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의 생활
퇴사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회사생활을 그리 못했던 것은 아닌지 가끔씩 안부를 물어오는 전 동료들,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중에도 연락을 주는 지인들이 있다. 그걸 고마워하면서도 현재 내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문장을 찾지 못해 ‘그냥 논다’ 정도로 불친절하게 대답해왔는데 최근 꽤 괜찮은 표현을 찾았다.
“평일 낮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간을 활용하는 평일 저녁과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붐비는 주말을 피해서 평일 낮의 시간을 활용하며 살고 있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도 남들은 징검다리 휴일이나 연휴에 연차를 붙여 쓸 때 나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날에 휴가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평소처럼 일어나 커피숍 창가에 앉아 남들 출근하는 것을 구경하고 한가한 영화관이나 전시를 찾거나 혹은 매우 빈번하게 낮술을 마시거나. 그렇다고 해도 일 년에 몇 번일 뿐이고. 그동안 내게 평일 낮의 세계는 회사가 거의 전부였다. 유일한 자유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점심 또한 거의 회사에서 해결했기에 더더욱.
학창시절부터 수면시간이 5시간을 넘은 날이 드물고 출근을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야만 했던 내가 매일 7~8시간씩 충분히 잠을 자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부족한 시간을 핑계로 (실은 게으름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 늦은 아침을 먹으며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삼시세끼를 찍는 마음으로 아침, 점심, 저녁을 만들어 먹고 고양이들을 위한 간식도 직접 준비한다.
건강하게 먹는 법, 느리더라도 더 맛있게 먹는 법을 고민하다 보니 대형마트에서 한꺼번에 식재료를 사재기하는 것보다 동네 슈퍼, 야채가게를 자주 찾아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를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제철 재료의 매력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영화관이나 전시는 물론이고 종종 듣는 원데이 클래스도, 보물찾기 하러 구제시장을 뒤지는 일도, 가끔 떠나는 여행도 모두 평일 낮에 한다. 지금까지 내게 세상은 평일 저녁과 주말이 전부였는데 평일 낮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세상에서 살고 있더라.
(쓰다만 것 같지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