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인테리어 14
유럽이나 미국 부호들의 호화로운 집을 소개하는 것을 즐기는 인테리어 잡지들을 보다 보면, 서양인들은 다들 엄청나게 커다란 집에 살아서 수납보다는 청소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파리지앵들도 다들 4-50평대의 저택에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통계 자료를 엄밀히 들여다보면 서울의 1인당 평균 주거 면적은 30.1 제곱미터(약 10평), 파리는 31 제곱미터로 서로 0.9 제곱미터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실제로 파리의 중심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거는 공동주거형태인 아파트먼트(우리나라로 치면 4-5층 규모의 ‘아주 예쁜’ 옛 주공아파트 형태라고 보면 될 듯) 가 대부분이다. 이 통계가 말 그대로 최대치와 최저치 사이의 평균값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파리지앵들의 공간은 사실 대부분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크기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은 공간에 살게 될 때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는 역시 ‘수납 공간의 부족’이다. 집은 작고,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산 것들은 점점 늘어나다 보면, 어느새 이 집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인지, 물건이 살고 있는 집에 내가 놓여 있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만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동시에 게으른 나 같은 사람이 그런 환경에 놓이게 되면, 이번 생에 인테리어는 글렀어 라고 여기며 점점 더 잡동사니 더미 속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실제로 연남동집에 이사 온 후 2년 정도가 흘렀을 때 그런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싼 값의 빈티지 패션에 홀려 야금야금 사모은 옷가지와 언제 데려왔는지도 모를 잡동사니들, 그리고 무한히 수집되는 책들이 바닥 위로 쏟아져 나와 우리에게도 집을 달라고 시위를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수납할 곳이 필요했다. 서랍장이나 옷장, 책장 등을 더 사야 하나 떠올리면 가뜩이나 좁은 집이 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메는 하이에나처럼 집을 둘러보다 띠링- 하고 머리 위에 전구를 켰다. 수납할 곳은 있었다. 아직 충분히 쓰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발견한 공간은 아주 깨알 같은 공간이었다. 침대 아래에 25센티미터 정도 남은 공간, 나의 반려 인형들이 차지하고 있는 1.5 x 1미터 정도의 공간. 그 두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선 본문에서 언급한 대형 수납장이 아닌, 아주 깨알 같은 수납장이 필요했다. 기능성 소형 가구들이 아직 충분히 출시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크기의 기성 제품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결국, 내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만들어버리자!
(이번 화에서는 ‘화수분 침대 헤드’를, 다음 화에서는 ‘비밀의 한옥 마루’를 소개)
<화수분 침대 헤드> 만들기
일체형 침대를 구매한 탓에 침대 헤드가 없어서 왠지 모를 허전함을 마침 느끼던 차였다. 직사각형의 속이 빈 침대 헤드를 만들어 내부를 수납 공간으로 쓰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들면 침실의 아름다움을 망치게 되니 가능한 목재 천연의 결을 살려서 마치 유서 깊은 전통 고가구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
* 스테인 : 스테인은 페인트처럼 목재 표면을 색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목재 결을 따라 내부에 스며들어 속을 물들이는 방식의 도료. 덕분에 천연의 무늬를 살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속에 스며드는 방식이라 한 번 칠하면 색을 바꿀 수가 없으므로(더 진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 어떤 색을 연출할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2018. 6. 15. 멀고느린구름.
* 이 칼럼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HAGO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