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최근 한국서 이슈가된 다큐가 하나 있다. SBS스페셜이 제작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다. 그 다큐에는 사표를 낸 요즘 젊은 것들이 등장해서 한국의 기업 문화가 자신들의 미래에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를 하기도하고, 한국의 기업 문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보여준다.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도 있는 듯 하다. 볼따구를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팍, 팍.
대기업 H사를 다니는 친구에게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가 이슈가 되자 사장이 이 다큐를 임원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의문이 들었다. 다큐의 취지에 공감하고 회사 문화를 시정하기 위해서였을까? 대체 사장은 왜 이걸 보여줬을까? 친구에게 물으니 '애들 못나가게 관리해라'라는 취지였단다. 정작 임원들은 해당 다큐의 문제의식에 조금도 공감을 못했다고 한다. 사장이라고 공감했을지는 모르겠다. 다큐 내에도 요즘 젊은 것들이 얼마나 끈기가 없는 지 한탄하는 나이 지긋한 자가 등장한다.
기업: 신입들의 퇴사를 싫어하는 이유
다큐 속에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에 공감하지 못하는 간부들은 신입들의 퇴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신입들을 교육하는 것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들의 퇴사는 회사에 손해라는 거다.
다큐 속에서는 교육 비용만을 언급했지만, 신입을 뽑을 때 들였던 채용 비용과 신입이 퇴사를 하면서 생긴 빈자리로 인해 생기는 비용도 포함하면 신입이 퇴사할 때 생기는 비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기업들은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임원들끼리 다큐 돌려본다고 해결될리는 없으니 그게 대안이라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기업 손해다.
회사원: 퇴사를 하는 이유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가 퇴사를 결심했어서 그에 대해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그 글의 제목은 <대기업에 간지 1년도 안된 친구가 퇴사를 준비 중이다.>다. 이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었다.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보고 짜맞춰서 쓴 거 아님?" 넘겨짚는 상상력에 박수를 쳐준다. 글 쓰면서 그런 짓 안한다. 오히려 글을 쓴 뒤 저 댓글 때문에 다큐를 찾아봤다. 재밌는 것은 내가 글에 썼던 대기업 내의 내 친구의 고충이 다큐에서도 고스란히 등장했다는 거다. 이는 퇴사를 고민하는 회사원들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왜 퇴사를 하는가?
저녁이 없는 삶
야근은 죽도록하는데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 회사들이 다반사다. 아니, 사실 야근수당이 나오고 말고는 본질적으로 그리 중요치 않다. 저녁이 없어지고 나의 삶이 사라졌다는 게 중요하다. 회사에 열과 성을 다하며 조직의 일원으로서 희생하는 것이 현재 4~50대 아저씨들에게는 꽤나 멋진 삶의 신조일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젊은 것들은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다. 대기업에 들어간 것은 대기업에 희생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라 대기업에 취업을 하면 뭔가 멋진 미래가 펼쳐질 거란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혹은 그냥 남들이 다 가려고하니까). 그런데 '나'의 시간이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주중엔 야근 때문에 시간이 없고, 주말엔 주중에 끌어쓴 에너지 때문에 침대와 합체해야한다. 돈은 모인다. 돈만 모인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일뿐이다
회식은 야근 수당도 안나오는 야근이다. 상사들은 지딴엔 부하들에게 '선물'해준답시고 자리를 만드는 지도 모르겠으나, 요즘 젊은 것들에게 야근은 그저 피곤한 일일 뿐이다. 칼퇴근보다 좋은 선물은 없다(이 당연한 게 어쩌다 선물이 된 거냐). 너랑 같이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편으론 상사들이 자신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회식 따위를 마련하지 않나 싶다. 집에서 무시당하니까 바깥에서 자존감을 챙기려는 게 아닐까, 마 그렇게 소설을 써본다.
회식 자리를 마련하는 또다른 이유로는 조직의 단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조직의 아웃풋을 늘리려면 조직원들을 행복하게 해줘야하지 사회주의도 아니고 조직이 단합되게 하려는 건 방법부터가 잘못되었다. 회식이나 해병대 캠프나, 카드섹션 따위로 개인을 조직의 일개 부품으로 만들며 단합하려하지말고 칼퇴나 선물해주는 게 차라리 더 낫다.
야근과 회식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야근이 저녁이 없는 삶을 만들고, 이는 회사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주요한 변수다. 또 무엇이 회사원들을 불행하게하나? 계속 진행해보자.
개성의 실종
요즘 청년들은 단순히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직의 하나의 파편으로서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는 자들이 아니다. 모두가 특별해지고 싶어하고 타인들과 구별되어지길 바란다. 페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개인 기반 SNS들이 흥하는 건 자신들을 특별한 무엇인양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 특히 한국 대기업의 회사 문화는 개성을 죽인다.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직업이 등장한다. 회사의 예절을 가르쳐주는 코치가 그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그로테스크하게 받아들여졌다. 평범하게 사회 생활을 해온 이들이 회사의 소위 '예의'를 지키지 못해 그들을 위해 '코치'가 필요하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회사에 괴상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거다. 신입들이 적응을 못했다면 신입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볼 게 아니라, 회사가 이상해졌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뭔 코치인가? 우격다짐으로 괴상한 문화를 신입에게 장착시키겠다는 것으로 밖에 안보인다.
다큐에도 간략히 나왔지만 상사에게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해야하는 지 정해져있다는 것과 소주를 따라 줄 때 상표를 가려야한다는 문화는 존재 자체만으로 황당하다. 허접한 한국 군대에나 있을 법한 문화들이 소위 글로벌 기업이라 여겨지는 대기업들에 존재한다는 것은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따라야할 예의가 있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스트레오 타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기본적인 예의-예를 들어 동료나 상사나 부하에게 욕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사내의 룰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나쁘다할 사람은 없고, 그것만 가지고 '개인이 상실된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현재 대기업의 사내 문화들은 너무도 괴상하고, 개성을 말살시킨다. '개인'이 존재하기 어렵다.
일단 업무에서 개성은 그리 존중받지 못한다. 아랫것들의 제안은 무시되기 일수고, 윗것들이 내려까는 제안들은 그것들이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도 별 무리 없이 진행된다. 윗것들이 내려까는 기획을 할 때 기획팀은 그 엉성한 기획안의 후까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상사의 후까시를 잡아주는 개인들은 그저 후끼일뿐, 피드백해줄 수 있는 제안자도 뭣도 아니다. 이런 식을 몇번 겪은 사원들은 결국 언제부턴가 엉성한 기획안을 마주해도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IT회사를 다니는 내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퇴사의 밑거름이 된다.
개인의 종말을 종용하는 대기업의 행태는 아래에 링크한 영상들에서 확인해보자. 조직을 위해 개성을 죽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북한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마초 문화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aka 동물의 왕국
한국의 대부분의 조직들은-기업을 비롯하여-마초 문화에 익숙한 외향적인 남성을 선호한다. 흔히 여성 직원을 향해 회사에 적응을 못한다고 쿠사리를 넣는 이유는 그들이 흔한 남성들에 비해 남성적인(?) 군 문화-마초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한국의 회사가 마초 문화, 수직적인 인간관계 문화에 흠뻑 젖어있다는 걸 보여준다. 상사에게 술을 따를 때는 소주병의 상표를 가리고 술을 따르는 것이나, 술잔을 마주칠 때 잔을 상사보다 아래에 둔다는 식의 유치한 장난질이 일(business)을 하는 회사에 존재한다는 건 코미디다.
술을 암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내키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마시는 건 고문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회식에 참여하는 지 여부가 진급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은 이 회식에 빠지기 어렵게 만든다. 이쯤되면 회식은 그저 상사들의 고문도구일 뿐이다.
개발자인 내 친구는 한 은행에 신입으로 들어간 뒤 상사들 앞에서 재롱잔치를 했다. 한국 기업들에 갓 들어간 신입이라면 이렇게 상사들에게 배를 까보이며 충성을 다하겠다는 수치스러운 무언의 선언을 해야한다. 짐승의 세계다. 충성이 첫번째고, 일은 두번째다. 그 친구는 현재 해외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내향적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
게다가 한국의 조직 문화는 내향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들을 선호한다.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주눅들지 않는 인간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선호 현상은 아니고, 전세계의 경향이기도 하다. 수전 케인이 <콰이어트>라는 책을 쓰고 테드 강연까지 하면서 내성적인 사람들의 장점을 전세계에 알리려는 이유는 외향적인 사람을 winner로 보고 내향적인 사람을 loser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국의 사무실의 인테리어 자체도 외향적인 사람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빨리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자신의 공간에 칸막이가 있는 지 여부가 중요하고, (비)정기적인 회식도 스트레스다. 회사의 거의 모든 부분들이 외향적인 사람들에 맞춰져 설계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외향적인 사람들도 한국 특유의 회식에는 스트레스 받는 수준이니 뭐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지금 한국의 회사들이 내향적인 사람들을 배려할 준비가 되어있는가하면 전혀 아니다. 나는 퇴사자들의 많은 지분을 내향적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들의 퇴사를 막으려면 회사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 아마 회사는 직원들을 관리할 때 내향성, 외향성 프레임으로 접근하지는 않을 거다. 그보다는 winner, loser 프레임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내향적인 사람들의 장점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에, 그리고 퇴사 자체가 회사에게 불이익으로 남기 때문에 그들의 퇴사는 결과적으로 회사의 손해다.
배우는 게 없다
업무와도 상관이 없는 회식 약속이 잡히면 젊은 것들은 회식 장소를 예약해야하고, 상사의 업무임에 틀림이 없는 일인데도 자신이 도맡아서해야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나마도 자질구레한 업무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기획을 해도 막히기 일수이고, 상사들의 기획에 피드백을 해줘봐야 먹히지 않으니 그거 까내리는 일 밖에 할게 없다. 그런 일을 하면서 소위 자아실현이란 것을 할 수 없고 딱히 배우는 것도 없다. 디테일만 조금 다른 비슷한 작업들의 연속이다. 배우는 게 없고, 성장한다는 느낌도 받지 못한다.
또, 위임을 하지 않는다. "이 일은 너가 알아서 해라"라고 위임을 하는 경우가 적다는 이야기다. 완전한 책임을 주고 일을 완성하게끔 냅두질 않으며 상사들은 설사 일을 맡길 때조차도 자신의 스타일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꼰대질은 기본이거니와 오지랖을 시전한다. 이러하니 날개를 펼칠래야 펼칠 수가 없고 배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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