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동안 옆에서 부축해 주면 화장실 정도의 짧은 거리는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거동은 호전되었지만 인지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내가 간병할 때나 면회 때 나를 앞에 두고 제삼자를 대하듯 나를 찾곤 했었다.
딸이 둘이랬다가 하나랬다가 대답도 온전치 못했고 날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엄마의 재활 속도는 더딘 것만 같았다.
엄마와는 매일 영상통화를 하는데 날짜를 기억하라고 내 생일 몇 주 전부터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 내 생일 언제라고?"
생일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보단 의미 있는 숫자들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내 생일이라고 해봤자 미역국을 끓여주겠는가 선물을 사주겠는가 부질없지만 지남력이 돌아오는데 좀 도움이 될까 싶었던 마음이었다.
"엄마 다음 주에 내 생일이야"
"내 생일 몇 월 며칠이라고?"
몇 번을 물어봐도 매번 바뀌는 답변, 지남력이 돌아오기 힘들다곤 알고 있었지만 너무 더뎠다. 아니 거의 변화가 없었다. (현재도 지남력은 없다.)
병원 밖은 봄을 지나 여름이 오고 이제 여름마저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엄마는 계절의 변화도 시간의 흐름도 모른 채 병원에서 지냈다.
내 생일이 지나고 주말에 엄마 면회를 갔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하니 방긋 웃어준다. 이토록 해맑을 수 있을까 싶은 순수한 얼굴로 나를 반겨준다.
"잘 있었어? 나 안 보고 싶었어?"
라는 질문에
"보고 싶었지"
라고 답해주는 엄마.
그리곤 간병인분이 엄마에게
"언니, 언니 줄 거 있잖아. 그거 빨리 줘"
라고 하면서 휠체어 뒤에 매달아 둔 쇼핑백에서 뭔가를 꺼내서 엄마에게 줬다.
엄마가 그제야 생각난 듯 받아 들고는 나에게 줬다.
"엄마 이게 뭐야?"
하고 받아 들었는데 봉투에 든 카드였다.
봉투를 열어보니 "oo아 생일 축하해 사랑해"라는 엄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카드에 적혀있는 삐뚤빼뚤한 글자들, 맞춤법도 글자 모양도 부정확했지만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oo아 생일 축하해 사랑해.
열어보는 순간 창피하게 눈물이 흘렀다. 간병인분도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내가 왜 우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따라 울었다.
엄마 발병 전에도 받아본 적 없었던 편지였다.
간병인분께 여쭤보니 언어 치료 시간에 선생님하고 같이 했다고 한다. 치료실에서 카드에 쓰기 전에 여러 번 연습하고 썼을 것이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음성녹음도 연습 후에 녹음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불편한 몸으로, 제대로 써지지 않는 인지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진심을 눌러 담아 썼을 엄마의 마음이 전해졌다.
누가 쓰자고 했는지 누가 사다 줬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다 감사했다.
비록 글자는 삐뚤빼뚤해서 나만 알아볼 수 있더라도 가장 소중한 생일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