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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Sep 28. 2015

나이 먹으니 투정부릴 사람이 연인뿐이다.


왜 연애를 하는가?

이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가능하다. 혼자인 게 외로워서, 솔로라는 것을 남들에게 밝히는 게 싫어서,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고 싶어서, 혼자 밥을 먹기 싫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등등 여러가지 답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도 답은 아니다. 각자의 취향과 선택이 있을 따름이다.


"나이 먹으니 투정할 대상이 없다"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내 말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투정을 부리는 것은 쉽지 않다. 투정 한두마디에 제 3자들의 평가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멘탈이 약하다", "유리멘탈이다", "약한 사람이다", "의지하기 힘든 사람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기 싫은 자들은 더더욱 투정을 하지 않게 된다.


나이를 먹고 나면 부모님에게도 '나'의 속을 털어놓기가 어렵다. 그들에겐 '나'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알려야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효도라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은 '나'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우리나라의 정서상 정신과에 가는 것도 꺼려진다. 정신과가 한두푼도 아니고 효과가 있는 지도 모르겠고, 돈을 주고 받는 관계인 사람에게 내 속을 완전히 털어내기도 어렵다. 그 정도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돈이 소비된다.


투정의 대상으로서 연인의 존재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투정을 부릴 수 있는-"사는 거 너무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는-사람들은 두 부류로 압축된다. 친구와 연인. 정말 오래된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오래된 연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으며 그 둘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투정의 대상으로서 친구와 연인의 역할은 반드시 겹치진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내 인생의 오래된 친구도 필요하고, 또한 (오래된) 연인도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내지 못하면 마음에는 골병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힘들다는 걸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연인에게 그 역할을 부여하지 않을까? 최근에 김제동이 한 TV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던 스피치는 꽤나 대중적으로 호소력을 얻었는데, 그때 김제동은 '힘드시죠? 다 알아요'라는 요지의 스피치를 했다. 위로받지 못했던 영혼들이 김제동에게 위로받은 게 아닐까. 삶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고 '상대'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관심을 주고 '나'의 고통을 공감해주는 이는 더더욱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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