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인테리어 05
90년대에 지어진 연남동 집의 바닥에는 아니나다를까 노란색 모노륨 장판이 깔려 있었다. 주인 어르신은 새로 깐 깨끗한 장판이라며 자부심을 뿜뿜 뿜어내셨다. 나는 갓 태어난 노란 병아리를 상자에서 꺼내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르신, 장판을 바꿔도 될까요?”
나의 시대는 끝난 것인가 라고 읊조리는 듯한 어르신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마상을 입히고, 내 거금을 들이면서까지 바닥재를 바꿔야 하는가 하고 묻게 되었지만, 대답은 예스-예스-예스일 뿐이었다. 도무지 노랑 모노륨 위에 에펠탑을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바닥재인 노랑 모노륨 장판에도 역사는 있다. 조선시대의 부유한 양반들은 한지에 기름칠을 한 '장유지'라는 노르스름한 재료를 바닥재로 사용했다. 흙바닥 위에 지푸라기나 천을 깔고 살았던 조선의 민초들에게 양반집의 반짝반짝 노르스름한 바닥은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근대화를 거치며 비슷하게 노르스름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모노륨 장판이 등장하자 서민들은 열광했으리라. 온돌 위에 깔린 노란색 장판을 보며 나도 이제 양반이 되었다는 대리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모노륨 대유행이 이어지며 진짜 양반집 바닥에 깔렸던 한지 바닥재는 기술 유실을 겪으며 점차 사라지고, 노랑 모노륨 장판이 국민 바닥재로 자리잡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가 조선시대 선비의 삶으로 돌아가 청풍농월을 즐기며 살고자 했다면 노랑 장판을 살려서 전통미를 갖춘 ‘한양인테리어’에 도전했겠지만 내가 꿈꾸는 세계는 분명했다. 바로, 한양이 아닌 파리! 바닥을 바꿔야 세계가 바뀐다. 파리지앵에 어울리는 바닥을 찾기 위해 나는 서울의 바닥재들이 집결해 있는 방산시장으로 향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재료인 동시에 셀프인테리어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가장 권하는 바닥재인 ‘데코타일’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바닥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질감’이다. 처음 인테리어를 시작하는 분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질감'을 가벼이 여긴다는 것이다. 단지 눈에 예뻐 보이거나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식의 눈속임 인테리어는 만족감이 오래 가지 못한다. 특히 항상 몸과 발에 닿는 바닥재라면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닿았을 때 자연스런 느낌을 주는 재료를 택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원목을 깔아버리는 것이겠지만 설치비와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원목 무늬를 넣은 모노륨 장판은 설치가 쉽고 그럴싸 하지만 조금만 지내보면 ‘가짜’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고 만다. 이 극단적인 둘 사이에서 합리적인 제3의 선택지가 바로 ‘데코타일’이다. 데코타일은 모노륨 장판 위에 얇게 썬 목재가 붙어 있는 바닥재로, 원목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모노륨의 간편함이 절충되어 있어 셀프인테리어에 가장 적격인 바닥재다. 가격은 원목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하고, 장판과 비교해서는 약간 비싼 정도이니 현재까지는 이만큼 합리적인 바닥재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정말 중요한 사항은 데코타일은 반드시 직접 보고 만져보고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수백종에 달하는 데코타일은 업체마다 품질도 다르고, 질감의 차이도 크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니터상으로만 확인하고 섣불리 판단해서 주문하면 낭패를 겪기 쉽다. (몹시 낭패를 겪은 경험이 있다;) 번거롭더라도 반드시 가까운 업체를 방문하여 실물을 본 후 결정하시기 바란다.
또한, 한 번 깔고나면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이 몹시 어렵기(귀찮기) 때문에 여러 인테리어 서적들을 충분히 살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 이 칼럼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HAGO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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