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끝, 라이딩 시작 10
주말에 짬을 내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경남 양산에 다녀왔다.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자식을 둔 덕에 생의 황혼기에도 아파트 경비로 고생하고 계신 모습을 보면 늘 마음이 무겁다. 청소년 무렵부터 지금껏 특별히 신세 진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가족’으로 감각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애틋한 마음이 생겨난다.
오랜만에 찾아가면 아버지는 쉴 틈 없이 삶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는데, 그게 참 재밌으면서도 언제나 내 경청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만든다. 지난번에는 이틀을 소화했고, 이번에는 사흘을 소화해냈으니 나름 성장했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아버지 화법의 특징은 본인이 전달하고픈 대하드라마가 워낙 방대해서, 상대가 뭔가 소소한 얘기를 치고 들어가면 금방 개울물에 흘려버리고 다시 본인의 스토리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저 열심히 듣는 수밖에 없다. 다른 아버지들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하루 일 하러 나간 사이, 양산 시내를 걸어보았다. 문재인 대통령 생가에 가보려고도 했으나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내려놓았다. 양산 물금역 주변에 ‘서리단’이라는 리단길 시리즈 거리가 있는데, 아버지 거처에서 멀지 않았다. 일요일인데도 아침 아홉 시경이라도 인적이 드물었다. 유일하게 문을 연 국숫집에서 절묘한 맛의 잔치국수 한 사발을 먹고, 한가롭게 서정적인 골목들 사이를 거닐었다. 조용한 가을 햇살이 길마다 낙엽처럼 낮게 깔려 발에 채였다. 내가 20년 넘게 쓰고 있는 아이디인 fscloud(far slow cloud)와 비슷한 이름의 까페도 놓치지 않고 들렀다. 내부 인테리어가 나의 취향과 99% 일치해서 놀라웠다.
사실, ‘리단길’이라는 명칭은 내가 실로 극혐하는 작명이다. 리단길의 원조인 서울 용산 경리단길의 상권이 쇠퇴한 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반영된 고유의 브랜드를 하나씩 수립해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서울의 철 지난 유행을 좇아 천편일률화 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통영의 ‘동피랑 마을’은 그 자체로 고유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서리단’은 언제까지나 경리단의 아류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브랜드는 최소한 1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경리단길이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그 길을 애정하여 혼자 자주 걸어다니곤 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하고부터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양산에서 돌아와 자전거 커피를 타고 처음 나서게 된 곳이 묘하게도 경리단길이었다. 리단길을 저주했더니, 원조 리단길이 “거 한 번 봅시다” 하고 연락하기라도 한 것처럼.
용산 해방촌의 단골 독립서점 별책부록 대표님과의 약속 전에 남산 둘레길을 반 바퀴 돌고, 경리단의 비탈길들을 전기자전거의 은총으로 씽씽 달렸다. 걸어서는 가보지 못했던 골목들도 쏙쏙 들어가 봤다. 마치, 서리단과 경리단이 시차를 두고 하나의 길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싫은 것에도 모두 ‘도(道)’가 있구나 싶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다른 공간들이지만 ‘리단길’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한 길로 이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싫은 것은 그저 싫은 것이고, 좋은 것은 그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이 어느 때부터 우리 사회를 강렬히 지배하고 있다. 너를 깨는 것을 멈추고, 나부터 깨야 이 불통의 벽이 허물어질 것이다. 사랑을 할 때조차 나는 늘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는 정답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대화라고 착각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오기로 가득 찬 승부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기려고 하는 자는 사랑을 모른다. 다만 기꺼이 지려고 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이기려고 들면 수만 갈래의 편이 생기고, 모두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다면 편은 사라진다.
다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면, 이번에는 내 경청력의 한계를 나흘로 갱신해봐야겠다.
2022. 10. 25.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