파주 집의 경우 무려 1개월에 걸쳐서 벽과 천장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버렸던 나였다. 그러나 연남동 집은 ‘파리지앵 하우스’가 아닌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폴란드의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명화 <블루>를 만나기 이전부터도 나의 소울 컬러는 바로 ‘파랑’이었다.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동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는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블루’로 나를 사로잡곤 했었다. 우선, 집을 대표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거실 벽을 파란색으로 칠하기로 결정하고 곧 실행에 옮겼다. 파랑은 점차 연남동 집의 마음이 되어갔다.
북유럽과 달리 우리에게는 풍부한 4계절이 있으니 보다 더 다양한 색을 실험해볼 수 있다. 수많은 색 중에 과연 어떤 색을 칠하면 좋을까? 곧장 여러분이 좋아하는 색을 칠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 소개하는 색의 마음을 이해하고 결정하면 더 좋을 것이다. 색에는 마음이 있다. 물론, 색 자체에 감정이 있어서 이따금 크림슨레드색 벽이 내게 폭발하듯 화를 낼 수도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각각의 색은 저마다 우리에게 서로 다른 마음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색채 심리학에 의거한 색의 마음을 아래에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여러분 각자가 처한 마음의 상황에 따라 집의 색을 때마다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빨강 - 생명력과 에너지를 표현. 기분을 들뜨게 한다.
주황 - 따뜻하고 활발한 느낌. 식욕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노랑 - 밝고 즐거운 기분을 준다. 정신을 각성시키는 효과도 있다.
초록 - 상쾌하고 신선. 숲 속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
파랑 - 차갑고 차분한 느낌.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분홍 - 귀엽고 사랑스런 분위기. 로맨틱한 상상을 떠올릴 수 있다.
갈빛 - 땅을 연상시키며,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 다른 색과의 조화가 좋다.
하양 - 순수하고 청아하게 느껴진다. 톤에 따라 조금씩 다른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잿빛(회색) - 가장 확실한 시크함의 표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검정 - 고상하며 도시적인 느낌. 공간에 일정한 권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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