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원에 입원한 후 계절은 세 번 바뀌었다. 겨울에서 봄, 봄에서 여름, 그리고 가을..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엄마에게 가고 공휴일이라도 있으면 엄마와 하룻밤을 더 보내려고 노력하며 지냈던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해 연말까진 재활 병원에 입원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병원 내부적인 상황에 따라 곧 퇴원하라는 통보 전화였다.
병원에선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빠르게 퇴원하라고 했다. 전원 할만한 근처 재활병원 리스트도 보내주었다.
그쯤 나는 고민이 있었다. 개인간병인을 고용하다 보니 한 달에 간병비로만 400만 원 가까이 쓰고 있었기에 슬슬 경제적으로 한계가 임박해져 왔기 때문이다.
병원비와 간병비, 그리고 기타 물품 비용들로 한 달에 700~ 800만 원씩 쓰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마침 병원에서도 퇴원하라고 하니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때 선택지는 병원을 옮기면서 개인간병보단 저렴한 공동간병이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과 내가 일을 관두는 것 두 가지 중에서 고민이 되었다.
곧 내 나이도 40인데 여기서 경력이 단절되는 건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엄마의 호전 속도를 봤을 때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부분은 회의적이었기에 장기적으로 보자면 일은 관두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머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동 간병으로 갔을 때 엄마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서 더욱 고민은 깊어졌던 것이다.
재활 치료 중간 5분씩 쉬는 시간에 휠체어에 앉아 그저 멍하니 있을 엄마의 모습, 소변이 보고 싶어도 지나가는 사람 부를 줄 몰라 그저 참고만 있을 엄마, 치료 중간중간 갈증이 나도 물조차 스스로 챙겨 먹을 수 없는 모습들이 선명하게 그려져 쉽사리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병원은 옮겨야 했기에 추천받은 곳과 내가 알아본 곳 몇 군데를 직접 가보았다. 치료실과 병실의 컨디션을 체크했고, 공동간병이 있는 곳은 간병인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회사 점심시간엔 혼자 커피숍으로 가 멀어서 가보지 못한 병원들에 전화를 해서 입원 상담을 받아보았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에 대한 케어를 공동간병에서 해줄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부정적.. 조금씩 지쳐갔다.
햇빛 좋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회사 근처 커피숍으로 가 커피를 시켜놓고 그동안 상담받았던 내용들을 정리한 수첩을 천천히 훑어봤다. 공동간병은 어느 정도 인지가 있고 스스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을 때 보내야 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햇살 좋은 나른한 오후에 회사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지금 보고 있는 풍경과 병원의 모습이 교차되며 두 모습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시간쯤엔 엄마도 점심 먹고 재활하기 전까지 쉬고 있을 시간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은 내가 좀 더 엄마를 케어할 수 있는데 까진 더 해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커피숍 통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평화로워 보여서일까.
그 순간 내 마음은 보고 있던 풍경속이 아닌 병원에 있었기에 퇴사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