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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Sep 27. 2017

사람 새끼를 키운다는 것


집에 들어가는 길. 엘베 앞에 유모차를 끌려고하는 꼬맹이 하나와 엄마가 있었다. 엘베가 와서 내가 먼저 탄 뒤 그들이 탔다. 분명 한국어는 아닌 어떤 언어로 꼬맹이는 무언가를 엄마에게 요구했고 엄마는 다급히 어깨에 걸어둔 가방을 보이며 "인형 여깄어"라 했다. 그 인형은 그 큰 백에 들어가서도 몸뚱이를 보일정도로 사이즈가 큰 놈이었는데 엄마의 큰 백은 그 인형을 위한 것이었다. 꼬맹이는 안심(?)했다. 그리고 엄마도 안심했다. 큰 위기를 넘겼다. 인형이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알 수 없다.


2층에서 엘베 문이 열려서 그들은 내렸다. 그때까지 꼬맹이는 울지 않았고 평온한 상태였다. 그런데 엘베의 문이 닫히려고 하는 사이 꼬맹이는 유모차를 땡겨 다시 엘베에 타려고 했고(난 혹시 몰라 "열기"버튼 누를 준비를 하며 손가락을 대고 있었고), 엄마는 그러면 안된다는듯이 가벼운 물리력으로 유모차를 앞으로 밀었다. 아이의 요구는 거절 당했다. 


엘베의 문이 닫혔을 때 그 틈새로 아이의 서러움 울음소리가 들어왔다. 유모차를 땡겨 엘베에 다시 타려는 꼬맹이의 요구가 부정당했기 때문이리라. 엄마는 그걸 예측하지 못했고, 그걸 예측 못했기 때문에 곧휴라도 잃은 듯 서럽게 우는 저 꼬맹이를 달래느라 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써야할 것이다. 


인형을 찾는(난 그게 인형을 찾는 언어인지도 몰랐다) 아이의 요구에 인형으로 급히 아이를 달래려던 엄마의 액션이 갑자기 이해됐다. 저 새끼는 언제 어떤 이유로 울지 모르니 인형은 정확한 타이밍에 그 자리에 있어야했다. 정확한 타이밍에 대응하기 위해 겁나 큰 인형을 넣고 다닐 겁나 큰 백을 들고나왔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유모차도 그 인형과 역할은 동일하다. 인형은 꼬맹이가 항상 요구하는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 요구할지 모르고 그게 없다는 이유로 애새끼가 언제 행패를 부릴 지 알 수 없으니 위기관리를 위해 엄마는 존나 큰 인형을 챙기고, 그걸 장기간 몸에 편하게 지니기 위해 존나 큰 인형을 넣을 존나 큰 가방을 챙겼을 것이다. 


유모차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유모차에 서있는 꼬맹이보다(걸을 수 있는 꼬맹이보다) 작은 사이즈의-걸어다니지 못하는 꼬맹이가 타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엔 아무도 타있지 않았다. 서서 걸어다닐 수 있는 꼬맹이를 위한 유모차였던 거다. 인형과 마찬가지로 유모차도 아이의 요구에 따라 언제 필요해질지 알 수 없으니 항상 챙겨둬야하는 종류의 아이템이었던거지.


엄마는 애가 울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모든 아이템들을 챙겼던 것인데, 나는 거기에서 엄마의 부담감이 읽혔다. 길거리에서나 업장에서나 아이가 울면 엄마들은 아이를 관리하지 못하는 맘충 취급이나 받으니 그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을 것이다. 아이가 어떤 이유로건 울지 않게끔 필요할 지도 모르는 모든 아이템들을 졸라 큰 도라에몽 주머니에 다 쟁여넣는 이유는, 아이를 울릴 때 그 책임이 온통 엄마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닫히는 엘베 문을 뒤로 한 채 유모차를 앞으로 밀었다고 우는 아새끼를 보면서 또 한번 느꼈다. 아새끼들은 원래 우는 존재들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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