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던 날 엄마의 웃음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미명아래 나도 엄마도 너무 몰아붙이기만 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의미했던 시간이라곤 말할 수 없지만 그건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엄마 호전에 대한 압박감과 강박을 조금 내려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함께 있을 시간이라면 서로 웃으며 보내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주가 지나갔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이었지만 코로나로 아픈 상태에서 엄마를 돌보고 밥을 하기란 여간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느린 듯 빠른 듯 어느새 격리 해제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때부터 난 새로운 병원을 알아봤다.
퇴원조치 당했던 병원에선 더 이상 있고 싶지가 않았고 무엇보다 엄마의 무릎통증으로 재활이 더디게 진행됐는데 기존 병원은 통증 치료랄 게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곳을 찾아보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다른 뇌졸중환자 보호자분께 추천받아 해당 병원으로 입원하기로 정한 후 입원 준비를 했다.
입원할 때 보호자와 환자 모두 PCR 검사 결과가 필수였는데 나는 확진된 문자로 가능했지만 엄마가 문제였다. 거동이 안되니 보건소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기에 난감했는데 다행히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방문 검사가 있어 신청했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나와 지내는 동안 다행히 옮기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인 PCR검사를 해결 한 후 입원 날짜에 사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새로운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들어간 병실에 입원하신 분들은 척추 손상 환자와 뇌졸중 환자분들이 계셨는데 인지는 정상이신 분들이었다.
이전 병원에선 코로나 때문인 탓도 있지만 커튼을 쳐놓고 각자 생활에 충실했다면 새로 간 병실은 모두들 커튼을 다 열어젖히고 "함께" 생활하는 분위기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 꽃이 피었고 4인실에 인지가 정상이 아닌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그래도 모두들 엄마를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면서 말도 많이 걸어주려고 했고 뭐든 도움을 주려고 하셔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새로운 병원에선 이전처럼 엄마를 닦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재활이 없는 주말에는 환자 침대에 둘이 누워 이런저런 말도 걸고 엄마 어릴 적도 물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몰라, 기억 안 나 같은 대답뿐이긴 했지만 10번 물어보면 1~2번 정도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많이 웃으려 노력했다. 한순간에 걷지도 스스로 먹지도, 인지마저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를 보면서 억장은 무너져 내렸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엄마 앞에선 감정 스위치를 꺼둔 것처럼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려 했다.
그 덕분일까. 병실과 재활실의 밝은 분위기 덕이었을까. 엄마는 차츰 웃는 시간도 늘었고 예전보다 말도 조금씩 더 하려고 했다. 가끔 나를 앞에 두고 나를 찾거나, 딸이 둘이라던가 (한 명이다) 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전보다는 호전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섬망증세가 있었는데 밝게 지내려고 한 뒤로는 차츰 그 횟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새로운 병원에서 그렇게 적응하던 어느 날 새벽에 화재경보음에 잠을 깼다. 간호사들도 당황한 듯 어수선했고 병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재로 인한 연기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계속 울려대는 경보음에 환자들도 깨고 보호자들도 복도로 나와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있었다. 잠시만 대기해 달라는 간호사의 말에 병실로 돌아왔는데 엄마를 업고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을까, 점퍼를 입히고 그 위로 담요를 둘러야 하나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데 경보음에 깬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오줌 마려워"
화재 경보음이 울리고 간단히 짐을 싸는 분들도 계셨고 옷부터 챙겨 입고 대기하는 분들도 계셨다. 나도 일단 엄마 점퍼부터 챙기고 있었는데 엄마의 한마디는 오줌 마려워였다.
"엄마 지금 불났을 수도 있어. 기저귀 해놨으니깐 일단 기저귀에 싸도 돼"
"오줌 마려워"
화장실에 가자는 말이었다. 엄만 지금의 상황이 인지가 안되는구나..
화장실로 데리고 가 소변을 뉘면서 대화를 했다.
"엄마 불났을 수도 있어. 우리 대피해야 할 수도 있는데 화장실 가자고 하면 어떡해"
"그럼 마려운데 어떡해"
소변을 뉘고 나오니 다행히 화재감지가가 오작동된 거라고 간호사들이 안내를 해줬다. 상황은 끝나있었다.
엄마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병원 야외마당으로 나가 벤치에 앉았다. 화재경보음에 엄마를 데리고 대피할 생각으로 긴장했었는지 벤치에 앉으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곤 눈물이 흘렀다. 좀처럼 사그라들지가 않았다.
그때 처음 엄마의 인지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나를 보며 소변이 보고 싶다고 하는 엄마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가슴에 박혀 새벽에 한참을 벤치에 앉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