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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pr 02. 2016

<배트맨 v 슈퍼맨>: 어머님이 누구니?

Who's Your Mama?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을 대상으로 작성한 글이다. 



이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렇게하면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질 것도 같고, 딱히 글이 흥미로워질 거 같지도 않기에 주제를 좁혔다. 이 글은 영화 <배트맨 V 슈퍼맨>(이하 <뱉슈>)에서 배트맨과 슈퍼맨 간의 극적인 화해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다.


애니에서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이유

애니 <다크나이트 리턴즈>(이하 <닼나리>)에서도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운다. 나는 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래의 글이다. 



나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진짜 이유>라는 글에서 <닼나리>의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 기술한 뒤에, 영화 <뱃슈>에서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 예고편을 참고하여 추측했다. 참고로 나의 예측은 전반적으로 다 틀렸다. 다수의 예고편이 나오기 전에 작성한 글이니 "둠스데이"가 영화에 나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셋이서 다함께 힘을 합치는 장면도 못본 상태에서 분석을 해서 나온 결과다. 뭐, 핑계를 대자면 그렇다는 거고, 틀린 건 틀린거지.


위의 글을 보면 알겠지만, <닼나리>에서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는 이유는 꽤나 정치적이다. 소련이 핵미사일을 날렸는데, 이 때 슈퍼맨이 소련의 핵미사일을 우주로 돌려보내기 위해 미사일을 안은채로 우주로 간다. 그리고 펑. 그때의 핵폭발로 인해 미국 전역이 정전이 되서 치안이 엉망이 된다. 또한, 핵폭발로 인해 슈퍼맨도 좀비처럼 된다. 슈퍼맨이 좀비처럼 되는 장면은 <뱃슈>에서도 동일하게 연출된다. 다만, 영화에선 핵미사일을 쏘는 게 미국이고, 둠스데이와 함께 슈퍼맨이 그 핵미사일에 맞을 거라는 걸 미국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 다르다. 


소련의 핵미사일
우주에서 핵미사일의 폭발에 휘말리는 슈퍼맨

미국 전역이 정전되어 치안이 엉망이 되었지만, 유일하게 치안이 유지되고 있던 곳이 바로 고담이다. 이에 지지율이 떨어지던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기를 입고댕기는 슈퍼맨을 부르고 배트맨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슈퍼맨은 미국을 위해(정확히는 미국이라 상징되는 미국) 소련과 싸웠던 것처럼, 배트맨을 처리하러 간다. 이게 <닼나리>에서 슈퍼맨이 배트맨을 찾아가는 이유다. 배트맨 입장에선 슈퍼맨이 처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니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애니 <닼나리>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내가 위에 링크를 건 글로 가시면 된다.


영화 <배트맨 V 슈퍼맨>에서 그들이 싸우는 이유
<저스티스의 시작>이라는 번역은 정말이지 봐줄 수가 없어서 외국 포스터를 가져온다

영화 <뱃슈>에서는 배트맨이 애초에 슈퍼맨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슈퍼맨이 인류를 다 죽일 수 있는 존재인데 통제받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드 장군과의 싸움으로 인한 콜레트럴 데미지로 회사의 직원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슈퍼맨에 대한 증오심의 근원인 것으로 표현된다. 슈퍼맨 역시 배트맨에 대해선 감정이 좋지 않다. 슈퍼맨은 배트맨이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다. 깔끔하다.


그런데 슈퍼맨의 배트맨에 대한 분노는 영화에서 사실상 쓸모가 없다. 결국 슈퍼맨이 배트맨을 찾아가는 이유는 슈퍼맨이 배트맨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렉터 박사 아들-알렉산더 루터가 협박을 해서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슈퍼맨이 배트맨에게 "배트맨은 죽었다."라고 다신 나타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냈는데, 배트맨이 그 말을 생까고 배트빔(...)을 쏴서 "나 여기 있지롱."하고 이에 빡친 슈퍼맨이 배트맨을 찾아가는 거라면? 그렇게되면 루터의 협박이 무쓸모해진다. 이 영화가 얼마나 허접하게 설계가 되어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완벽함은 뺄게 없는 상태다. <뱃슈>는 엉성하다.


배트맨의 동기 v 슈퍼맨의 동기(motivation)
이 영화의 막장테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배트맨의 슈퍼맨에 대한 증오는 충분히 설명이 된다. 그런데 슈퍼맨은 아니다. 슈퍼맨이 배트맨에게 싸움을 거는 동기는 앞서 언급했듯 루터의 협박이 없어야 깔끔했을 것이다. 슈퍼맨은 배트맨을 제거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터의 협박이 있음으로해서 슈퍼맨의 동기가 엉성해졌다. 이 영화의 막장테크트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 글에서 <뱃슈>에서의 배트맨과 슈퍼맨의 극적인 화해를 다룬다고 했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화해를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누구도 그런 식으로 화해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적인 존재인 슈퍼맨이 예수처럼 크립톤-룽기누스의 창빵을 맞으며 죽으려는 찰나에 "마사"라는 이름을 꺼내고 그녀를 살려야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배트맨은 그를 살려준다. 


누구도 이런 식으론 화해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배트맨이 배트맨이기에 이해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배트맨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할 것이니 차근차근 따라오시라.


"엄마"가 아니라 "마사"

나는 이 지점에서 슈퍼맨이 "마사"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지적할 것이다. 보통 "마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한테는 "마사"에 대해 말할 때 "엄마"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마사"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선 이런 질문이 자동반사로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누군데?" 


그래서 사회생활을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들을 이야기할 때 "XX"라면서 부모님의 이름을 말하기보다는 "우리 엄마"나 "우리 아빠"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상대가 "XX"가 누군지를 모르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그게 누군데?"란 말을 안하게끔 배려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클락 켄트가 좋은 기자는 못될거라는 거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독자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 지에 대해선 감을 잡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슈퍼맨은 배트맨이 "마사"에 대해 모를 거라는 생각 조차도 못했다. 이런 애도 취업을 한다. 미국 언론계 수준 ㄷㄷ해..


극적 화해

나는 이 영화가 엉망이 된 이유 중 하나가 배트맨과 슈퍼맨의 말도 안되는 극적 화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슈퍼맨이 "엄마"를 "마사"로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알렉산더 루터가 슈퍼맨 엄마 "마사"를 납치하고 협박하지 않았다면 슈퍼맨이 배트맨에게 "엄마"를 "마사"라고 부를 일도 없었을 거고 애초에 "엄마" 자체에 대해 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잭 스나이더가 엉뚱하게 루터가 슈퍼맨의 "엄마"를 납치하게 만들면서 슈퍼맨이 "엄마"를 "마사"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배트맨과 슈퍼맨이 서로의 엄마 이름이 "마사"로 동일하다는 이유로 화해를 하게 되는 해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게 다 잭 스나이더가 다 된 밥에 "엄마"를 뿌렸기 때문이다. #어머니사랑합니다_오해하지마세요


역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애초에 잭 스나이더가 배트맨과 슈퍼맨이 화해하는 이유를 "둘이 엄마 이름이 같으니까 그걸로 화해하면 어떨까?"로 뼈대를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살을 붙였을 지도 모른다. 살을 붙이려면 "엄마"가 중요해지고, 루터가 슈퍼맨의 "엄마"를 납치할 수 밖에 없어진다. 애초에 화해하는 이유에서부터, 화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해괴하기 짝이 없다. 배트맨과 슈퍼맨 간의 싸움과 화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살려주는 이유
고아(orphan)로서의 배트맨

앞서서 나는 배트맨은 배트맨이기에 그의 행동이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배트맨을 규정짓는 몇가지 설정들이 있다. 그리고 그 성격은 어렸을 적 부모를 총탄으로 잃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설정은 너무도 유명해서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나 드라마나 게임에 매번 나오고, 또한 자주 패러디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
게임 <아캄 어사일럼>
드라마 <고담>
코믹스


드립들을 다 올리자면 끝이 없으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부모가 강도의 총에 의해 죽게된 이후로 브루스 웨인은 범죄를 소탕하는 자경단원이 되고, 또한 자선가로서 고아원을 후원한다. 노인요양원이 아니라 고아원을 후원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고 권총에 의해 부모가 죽었는지라 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며 살인을 하지 않는 것-불살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이런 배트맨의 설정은 배트맨을 다루는 콘텐츠 등에서 그대로 적용되기도하고, 비틀어지기도 한다. 작가들마다 배트맨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팀 버튼의 영화에서 배트맨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배트맨은 조커를 절벽으로 밀어서 죽이기도 하고, 배트카로 악당들의 본거지로 간 뒤에 수류탄을 뽕하고 발사해서 건물 내에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전투기에 기관총을 장착한 뒤에 빌런에게 겁나 쏘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영화에서 배트맨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죽이진 않는 대신에 불구로 만든다(...) 이는, 게임 <아캄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캄 시리즈>의 배트맨은 사람을 죽이는 대신에 팔을 부러뜨린다던가, 다리를 부러뜨린가한다(...).


고아(orphan)로서 고아를 돕는 배트맨

이야기가 좀 산으로 간 거 같은데, 여튼 배트맨은 DC세계관에서 아주 유명한 고아다(...). 부모가 죽은 것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배트맨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표현된다.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그리고 이번에 나온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v 슈퍼맨>에서 모두 브루스 웨인의 부모가 살해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게임 <아캄 시리즈>에서도 배트맨의 부모 살해 트라우마는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코믹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배트맨이 노인요양원이 아니라 고아원을 후원하는 이유는 자신을 고아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다른 고아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포에버>에서 로빈의 부모는 서커스 도중에 죽음을 당하고, 배트맨은 '고아'가 된 로빈을 동료로 거둔다.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선 조셉 고든 래빗(이하 조고래)이 연기한 로빈은 브루스 웨인이 후원한 고아원에서 성장한 고아다.


이러한 고아로서의 배트맨 설정은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v 슈퍼맨>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까 <배트맨 v 슈퍼맨>에서 슈퍼맨이 "마사"(엄마라고 안하는 대신)라는 이름을 말했을 때 배트맨은 자신의 살해당한 엄마 마사 웨인을 떠올리게 되고, 슈퍼맨 여친이 "마사가 슈퍼맨 엄마임 ㅇㅇ"했을 때 배트맨은 더욱 더 슈퍼맨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그리고 또한 슈퍼맨이 "마사가 우리 엄마라고!"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그가 또한번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뇌도 근육인가). 


정리하자면, 슈퍼맨이 "마사가 위험에 처했어"라는 말을 하고 슈퍼맨 여친 루이스 레인이 "얘 엄마가 마사임 ㅇㅇ"라고 말했을 때 배트맨은 슈퍼맨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자신의 엄마가 마사 웨인이어서도 물론 있겠지만 애초에 부모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배트맨은 자신의 부모가 죽은 것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 때문에 그 사단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슈퍼맨이 "마사가 위험에 처했어"라고 하고 슈퍼맨 여친 루이스 레인이 언어발달 장애가 걸린 슈퍼맨을 대신해 "얘 엄마가 마사임 ㅇㅇ"이라 했을 때의 '마사가 위기에 처한 상황'은 아직 '죽음'이 실현되지 않은, 충분히 살려낼 수 있는 상황이다. 배트맨이 "마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배트맨에게 슈퍼맨은 '부모가 죽기 직전의 자신'이다. 또한, 슈퍼맨이 단순히 부모를 구하기 위해 배트맨에 왔다는 사실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배트맨의 성향과도 통한다. 그래서 결국 배트맨은 슈퍼맨을 살리게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잭 스나이더의 똥질이 이런 설명으로 카바처지진 않는다.


박지훈 번역가 번역의 문제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

박지훈 번역가는 <배트맨 v 슈퍼맨>이 개봉하기 전부터 논란이 됐다. 예고편에서의 번역이 너무도 허접했기 때문이다. 그의 번역에 대해서는 정리된 링크글이 있다(아래).

 


<뱃슈>에서 나를 가장 빡치게 했던 번역은 "Water is wet"을 "홍수가 났다"로 번역한 게 아니다. 물론 이것도 굉장히 아마추어같은 오류-번역이지만, 나를 가장 빡치게했던 번역은 따로 있다. 바로 아래의 장면.


"YOU LET YOUR  FAMILY DIE"


배트맨에게 루터가 보내는 일종의 편지다. 편지에는 "YOU LET YOUR  FAMILY DIE"라고 적혀있다. 나는 CGV에서 영화를 봤는데, 번역이 대략 이랬다. "너는 너의 직원들을 죽게 내버려뒀어." 이 번역만 봐도 박지훈 번역가가 얼마나 영화에 대한 공부가 안된 상태에서 번역을 했는 지 알 수 있다. 


루터 편지의 목적은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어그로를 끄는 것에 있고 루터는 배트맨의 정체를 알고 있으므로, 문장에 굳이 "FAMILY"를 넣은 것이다. 신문에 "WAYNE TOWER DEVASTATION"이라 적혀있고, 잔해들이 널부러져있으니 "FAMILY"를 "직원"으로 번역하는 것은 일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었다면 "가족"이라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부모가 살해당했고 그에 책임을 느끼고 있기에 "가족"이라는 표현이 배트맨의 어그로를 끄는 단어다. 그리고 "가족"이라고 표현을 해도 직원을 흔히들 가족이라 표현하기에 딱히 신문상의 내용과 모순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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