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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로나 격리 중 뇌출혈 엄마 간병

by yeon

내가 코로나 확진이 되는 바람에 병원에서 쫓겨나듯 가퇴원을 하고 집으로 왔다. 뇌출혈인 엄마는 연하식인 간 반찬과 죽으로 밥을 먹었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을 때였다. 몇 달간 비워둔 집, 당연하게 냉장고엔 아무것도 없었고 청소 상태도 좋진 않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야반도주. 그날 엄마가 웃으며 말했던 단어다.

정말 야반도주였다. 밤 12시에 사설구급차를 타고 그렇게 집으로 야반도주를 했다.


엄마를 재운 후 침대 옆 바닥에 약간의 쿠션감이 있는 이불을 깔고 누웠다. 순간 돌아누워 무의식적으로 팔을 옆으로 폈다. 이질적이면서도 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팔도 펴지 못한 채 잠을 잤었는데 이게 얼마 만에 편히 눕는 것인가. 비록 엄마에게 옮을까 봐 침대도 아닌 바닥이지만 옆으로 편히 돌아누울 수도 있고 팔을 피거나 다리를 대자로 할 수도 있었다. 관짝 같이 좁은 곳에서 몸을 말아눕기만 하다가 넓은 곳으로 오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었다. 비록 마스크 두 개를 껴 숨쉬기가 여의치 않았고 열이 다시 오르는지 근육통이 다시 오기 시작했지만 몇 달 만에 넓은 곳에 누워 몸을 움직이며 잔다는 그 느낌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고 엄마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문자로 온 뒤로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엄마는 최종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상주 간병인을 구하고 나는 내가 살던 집으로 가 격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엄마와 함께 지낼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엄마가 음성인건 다행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문제가 있었다. 같이 양성이 나와 동일한 날짜에 격리해제가 되면 다시 병원에 입원하면 되지만 엄마가 중간에 옮았을 경우에는 더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상생활이라곤 전혀 할 줄 모르니 공간을 분리할 수도 없었다. 엄마에게 밥도 물도 먹여줘야 했고 기저귀도 갈아야 하는데 옮지 않을 수가 있을까.

집에서 24시간 봐줄 간병인을 구해볼 요량으로 검색하면서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엄마 사람을 구해야 해. 내가 코로나야. 엄마랑 떨어져 있어야 해"


"엄마는 괜찮으니깐 그냥 같이 있어"


"그러다가 엄마한테 옮으면 어떡해"


"엄만 괜찮아"


뭐 이런 대화였다. 엄마는 괜찮으니 같이 있자는 엄마.


한참을 고민했지만 병원도 아닌 집에서 밥까지 잘 챙겨줄 사람을 구할 자신도 없었거니와 그저 같이 있자는 엄마의 눈빛을 모른 척할 수 없어 격리기간 동안 그냥 함께 있기로 결심했다.


마스크는 두 개를 쓰고 얼굴 가림막을 쓰고 손엔 니트릴 장갑과 일회용 장갑 두 개씩, 그리고 소독제로 계속 손을 소독했다. 밥을 먹을 땐 마스크를 내려야 하니 베란다로 나가 창을 열고 밥을 먹었다. 양치할 때도 베란다에서 벌벌 떨며 해야 했다. 한겨울이라 너무 추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작은방에서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환기문제와 안방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 불안해서 베란다를 선택했다. 근육통에 기침 가래 고열로 정말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여야 했다. 기저귀를 갈고 엄마 밥을 챙기고, 약을 먹이고,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 주사도 놔야 했고 씻겨야 했다.

병원이 아닌 집이니 내가 의사고 간호사여야 했다. 영양사도 돼야 했고 온통 신경 써야 할 일들 뿐이었다.


나는 아팠지만 엄마는 집에 오니 꽤나 반가운 기색이었다. 첫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식 웃는데 얼마 만에 웃는 모습인지, 그동안 병원에서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쓰러지고 몇 달간은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내가 간병하는 동안 참 많이 몰아세워 엄마 웃는 모습 한 번을 못 보고 지내고 있었구나 싶었다. 재활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걷게 하려고 몰아세웠고 누워있을 땐 낱말카드를 읽게 했고, 앉아 있을 땐 동전 뒤집기를 시켰다. 그 모든것 다 하기 싫다고 하면 누워서 뿔피리라도 불도록 시켰다.


나도 쉼이 없었지만 엄마도 쉼이 없었구나. 정신이 차츰 돌아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이 다 받아들여지기도 전에 그렇게나 몰아세웠구나 싶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 시야가 좁아져있던 것이다. 내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엄마를 호전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있었던 아닐까 싶었다.


엄마가 쓰러지고 제일 후회했던 게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난 또 반복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엄마를 간병하던 시간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고, 엄마가 살아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한마디 하지 않았던 것이다. 죽고 싶다고 죽을 생각만 했고 엄마가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왜 엄마에게 글자도 못 읽냐며 닦달만 했고 똑바로 서지 못하냐며 성질만 냈던 것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 한순간, 엄마의 웃음이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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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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