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Lost In Traslation>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면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제목이 번역되었죠. 최선의 번역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다른 대안도 딱히 떠오르진 않습니다.
이 영화는 2003년에 개봉한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입니다. 소피아는 <대부>를 찍은 프란시스 코폴라의 딸이기도 합니다. 전 이 영화를 통해 소피아 코폴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 영화를 꽤나 좋아라합니다. 그런데 정작 소피아 코폴라의 다른 영화들은 본 적이 없군요. 이 글을 마무리하고 한번 찾아볼까 합니다. <A Very Murray Christmas>라는 작품에 흥미가 가네요.
짝은 있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남녀
일본으로 광고 촬영을 하러 온 한물 간 영화배우 밥 해리스(빌 머레이 연기) 그리고 남편의 사진 촬영을 따라 일본으로 온 샬롯(스칼렛 요한슨 연기)은 모두 짝이 있지만, 사랑받지 못합니다. 부인과 전화를 나누는 밥은 부인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부인은 밥을 한 명의 남자나 사랑하는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식에게 필요한 어떤 수단적 존재로 여깁니다. '왜 더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냐'는 압박을 넣는거지요. 그리고 그렇게 취급받는 다는 것을 밥은 느낍니다.
샬롯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일본으로 함께 온 남편은 그에게 "I love you"를 연발하긴 하지만, 정작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습니다. 우연히 만난 남편의 여자 동료가 멍청한 소리를 했을 때 샬롯이 그걸 지적하자 남편은 되려 여자 동료를 두둔하죠. 왜케 까탈스럽냐면서요.
결국 이 둘은 상대에게 사랑받는 걸 포기합니다. 밥이나 샬롯은 모두 각자의 짝을 위해 나름의 구애노력을 해보지만 결국 포기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샬롯.
샬롯은 출장을 가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안가면 안돼?, "농담이야, 갖다 와 난 걱정마"
이 말 뒤에 남편은 결국 출장을 떠납니다. 떠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애초에 성립되지 못했을 겁니다. 샬롯은 남편과의 사랑을 회복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렸겠죠. 하지만 남편에게 샬롯은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고, 샬롯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샬롯도 더이상 남편에게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죠. 이제 밥 해리스씨.
부인은 밥에게 카페트 색깔 샘플들을 보낸 뒤에 하나를 골라보라고 요구합니다. 영화 초반부 때 밥은 색깔을 고릅니다. 부인에게 나름의 노력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영화 후반부로 가면 밥은 색깔을 선택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당신이 골라. 난 모르겠어." 더이상은 못해먹겠다, 라는 선포와 다름 아니죠. 이로서 짝이 있던 두 남녀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와도 영화 엔딩 때 두 사람이 귓속말로 주고 받은 말이 어떤 내용일지는 대략 짐작이 가능하죠.
샬롯이 팬티만 입고 있는 이유
영화는 샬롯의 엉덩이를 보여주면서, 꽤나 관능적으로 시작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지를 입으면 불편하니까 팬티만 입고 있는 거 아니겠느냐, 라는 해석(?)도 가능하지요. 그런데 주인공이 굳이 편의성 때문에 팬티만 입는다면 영화의 시작을 굳이 이런 장면으로 시작할 이유는 없습니다. 편의성은 이 영화의 주제와 상당히 거리가 멀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아무 이유도 없이' 보여주는 장면이 없습니다. 다 의미가 있어서 심어놓은 장면들이죠. 그 의미가 설득력이 있는 지 여부는 감독의 재량에 달린 것이겠지만요.
샬롯이 팬티'만'을 입고 있는 이유는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일만 하지말고 나와 사랑을 나누자' 혹은 '내게 사랑을 다오' 같은 의미의 팬티인거죠.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그가 남편의 사랑을 기대하는 시점 때는 꽤나 섹시한 타이트한 팬티를 입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타이트하지 않은 덜 섹시한 박스 팬티를 입는다는 겁니다.
또한, 샬롯이 팬티를 입고 있다는 건 그의 유혹이 실패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영화의 7일동안 남편과 샬롯은 단 한번의 섹스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만약 그의 유혹이 성공했다면, 그가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았다면 팬티는 그의 몸이 아닌 호텔방 어딘가에서 나뒹굴고 있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팬티를 입고 있는 주인공의 엉덩이는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의 지금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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