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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Mar 21. 2017

칼국수 인생

김애란의 <칼자국> 서평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줜 여자였다. 

# 칼끝에는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우는 여자는 피팍받고, 설음에 한이 맺힌 여자다.

화장하는 여자는 사랑받는 여자이고 , 예쁨 받는 여자다.

순종하는 여자는 남편에 인정받는 여자이고 싶고, 남자에게 복종하는 여자다.  

어머니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 칼을 쥔 여자다. 칼은 단호하다. 단호한 모습이고 끊고 맺음이 확실하다.

무딘 것은 칼이 아니다. 칼은 날카롭지만 음식을 만나면 부드럽게 변한다.

장수의 손에서 적군 앞에선 무섭지만 주부의 손에서 부드러워진다.

어머니의 몸뚱이에선, 계절의 끝자락, 가판에서 조용히 썩어가는 과일의 달콤하고 졸린 냄새가 났다. 178

# 사람이 나이 먹고 죽어가는 것을 과일이 자판에서 썩어가는 것으로 비유했다.


시베리아 호랑이에게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말이 필요하듯, 나이들어 문득 쳐다보게 되는 어머니의 말,

아름다운 관광지처럼, 나는 그것이 곧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대개 어미는 새끼보다 먼저 죽고, 어미가 쓰는 말은 새끼보다 오래되었다.

어머니가 칼을 갈 때면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52

# 작가는 소설초입에서 이미 어미의 죽음이 칼 때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칼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미의 삶이 자식을 먹이기 위해 칼질하고,

남편의 무능함에 칼질하고, 자신의 못남에 칼질하며, 자신의 목숨에 칼질하고 있는 것이다.


도마질 소리는 맥박처럼 집 안을 메웠다. 그것은 새벽녘 어렴풋이 들리는 쌀 씻는 소리처럼 당연하고 아늑한 소리였다. 153

# 어머니의 칼질은 맥박이었다. 칼질이 삶이었고, 생명이다.


어머니는 20여 년간 국수를 팔았다. 가게 이름은 '맛나당'이었다. 어머니는 누가 제과점을 하다 망한 것을 인수해 간판을 그대로 사용했다. 손칼국순는 시골서 여자가 소자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칼국수를 만드는 일은 간단했다. 솥에 바지락과 다시마, 파, 마늘, 소금을 넣고 중간에 면을 넣은 뒤 뜸을 들이면 끝이었다. 153쪽


# 쉬운 재료, 쉬운 음식이다. 아이들도 쉽게 키울 수 있지만 잘 키우려면 어렵다. 음식도 쉬운 음식이지만 맛있게 하려면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쾌활하고 오만한 어머니에게 단 하나 약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순하고 내성적인 남자였다. 162

# 어머니는 괘활하고 오만한 여자였다. 


"인생 원래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거다."

네 살 연상 국졸 남편이, 역시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자신에게 건낸 이 한마디가 멋있고 미더워

어머니는 혼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놈, 말 잘하네.' 

# 처음엔 호감이 나중엔 비호감이 된다. 말에 따른 행동이 미치지 못할 때 사람은 비호감이 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선 특히 말보다 행동이 있을 때 믿음이 쌓인다. 처음보는 사람에겐 행동을 보여줄 수 없으므로 말이 앞선다

 남편이 자주 쓰는 말은 "그류"이다. 아버지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반대해놓고도 등록금을 대주는 사람이라면, 아버지는 찬성만 하고 아무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나쁘다기 보단 좀 난감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166


어떻게 바람난 아버지를 위해 갈치를 굽고, 가지를 무치고, 붕어를 지질 수 있는지, 그것도 모두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말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찾아낸 떳떳함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혹은 나 때문이었는지도, 아니면 뭐든 먹고 봐야 해서였는지도 몰랐다.169

# 어머니는 미워할 수도 있는 남편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다. 또 화자도 "진정으로 배곯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둥절해진 적이 있다." 어머니는 어떤 경우에도 칼자국 흔적을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했다.

나는 숫돌 앞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는 어머니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 이다."171

# 어머니는  좋은 어미, 좋은 여자 좋은 칼, 좋은 말이다. 이 문장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어머니는 죽기 전, 음식의 간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172

# 어머니는 죽기 전까지 음식을 떠나지 못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임신으로 식욕이 없던 화자는

그것은 어둠 속에서 조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닮고 닳아 종이처럼 앏아졌지만, 여전히 신랄하고 우아한 빛을 품은 채였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밀려왔다. 뭔가 베어 먹고 싶은 욕구, 내장을 적시고 싶은 욕구,

마침 시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사과 몇 알이 보였다. 나는 한 손에 사과를 다른 손에 칼을 쥐었다. 179

# 먹고 싶은 욕구는 어머니의 칼을 보면서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임신으로 먹지 못하는 아내를 걱정하던 남편도, 구역질 나던 아내도 어미의 칼이 번쩍이는 반사에 식욕이 사각사각 올라왔다.


서평

김애란 작가는 촉망받는 신세대 작가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영화와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작가의 소설은 <달려라 아비>를 통해서 처음 만났다. 자녀를 낳고 돌보지 않는 아빠와 칼자국에 나오는 아빠는 공통점이 있다. 가족보다 밖으로 돌았다는 점이다. 김애란 작가는 실제로 어머니가 칼국수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일 가능성이 있다. 자전적이지만 어머니의 죽음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었다고 본다.

 

칼자국을 통해 어머니 삶의 자국을 말하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시베리아 호랑이에게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말이 필요하듯, 나이 들어 문득 쳐다보게 되는 어머니의 말, 아름다운 관광지처럼, 나는 그것이 곧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대개 어미는 새끼보다 먼저 죽고, 어미가 쓰는 말은 새끼보다 오래되었다. 어머니가 칼을 갈 때면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52

 소설초입에서 이미 어미가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을 말한다.

어미의 칼은 강한 칼이 아니라, 종이처럼 얇아진 칼이다.

얇아진 칼은 초반과 후반에 한 차례씩 나온다.

자식을 먹이기 위해 칼질하고, 남편의 무능함에 칼질하고, 자신의 못남에 칼질하며

자신의 목숨에 칼질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을 먹이고, 자식을 먹이려고 칼질을 한다. 

 무능한 남편을 탓하지 않고, 빚을 얻어 국수집을 차린다. 간판은 빵집을 하던 간판을 그대로 사용한다.

"손칼국수 가게는 시골서 여자가 소자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칼국수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작은 자본으로 시작한 국수집은 어머니의 정성으로 맛나당은 호황을 누렸다.“ P153 

이야기의 구조는 전반부에 국수집에 대한 이야기로 자녀를 위해 음식을 해 먹이고, 딸과의 작고 소소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것이 서민들이 느끼는 작은 행복을 말한다.  


두 사람의 인물 대조를 해 보았다.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이다.’

‘어머니는 눈이 크고 이마가 잘 생겼다.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다. 쾌활하고 오만한 성격이다.’

‘어머니는 현실적인 여자다. 모든 것이 순서와 계획이 있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했다.’

‘어머니는 반대해 놓고도 등록금을 대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용기가 없어 좋아한단 말 한마디 못하고 몇 십 리 길을 걸어 돌아가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순간을 사는 사람이다. 자기가 번 돈은 주로 자신을 위해 썼고, 놀라울 정도로 낙천적이다.

아버지는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편이었다. 토박이에 경조 대사를 잘 챙겨 사람노릇해 온 덕이었다.

그 인정의 저변에는 아버지가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깔려 있다.’

‘아버지는 찬성만 해놓고 아무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인생 원래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거다.”는 말에 “그놈 말 잘하네.”

호감을 느꼈던 말이 비호감 언어가 되었다. 행동보다 말만 하는 남자를 나타내는 묘사법이다.

화자는 임신으로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조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닮고 닳아 종이처럼 앏아졌지만,

여전히 신랄하고 우아한 빛을 품은 채였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밀려왔다.

뭔가 베어 먹고 싶은 욕구, 내장을 적시고 싶은 욕구,

마침 시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사과 몇 알이 보였다.

나는 한 손에 사과를 다른 손에 칼을 쥐었다.” 179

먹고 싶은 욕구는 어미의 칼을 보면서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임신으로 먹지 못하는 아내를 걱정하던 남편도,

구역질나던 아내도 어미의 칼이 번쩍이는 반사에 식욕이 사각사각 올라왔다.

칼을 통해 어미의 사랑을 남겨 놓고 간 것이다.


소설의 전개는 어미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과 같은 시기에 임신을 했다는 것은 어미의 사랑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은유적 스토리 전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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