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강물 위에 한 조각 너그러움을 띄우며

사랑 끝, 라이딩 시작 6

by 장명진


긴 장마 탓에 자전거 ‘커피’는 한 달 가까이 봉인되었다. 번번이 어긋나는 기상예보 탓에 가끔 찾아온 맑은 날에도 함께 나서지 못했다. 먹먹한 날씨처럼 자전거 커피도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이 되어 며칠 전 비가 멈춘 틈을 노려 라이딩을 감행했다.


뚜렷한 목적지는 없었고, 그저 잘 다녀보지 않은 서울 은평구 부근을 달려보자 싶었다. 공항철도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서 내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눈에 익은 골목길들이 보였다. 몇 해 전 이사를 해볼까 싶어 다녀본 동네였던 것이다. 00은 서울에서 그나마 가격이 저렴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머금은 운치 있는 빌라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골목길을 누비니 ‘그때 여기로 왔어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랬다면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결정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익숙한 정경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달리니 낯선 거리들이 속속 나타났다. 눈대중으로 약 1킬로미터가량의 골목길이 쭉 이어져 있는 모습은 절경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달리는 시티바이커의 여흥에 한껏 취했다. 도시의 골목길은 눈을 한 번 깜박이면 시시각각 다른 그림들이 나타나는 무한의 미술관과 같았다. 바퀴와 눈을 함께 열심히 굴리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고 달려서 다다른 곳은 서울 서북쪽 끝자락에 있는 은평한옥마을이었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2시간 가까이 걸려서 도착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자전거로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평일 오후여서 인적이 드문 마을의 거리를 여유롭게 달렸다. 그러다 우연히 ‘진관사’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세종대왕이 비밀리에 한글을 만들었고, 불교계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사찰이라는 설명에 홀린 듯이 진관사로 페달을 밟았다.


은평한옥마을에서 자전거로 2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진관사가 있었다. 커피를 주차장 부근에 잘 메어놓고, 절을 향해 언덕을 올랐다. ‘진관津寬’이란 한자를 풀이해보면 ‘너그러움을 전하다’는 의미가 된다. ‘진津’은 강물을 건너다는 뜻을 함께 지니고 있기에, 옛 시절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어려움을 떠올려보면 ‘너그러움’을 ‘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에 내가 쓴 ‘다정한 사람이 된다는 일의 어려움’이란 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나름 내 스테디셀러 에세이 조각인데, 1000년 전 진관사를 창건한 진관스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걸 보면 사람 사는 건 역시 다 비슷하군 싶으다.


천년 전, 서자에다가 근친혼으로 태어난 고려 임금 현종은 그 출신으로 인해 왕위 계승에서 밀려나 당시 관례에 따라 승려가 되어야 했다. 현종은 초라한 암자인 신혈사에 출가하여 진관스님 밑에서 수행을 하게 된다. 진관스님은 훗날 정변이 일어나 고려의 왕이 될 사람인 줄 모른 채로 대량원군 왕순(현종)과 하루하루를 보냈다. 현종이 즉위 후, 신혈사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로 개명하게 될 것도 물론 모른 채로. 그리고 그 사찰에 천년이 흐른 뒤, 전기자전거를 탄 문필가 한 사람이 방문하게 될 것도 당연히 모른 채로.





내가 전한 오늘의 다정함이 천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한 다정함이 될 수 있다면. 진관사 경내를 걸으며 생각했다. 그러자면 말 한마디, 손짓 하나, 눈빛 한 줄기에도 마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 다함이 인위적인 매너가 아니라, 진심이 되려면 평소 있는 힘을 다해 마음을 맑게 정돈해야 할 것이다. 나는 전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 여전히 그저 친절함을 연기하며 모면하고 있다. 그러다 말과 행동의 실수를 일으키고 만다. “진심은 그게 아니었습니다”라고 애써 변명하지만, 정말 진심이 아니었을까? 스스로에게 깊게 되물어보면 결국 실수조차 내 마음의 한 조각일 뿐이다.


진관사를 내려와, 은평한옥마을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내 내리막이었다. 씽씽 마음껏 내달릴 수 있어 참 좋았다. 마음의 경지에 오른 뒤의 시간도 그와 같을까. 칠십 나이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이른 공자는 홀가분하게 자전거로 내리막길을 달리는 기분으로 남은 여생을 살아갔으리라. 내 나이 70에 그 반만큼이라도 다다랐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물의 위태로움을 이겨내며, 매일 최선을 다해 너그러움을 전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내 어리석음을 맑게 씻어내며.


2022. 8. 14. 멀고느린구름.




은평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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