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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Oct 06. 2020

점심에 라면 먹었습니다.

2020.6.11.

예전 얘깁니다.

오빠, 난 여태껏 소개팅 한 번을 제대로 못 해봤다.
그래? 그럼 한 번 해봐. 단, 나한테 얘기는 하고.
진심이야?
응. 어차피 나한테 돌아올 거잖아?
그러다 만약 더 좋은 사람 만나면?
그럼 보내줘야지. 그런데도 내가 붙잡고 있으면, 그건 옳지 않잖아.

삐뚤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저에겐 오늘이 그러합니다. 몸을 좀 망가뜨리고 싶은 기분. 이럴 땐 역시 술이지만, 그렇다고 오후 진료와 저녁 일정을 무시하고 취해버릴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닙니다. 술은 밤으로 미루고 대신 자극적인 메뉴를 고릅니다. 굳이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거리의 라면집으로 향합니다. 라멘이 아닌 라면집 중에선 이만한 데가 없습니다.


'옐로우 맵게' 하나 주세요.

여기는 라면만 팝니다. 맵기를 조절할 수 있는데, '옐로우', '오렌지', '레드' 순으로 더 맵습니다. 처음엔 멋 모르고 오렌지를 시켰다가 매워서 고생했습니다. 각각 덜 맵게, 더 맵게 주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옐로우 맵게' 도 제 입엔 맵습니다.


국물 안에 계란이 두 알씩 들어가 있습니다. 조롱이떡, 콩나물, 김까지 기본 토핑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슬라이스 치즈, 눈꽃 치즈, 유부, 파, 레몬 등을 취향대로 넣어 먹습니다. 공깃밥도 무료입니다. 그렇다 보니 근처 학생들이 자주 옵니다.



오전에 오랜만에 옛사람 SNS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제가 찍어줬던 사진은 없고, 이제 새로운 사람이 찍어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제가 데리고 가던 곳 보다 고급스러운 곳에서 제가 사주던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저와 함께 있을 때 보다 환하게 미소 짓고 있더군요. 결국 제가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맵고 짜서 늘 남기던 국물을 오늘은 끝까지 다 들이켭니다. 속이 좀 쓰립니다.

라면 1그릇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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