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꽁꽁 숨고 싶은 날이다. 돌 그림을 보면서, 오늘은 '숨기고 싶은 마음'에 대해 써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그림이 나를 잡아당겼다. 곰이 읽고 있는 책 표지를 보자마자 "나 이 책 알아!" 하고 책장에서 얼른 꺼내왔다.
『고 녀석 맛있겠다』는, 읽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찌르르 아프다. 이별하는 이야기라서. 딸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 슬프다면서도 또 읽어달라고 한다. 슬픈데, 왜 이 책을 자꾸 다시 읽게 되는 걸까?
이 책에는 '누군가를 지켜주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나의 울먹 포인트도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티라노사우르스가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는 장면을 보면, 나는 늘 뭉클해진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림 작가도 이 장면이 특별했나 보다. 밤하늘 아래 초록 산 뒤편에서 티라노사우르스가 외치면서 어디로 가고 있다. 손에는 빨간 열매가 있다. 책 속에서 빨간 열매는 아픔을 낫게 하고, 다양한 상처를 치유해준다. 이 공룡은 누구에게 열매를 주고 싶은 걸까, 엄마곰과 아기곰은 그 장면을 지금 읽고 있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감정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유독 '이별'에 약하다. 어린 시절, 사촌 오빠네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3박 4일 동안 매일매일 신나게 놀았고, 그들이 떠난 뒤, 온 집안에 내려앉던 적막. 나는 고요함이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게 만드는 줄 처음 알았다.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난 후 처음 겪는 사람의 빈자리였다.
사실, 이별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운동은 반복하면 근육이 생기지만, 이별은 왜 반복해도 마음근육이 되지 않는 걸까? 예감이 들 때마다, 애써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려본다. 그렇게 하면 이별을 피할 수 있을까봐, 덜 아플까봐.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야."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나는 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애를 썼다. 받기만 하고, 주는 걸 피했다.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것도 아픔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같은 무게의 마음이란, 환상이 아닐까? 우리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그동안 못본 척 했던 것이 아닐까.
별은 스스로 태우는 걸 멈추지 않는다. 닿지 못한다 해도 별은 괘념치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도착하지 못하는 마음이라도, 갈곳을 잃었다 해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으니까. 그냥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다. 남겨지는 것은 여전히 두렵지만, 빛을 꽁꽁 싸매어 감추는 건 더 어렵기에. 다 태우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