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인테리어 12
파리지앵의 정신에 입각한 셀프인테리어를 통해 거실과 주방이 차례로 형태를 갖춰가는 중에도 침실은 오래 연남동 집의 역사를 간직한 채로 머물러 있었다. 내가 처음 연남동에 이주해온 2013년 여름 무렵에만 해도, 연남동은 골목길 사이에 연탄 가게와 쌀가게가 옛모습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을 법한 고즈넉한 동네였다.
하지만 주방이 모던 카모메 식당의 형태로 완성될 즈음에는 이미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힙한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인자한 인상의 노부부가 운영하던 슈퍼마켓이 편의점으로 바뀌고, 동진시장에 옛 정취를 지키던 세탁소가 결국 사라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더 이상 심야에 터벅터벅 연남동 거리를 산책하는 일은 나만의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래전 내가 살던 4평짜리 자취방 공간을 떠올리면 나 역시 예전과 같은 환경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나 예전에 비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옛것을 다 부수고 새 것으로 바꿔야만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파리지앵 인테리어의 핵심 포인트는 지키고 싶은 과거와 힙함의 조화다. 내가 셀프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작은 다락방과 4평짜리 자취방에서 살아가던 시절의 초심이었다.
청소년 시절을 지나기까지 나만의 방이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머물거나, 형과 공동으로 쓰던 방이 내게 주어진 최선이었다. 중학생 시절 2년여 동안 잠시 주어졌던 다락방이 내가 청소년 시절 경험한 유일한 독방이었다. 그 방은 조그만 중학생이던 내가 앉아도 천정에 머리가 닿을 만큼 협소한 방이었다. 가족 모두가 사람 살 곳이 아니라며 내가 그곳에 기어드는 것을 말렸지만 빨간머리 앤을 동경하던 그 시절의 나는 악착같이 다락방을 나의 아지트로 만들고야 말았다.
다락방의 기억은 달콤했다. 내 모든 꿈은, 심지어 지금 구성하는 인테리어의 모든 비전도 어쩌면 바로 그 다락방에서 생겨났다. 대학생이 되어 가까스로 얻은 내 자취방은 곧 옛 다락방의 확장판이었다. 나의 조그만 자취방은, 침실이자 서재였고, 주방이자 응접실이었다. 가장 작지만 가장 완벽하게 모든 기능을 한 몸에 가지고 있었던 나만의 방. 내 꿈이 펑하고 빅뱅을 일으키기 전의 상태로 고요히 응축되어 있던, 그 풋풋한 초심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구성한 곳이 바로 연남동의 침실이었다.
침실의 주 기능은 역시 ‘숙면’이다. 지나치게 군더더기가 많으면 숙면에 방해가 된다. 빛을 잘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잠이라는 기본 기능을 대전제로 둔 채 야금야금 옛 다락방과 4평 자취방의 기억들을 이식해나갔다. 내가 침실에 담고 싶었던 것을 키워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음악, 영화, 라디오, 독서, 글쓰기, 드레스룸, 커피, 야식 등등. 그야말로 올인원. 바로 침실은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이 모두 깃든 소확행룸이었다.
침실은 기존의 하얀 벽지를 그대로 두고 생활하며 아기자기함에 집중한 1기와 고흐의 방처럼 파랗게 칠해서 생활한 2기로 나누어진다. 이번 시간에는 1기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다음 시간에는 추가된 DIY와 아이템들과 함께 2기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STEP 1 - 침실에도 기존 장판을 제거하고 자작나무 데코타일을 깔았다
STEP 2 - 낡은 콘센트 교체
STEP 3 - 큰 맘 먹고 장만한 무인양품 스몰사이즈 일체형 침대. 조명은 검정갓 팬던트 등으로 교체.
STEP 4 - 새벽빛이 은은하게 비쳐드는 커튼을 달고 나니 제법 운치 있는 침실이 되었다.
STEP 5 - 거실의 가벽으로 쓰이기 전 침실에 거주했던 옷장.
STEP 6 - 옷장 옆의 빈 공간을 활용해 미니 서가를 제작.
STEP 7 - 문에는 벽걸이 씨디플레이어(라디오 기능 있음)를 설치하고, 그 옆에 맞춤 씨디장을 놓았다.
STEP 8 - 책과 음악과 드레스룸이 있는 나만의 소확행룸 완성!
2018. 5. 28.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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