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 메말라 버린 나뭇가지.
중환자실에서 한 달 반을 의식 없이 있던 엄마는 나뭇가지 같았다.
손에 쥐면 바사삭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나뭇가지.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았고 손으로 만지면 그대로 부서지고 흩어져 내 눈앞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랬던 엄마는 이제 제법 대화다운 대화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시작했고 걷는 연습도 할 정도였다.
불에 타버린 산에도 새싹은 난다.
마른 가지였던 엄마에게서도 작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간병인을 구하고 회사에 복귀 후엔 더욱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복귀 후 업무가 바뀌어 적응해야 했다.
회사일로 정신이 없어도 8시, 12시 30분, 7시 엄마와 영상통화하는 시간은 되도록 지키려고 했다.
주말엔 왕복 4시간 거리 병원을 가야 했다.
2주에 한 번은 토요일 아침에 병원으로 가서 1박을 지내고 일요일 오후에나 집으로 왔고 간병하지 않는 주에도 병원에 들러 면회라도 하고 와야 마음이 편했다.
내가 도착하면 언제나 방긋 웃어주며 맞이해 주는 엄마
하루 간병 후 집에 갈 쯤엔 항상 시무룩한 표정으로 또 언제 오냐고 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두고 집으로 올 때면 왜인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언제가 회사에서 일이 늦게 끝나 가지 못하고 있는데 저녁 7시쯤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너무 불안했다.
원래 내가 영상통화 할 겸 전화를 걸기만 할 뿐 스스로 조작할 줄 몰라서 먼저 연락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뭔가 일이 있더라도 간병인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는데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니 놀랄 수밖에.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였다.
간병인 분이 전화를 걸어주고 바꿔준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엄마하고 얘기를 들어보는데 자꾸 시끄럽단다.
시끄러우면 TV소리 좀 줄여달라고 해봐 하니 아니란다. 그런 게 아니라 속이 시끄럽다고 한다.
그날은 아침 7시쯤 서울시 경계경보 오발령이 있던 날이었다.
아침에 출근 준비 하는데 서울지역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문자에 너무 놀랐던 날이다.
전쟁이라도 나려는 건지 뭔지 그 짧은 순간에 병원까진 어떻게 가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30분 뒤 오발령이라고 문자가 다시 왔었다.
오발령이라고 문자가 온 뒤 그 와중에 병원까지 걸어서라도 갈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참 웃겼다.
대중교통으로도 2시간 걸리는 거리를 전쟁이 났는데 걸어갈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오발령으로 하루 종일 뉴스에서 그 소식만 들렸을 것이다.
엄마가 속이 시끄럽다고 한 게 뉴스 때문에 내가 걱정돼서 찾았다고 간병인분에게 전해 들었다.
엄마를 다시 바꿔 달라고 했다.
"엄마 전쟁 났을까 봐 속이 시끄러웠어? 나 걱정 됐어?"
"응"
"엄마 전쟁 안 났어. 전쟁 나도 엄만 병원에 가만히 누워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 그러니깐 걱정하지 마. 알았지?"
"...."
엄마가 울고 있었다.
내가 전쟁 안 났다고 하니 그제야 안심이 된 걸까.
뉴스에서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해도 뭔가 큰일이 났구나 싶었나 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딸자식 걱정에 나만 찾아댔나 보다.
가끔 나를 못 알아보고 내가 앞에 있는데도 나를 찾을 때도 있었다.
자식을 눈앞에 두고 못 알아봐도,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몰라도 마음 저 이면에 항상 자식 걱정이 드는 게 부모 마음일까.
엄마의 그 걱정이, 마음이 너무 애잔해 전화를 끊은 뒤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한참을 울다가 나갔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자식걱정이라는 작은 새싹 하나가 그토록 애달프고 서글펐다.
하루 종일 뉴스에서 전해지는 소식에 걷지도 못하는 본인보다 자식을 먼저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
전쟁이 날 수도 있어 대피 명령이 떨어져도 엄마에게 가려는 나의 마음, 사랑일 것이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살면서 이토록 가족을 사랑한다고 느껴졌던 적 없었는데 엄마가 아프고 난 뒤에나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너무나 둔하고 미련했기에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