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랑 끝, 라이딩 시작 7

by 장명진


자전거 ‘커피’를 타고 강화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제법 맛있는 묵밥집을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은 행운의 날이로군 싶었다. 하늘은 빨랫줄에 이틀은 널어놓은 것처럼 뽀송했고, 구름들은 샵에 다녀온 것처럼 정갈했다. 25도 즈음의 기온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갓벽한 가을의 정오였다.


간밤에 지도앱을 뒤적거리다가 집에서 강화도까지의 거리가 불과 1시간 15분 정도 거리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자전거도로가 89%나 된다니 문명의 신이 나를 위해 안배해둔 시나리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도가 이렇게 가까운 줄 알았다면, 나는 매일 저녁 강화도로 저녁을 먹으러 갔을 것이었다. 오랫동안 놓치고 있던 그 일상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힘껏 페달을 밟았다.


20분 정도는 모든 것이 무탈했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도로를 씽씽 달리면 그만이었다. 이어진 10분도 나쁘지 않았다. 아무도 걸어 다닐 일이 없을 듯한 자동차 전용도로변의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따라, 무수한 공장지대를 지나, 여름의 태양이 만들어 놓은 인도 위의 정글을 헤치고 나니 다시 길쭉한 자전거도로가 나왔다. 이런 곳까지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놓다니 대한민국은 역시 선진국이 되어버린 것이군 했다. 모처럼 속력을 내서 2킬로미터 정도를 내달린 끝에 내가 마주한 것은 세상의 끝이었다.


세상의 끝에는 화물트럭이 날아다니는 2차선 도로가 있을 뿐이고


인천에서 김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 경계선에서 자전거도로는 끝나버린 것이었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30분 앞의 강화도냐, 30분 뒤의 집이냐. 세상의 끝 저편 도로에는 한 차선을 꽉 채우고도 모자란 듯한 거대한 화물차들이 스포츠카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분명,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강화도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새 16인치 휠의 자전거로 거대 화물차 앞을 가로막으며 도로를 고작 20킬로미터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500미터 정도나 전진했을까,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화물차가 내 옆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추월해 지나갔다. 커피가 휘청거렸고, 먼지에 눈앞이 흐려졌다. ‘이러다 다 죽는다’는 아찔한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고, 나는 그대로 우측에 보이는 비포장 논두렁길로 무작정 떨어져내렸다. 그 순간의 선택이 아니었으면 지금 온전한 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으리라.


그다음부터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논두렁을 지나, 공사현장을 지나, 공장지대를 지나, 언덕을 넘고, 폐가들이 가득한 마을을 거쳐, 구불구불한 모텔촌을 통과하니 다시 논두렁, 공사현장, 공장지대, 언덕…. 굽이굽이 우회로를 통해 강화대교 앞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1시간 15분은커녕 3시간은 족히 넘었음을 10%밖에 남지 않은 자전거 배터리가 증명해주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강화도에 있는 공중화장실이라도 가서 배터리를 충전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지막 전투에 임하는 장수처럼 너덜너덜해진 육신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다.





간신히 강화도 초지진에 도착해 자전거를 주차하고, 모처럼 초지진을 둘러보며 바닷길을 따라 저녁이 다가오는 걸 바라봤다. 가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강화도는 결국 온종일이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지도를 펼치듯 바라보면 연인도 친구도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인슈타인의 깨달음대로 공간이 결국 시간과 중첩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가깝다는 것은 ‘영원’의 감각과 닮아 있다. 가까운 사랑, 가까운 우정은 곧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우정이란 말과 비슷하다.


그러나 모든 관계의 사이에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깊은 협곡이 있다. 우리는 상호 합의하에 개설한 좁은 인연의 다리를 통해 그 협곡을 건너 사랑과 우정을 만난다. 서로의 거리가 10미터에 불과하더라도 그 다리가 끊어지면 우리는 사랑에게로, 또는 우정에게로 건너갈 수 없는 것이다. 인연의 다리는 상호 합의 하에 끊어지기도 하고, 누군가 한 사람에 의해 철거되기도 하며, 누구도 모르는 세월 속에 스르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내 삶 속에 무수한 강화도가 있었다. 그 모두 어느 시절에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면 카디건 하나를 걸치고 나서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아니게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제는 닿을 수 없어진 수많은 섬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20년 전, 초지진에 함께 왔었던 대학 친구들과 고등학교 문예부 후배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끝내 초지진에 함께 도착하지 못했던 옛 연인의 이름도 입술 속에 오래 굴려보았다.


어둠이 내려온 강화도 초지진의 저녁은 아름다웠다. 그걸로 됐다. 오는 길도 고생, 가는 길도 고생이었지만 결국 모든 아름다운 것은 고통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려니. 삶의 흑과 백은 다만 고통을 기억하느냐, 연꽃을 기억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여긴다. 깊은 밤, 돌아오는 길은 더 길었다. 자전거 커피를 타고 힘겹게 어둠을 비껴내며 지금 내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모두가 연꽃이고, 반짝 빛나는 별이다.


2022. 9. 30. 멀고느린구름.




다만, 내 마음 안에 반짝이는 그 모든 것이 별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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