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레드의 시간과 밤의 러너

사랑 끝, 라이딩 시작 8

by 장명진


자전거 ‘커피’를 타고 바다에 다녀왔다. 바다의 색이라고 하면 역시 ‘마린블루’겠지만, 나는 ‘마린레드’를 먼저 떠올린다. 내가 아끼는 나의 소설 <마린레드>를 쓰면서 만들어낸 나만의 색깔로, 노을이 지는 바다의 색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다대포 해수욕장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다대포는 당시만 해도 백사장과 갯벌이 서로 이어져 있어서, 드넓은 벌판의 저편으로 끝이 보이지는 않는 수평선이 펼쳐지는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썰물 때는 파도를 한 번 걷어차려면 10분 넘게 바다를 향해 걸어나가야 했다. 밀물 때는 그 10분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며 모래톱까지 황금빛 파도가 밀려들었다.


야간자율학습이 없던 1학년 초반에는 학교를 마치는 대로 곧장 바닷가에 나가서 혼자 해가 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곤 했다. 야자가 생긴 이후로는 몰래 문예부실 창가에 앉아 바다가 석양에 젖는 것을 지켜봤다. 그 시간은 내게 ‘마린레드의 시간’이었다. 미소와 눈물, 따뜻함과 서늘함, 그리움과 반가움, 미련과 꿈이 서로 교차하며 묘한 위로를 주는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2시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인천항 여객터미널’이었다. 8년 전, 세월호가 출발한 장소다. 제주도로 향하는 배는 긴 세월 항해를 멈췄다가, 작년 즈음 다시 운항을 개시했다. 여객터미널 인근에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항을 흉내 낸 작은 공원이 있었다. 그 공원에 앉아 아주 오랜만에 마린레드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꿈은 그저 악몽에 불과한 것을



나의 상처, 당신의 상처, 우리 사회의 상처, 무수한 상처들을 만들어내는 이 세계는 도무지 바뀌지 않고, 어디선가는 또 어리석은 전쟁마저 반복하고 있다. 동학은 ‘인내천’이라고 해서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제서야 이 말의 무게를 실감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은 사람이 그만큼 귀하다는 뜻도 되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어리석은 하느님이 되면 이 세상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 이 우주에 대한 무한의 책임이 인간에게 짊어져 있다는 것이다.


당장 월세 내며 살기도 버거운데, 무슨 우주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져야 하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류가 그렇게 살아온 것에 대한 값을 이제 해마다 혹독하게 청구받게 될 것 같다. 한 나라의 정치는 결국 시민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간편하게 누구 정치인에게 욕 한 마디 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게 된다. 결국 저들 속에 내가 있지 않은가. 지젝의 말처럼, 멈추고 생각해야 할 때다.


(*슬라보예 지젝 ‘멈춰라, 생각하라’ 서평​)


바다에 밤이 내린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득히 더 멀었다. 남은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체력이 거의 바닥났을 즈음,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장년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벌써 몇 분 전부터 내 왼편에서 밤의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내 자전거의 속도가 월등하기에 몇 번이나 그를 앞질러 달려나갔지만,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앞에 멈추면 어김없이 그는 다시 나타났다. 50대일까, 60대일까. 어쩌다 보니 우리는 30분 가까이 나란히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그의 호흡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경이로웠다.


평온한 밤의 러너가 페이스메이커 역을 맡아준 덕분에 나도 모르는 사이 집 부근에 도착했다. 그렇게 그와 함께 멈추고, 달리기를 반복한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저기, 함께 지구를 한 바퀴 돌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제안해보려고 했으나 밤의 러너는 내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미니벨로 바이커와 동네 러너, 이색 조합으로 지구 한 바퀴!’라는 기사의 제목도 그날 밤 우주에서 사라졌다. 아, 나는 또 한번 셀럽이 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 북서쪽 끝, 해가 저무는 도시에서


2022. 10. 2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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