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동화도 드라마도 아니었다. 응당 동화라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고난은 있을지언정 끝은 "그렇게 호전 됐으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매듭지어졌을 터인데 불행히도 이건 동화도 드라마도 신파극도 아니었다. 드라마에선 쓰러졌던 주인공이 짠하고 의식과 인지가 잘도 돌아오던데 그건 잘 짜여진 각본일 뿐이었다. 현실이 그렇게 쉽게 돌아갈리가 없었다.
한순간 정말 그 한순간에 가족이 항상 내가 기대던 존재가 이제 밥도 물도 스스로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일같이 가슴이 내려앉고 끝을 모르는 심해로 나를 데려갔다.
본격적으로 엄마 간병을 했던 그쯤 나는 휴직기간 내 최대한 엄마 상태를 호전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3개월이라는 휴직기간에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현재 왜 엄마가 아프게 되었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재활을 열심히 해야 빨리 낫는다는 말들을 끊임없이 엄마에게 주입식으로 떠들어댔다. 경련 이후 섬망으로 헛말을 하고 단기기억이 휘발되는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줬다. 빨리 나아야 집으로 갈 수 있다고. 그리고 간병비에 대한 부담이 엄청났으므로 돈도 얼마 버티지 못하니 최대한 빨리 나아야 한다는 그런 말들을 해댔다.
섬망으로 헛말을 하긴 했지만 조금씩 의사소통이 되면서 엄마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말을 하진 않았기에 말을 자주 걸어야 했지만 나 혼자만 하는 말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 입만 열면 빨리 나아야 한다 닦달만 할 뿐이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 휴대폰으로 최근 연락이 왔던 지인분들과 전화 연결을 해주곤 했는데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병원이 아닌 집이라는 둥 나는 회사에 있다는 등 상황에 맞지 않은 말들을 내뱉곤 해서 마무리는 항상 내가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하는 통화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분이 계셨다. 내가 어릴 적 한동네에 살았고 그 집 첫째 딸이 나와 동갑이라 어릴 적엔 꽤나 친하게 지냈었다. 엄마가 쓰러진 후 엄마 휴대폰을 내가 가지고 있었기에 나중에 상황이 정리가 되면 따로 연락을 드려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엄마 친구분이 생각나서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 귀에 대주었다. 혹시나 통화를 중간에 끊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어 볼륨을 최대로 두고 통화 내용이 살짝 들리게 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와 내용이 이상했다.
"여보세요. 아줌마 저 xx예요. (엄마 친구분 딸)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이런 충격적인 소식에도 태연하게 놀라는 기색도 없이 아 그래? 응 잘 지내고 하면서 상황에 맞지 않는 말들을 또 내뱉었다. 전화를 내가 받았다.
"어 xx야. 나 yeon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응.."
"이렇게 갑자기? 언제? 왜?"
나도 너무 당황했기에 상을 당한 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해버렸다. 평상시에도 활동적이시고 기저질환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엄마가 항상 건강해서 부럽다고 하곤 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너무 당황해 버렸다.
집 앞에서 쓰러져 계신 걸 나중에 발견했고 이미 돌아가신 후라고 했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진행해 봐야 안다는 말..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건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고 주변 어른들께서 굳이 연락하지 말라고 해 부고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난 후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엄마. xx엄마 돌아가셨대"
"그래?"
당신 하고는 상관없다는 듯 그래?라는 한마디 말만 하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인지가 전혀 안 되는 엄마..
친구분께선 엄마의 소식을 알고 계셨을까.. 만약 모르셨다면 두 친구는 서로의 소식조차 모른 채 이별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려왔다.
엄마는 친구의 소식을 들었지만 모른다. 친구 딸의 음성으로 부고 소식을 들었지만 들어도 인식을 하지 못했다.
"엄마. 나중에 엄마 잘 걸으면.. 그때 되면 xx한테 물어봐서 인사 가자. 연락 안 했던 게 아니고 아팠다고, 그래서 가시는 길 배웅 못해서 미안하다고 가서 말하자"
엄마는 그저 아무런 표정 없이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