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5. 다 끝내고 싶다는 순수한 욕구

by yeon

다 끝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비단 그때 처음한 건 아니었다. 성인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런 생각들을 한 번씩 해보긴 했지만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의 잦은 싸움 노출되어 살았던 나는 초등학교 때 죽고 싶다고 일기장에 썼다가 혼나기도 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때때로 사로잡히는 무기력함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땐 그냥 죽고 싶다는 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딱 그 정도의 감정이었으나 그날은 너무나 달랐다.

갑자기 솟구치는 욕구. 불현듯 끝내고 싶다는 생각. 배가 너무 고파 당장 무언가를 먹고 싶다던지,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고 싶다던가 졸려서 잠을 자고 싶을 때처럼 느껴지는 순수한 욕구, 욕망 그 무엇이었다. 정말 너무 갑자기 툭 튀어 올라서는 큰 파도를 만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기 전이었다. 만약 그날 병원이 아닌 집이었다면 당장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른다.


절벽 외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매달려 버티고 있었는데 이젠 그 줄마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3일간 일 해 줄 간병인을 구했다. 간병인과 교대하기 이틀 전부터 집으로 가서 볼일 보고 온다고 엄마에게 말해줬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내내 울었다. 금방 온다고 해도 아기처럼 울기만 했는데 그 모습이 가슴에 박혀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 역시 내내 울기만 했다. 나만 찾는 엄마를 보며 내가 진짜 엄마의 보호자로서 살아야 하는구나 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난 아직 엄마가 필요한데 이젠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아기가 되어버린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책임감에 질식해 버릴 것 같았다.


병원에서 나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부터 내려놓고 정신의학과 병원으로 향했다. 약이 제일 급했다. 불안함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증상도 안절부절못하는 증상도 불편했지만 제일 무서웠던 건 다음번에 또 그런 욕구가 들면 정말로 끝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나 혼자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무서워하지 않았을 텐데 엄마와 함께 그럴 생각이었다는 게 가장 무섭고 엄마에게 죄스러웠다. 엄마 쓰러진 지 고작 반년이 지났을 시점이었다. 6개월 전 나는 다 감내할 테니 살려만 달라고 빌었는데 그 사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스스로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엄마를 보고 있자면 드는 연민,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 등으로 온갖 감정이 쓰나미처럼 휘몰아쳤다. 파도가 치고 나면 잔잔해지기 마련인데 이 감정들은 잔잔해질 틈도 없이 계속 요동쳤다.


병원을 나와있는 3일 동안 약을 타오고 부러진 안경테도 다시 맞추고 엄마 집과 내가 사는 집, 두 집의 청소와 병원에서 가져온 빨랫감들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쉬고 싶어 간병인을 구한 건 아니지만 겸사겸사 좀 쉬고 싶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들어갔다. 다시 간병에 들어갔고 약 덕분인진 모르겠지만 그때의 욕구는 한동안 들지 않았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6화개인적인 일로 연재 한 주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