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휴직 후 엄마를 간병하는 동안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었다. 엄마가 쓰러진 게 여름, 재활을 시작한 게 가을이고 엄마의 경련으로 내가 간병을 시작한 후 겨울로 넘어갔다. 시간은 빠른 듯 느리게 지나갔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친 나는 계속 허둥대며 지내고 있었다.
엄마가 쓰러지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엄마 윗니가 네 개뿐이고 전부 틀니였단 사실이었다. 엄마 쓰러지던 날 수술 전 간호사가 틀니를 빼서 줬는데 부분틀니인지 알았던 나는 전체 틀니가 나와서 당황했었다. 이가 좋지 않아 임플란트를 했던 걸로 알고 있고 한 번은 임플란트 마무리를 하러 치과에 갔는데 잇몸에 심어놨던 임플란트 뿌리가 없어졌다고 굉장히 짜증을 많이 냈던 적도 있다.
그쯤 엄마는 사소한 일에도 굉장히 짜증을 많이 냈었다. 아직은 엄마와 살던 시기였는데 그때 잦은 싸움이 많았다. 엄마의 이 상태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저 임플란트 몇 개를 했나 보다. 부분 틀니를 했나 보다 정도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때 왜 그렇게 엄마가 짜증을 많이 냈는지 알 수 있다. 힘들었을 것이다. 집안일도 힘들었을 텐데 나는 여전히 철없는 딸년이라 뭐 하나 도와주지도 않았고 세월에 치아마저 낡아 뽑아내고 틀니를 해야 하던 그 심정이 어땠을지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이다. 참 이리도 나는 엄마에게 무심했구나..
엄마가 치아 문제로 한창 짜증을 많이 내던 때, 어버이날이었을 것이다. 너무 자주 싸우는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에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었다. 작은 용돈 박스였다. 어버이날 아침이었는데 그날도 출근 준비를 하면서 싸웠다. 아마도 샤워 후 머리카락을 치웠는데 미처 못 치운 몇 가닥의 머리카락 때문에 싸웠나 그랬을 것이다. 그런 아주 사소한 문제. 그땐 그런 문제로 계속 엄마와 부딪힐 때였으니깐..
작은 박스에 비누로 된 카네이션 꽃이 있고 카드를 뽑으면 돈이 뽑혀 나오는 용돈 박스를 하나 준비했었다. 카드에는 이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사랑한다고 적었던 것 같다. 어버이날이니 아침에 해주고 싶어 싸운 뒤 냉랭한 분위기지만 엄마에게 다가가 쓱 용돈박스를 내밀었다.
신경질 적인 목소리로 이게 뭔데 하면서 받아 든 엄마. 카드를 빼봐라고 했다. 카드에 붙어서 이어져 나오는 만 원짜리와 오만 원짜리를 보더니 금색 방긋 웃으면서 어머나! 하며 즐거워했다. 엄마의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내가 본 적이 있던가..
아마 성인 된 후로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엄마 생일에 100만 원을 줬을 때도 그냥 무심하게 줬기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후에도 기념일 같은 날 봉투에 용돈 담아 주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주기만 하고 난 엄마에게 집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심 용돈 박스를 준비하면서 봉투에서 돈 하나하나 꺼내야 하니 번잡스럽다고 오히려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했었다. 엄마는 뭔가 이벤트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은 냉소적이고 무뚝뚝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도 여자였다. 세상에 이벤트를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이벤트 처음 받아봐"
엄마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니 아빠가 꽃을 한번 준 적이 있는데 그것도 xx(동생)한테 자 엄마 가져다줘라 하면서 줬었어"
엄마도 여자였구나. 이런 소소한 이벤트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런 여자였구나. 받아 본 적 없어 그런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엄마의 삶. 마음이 아려왔다. 엄마 나이 60 넘어 처음 받아보는 이벤트.
엄마에게 미안했고 연민이 스며들었다. 그 이후 최대한 어버이날과 엄마의 생일에는 작은 거라도 해주려고 했다. 아주 사소한 토퍼라도 말이다. 엄마 쓰러진 던 해 어버이날 방석에 돈을 붙인 돈방석과 상장을 준비했었다. 최고 어머니상이라고 적힌 상장을 엄마에게 줬었는데 엄마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냐고 상장을 무릎 위에 두고 한참 손으로 쓰다듬었다. 정말 나라에서 주는 상이라도 받은 듯이 "엄마가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되나. 최고 어머니 상인데" 하길래 답답해서 그냥 내가 적은 거야라고 쏴 붙였다. 그때 엄마가 최고의 엄마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되는 건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모습에 마음과 다른 말이 내뱉어졌다.
아직 해줄 이벤트가 많이 남았는데 엄마는 쓰러졌다. 그리고 내가 작게나마 했던 그 이벤트 물품들은 엄마 집 TV 옆 잘 보이는 곳에 하나 둘 모여있었다. 엄마가 쓰러진 후 집 정리하러 갔을 때 먼지 쌓인 물품들을 보면서 왜 더 일찍 해주지 못했을까 싶어 다시 한번 마음이 내려앉았다. 속이 무너지고 무너져 문드러졌다.
이제는 향도 다 날아가버려 의미도 없는 비누 카네이션이 든 용돈 박스를 그대로 고이 모셔둔 걸 보고 괜스레 화도 났다. 엄마가 최고 엄마라고 말하지 못한 나한테 화가 나는 건지, 버리지 못하고 안고 살던 엄마에게 화가 나는 건지, 엄마가 쓰러진 이 상황에 화가 났던 건지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그때 엄마가 좋아하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놓을걸 하는 후회를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하고 있다.
상장 이벤트 3개월 뒤 엄마는 쓰러졌고 이젠 그 기억조차 잊어버린 엄마, 나 없이는 물 한 모금 밥한수저조차 먹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부모님과의 즐거운 시간은 꼭 동영상으로 남겨두시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