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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22. 2015

최소한의 배려

로드킬 동물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


갑자기 들리던 비명소리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꺅, 하는 비명. 무슨 일인가 했더니 큰 길을 횡단하려다가 고양이가 치였더라. 그 도로는 절대 고양이가 건널 수 없는 도로였다. 충정로역이었는데 4차선도로인가 8차선 도로였다. 미련한 것. 고양이로 보이는 어두운 물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함께 있던 여자친구를 버스 태워보내고 고양이가 치인 건너편으로 갔다. 꺅, 을 했던 자들 중 아무도 고양이에게 가지 않는 것이 한편으론 의아했지만, 아무도 안갔기에 내가 갔다.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고양이를 확인했다

검은색 털을 가진 아이. 역시나 죽어있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형체는 남아있었으며, 나는 그 고양이를 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차들은 고양이의 시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달렸으며, 바퀴들은 하나 둘 자신의 지문을 고양이에 남기며 떠나갔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휙 돌렸다. 그렇게 된다. 자동으로 얼굴이 휙 돌아간다. 


차들의 행진이 잠시 멈췄을 때, 나는 다가오는 차에게 신호를 보내고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고양이의 형체는 남아있었지만, 얼굴은 활자로 묘사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몸은 한 때 생명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듯이 온기를 품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것

고양이를 데려왔지만 딱히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경찰서에 신고해야하는지, 동물단체에 연락해서 이 고양이를 데려가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야산에 고양이를 데려가서 묻어야하는건지. 막차는 다가오는데 그저 멍하니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위의 가로수에 그 아이를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나는 그 당시에 이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때 댓글로 어떤 분이 "얼굴을 좀 가려주시지 그랬어요."라고하는 걸 보고 뒷통수를 뻥하고 맞는 느낌을 받았다. 그 분은 그 아이의 '파괴된 형상'을 누가볼까봐 걱정했던 게 아니었다. 단지, 그 아이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주고 싶어하셨다. 나는 당시에 그 생각까지는 못했던 거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배려해줄 수 있었던 거지.


오늘 친구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길에서 죽은 비둘기를 만났다. 하지만 그 아이는 도로에 있지 않았다. 차가 다니지 않는 난간 근처에 있었다. 누군가가 옮겨놓은 것이다. 그 검은 고양이가 문득 떠올랐다. 좋은 곳에서 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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