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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Oct 06. 2020

점심에 마파두부덮밥 먹었습니다.

2020.6.27.

저는 전형적인 충청도 남잡니다. 느리고 둔하며 무디고 긍정적입니다.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데서나 잘 자고 누구한테든 잘 맞춰줍니다. 그런 제가 요즘 잠을 잘 못 잡니다. 드는 건 잘 드는데, 자꾸 새벽에 깹니다. 여러 번 그러다가 오늘에야 자각했습니다. 아, 내가 요즘 잠을 잘 못 자는구나.

아침에 출근했는데 직원이 한 명뿐입니다. 새로 뽑은 알바 두 명이 다 결근입니다. 왜 꼭 이런 날엔 환자가 더 몰리고, 왜 꼭 이런 날엔 컴퓨터가 말썽일까요. 접수하고 침놓고 발침하고 겨우겨우 챠팅 하고 그러다 원성을 듣고 사과하고 또 침놓고 발침 하고... 결국 오늘 쉬기로 한 직원을 출근시켰습니다. 잘 못 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후 한 시. 지난주까진 퇴근시간이었지만, 진료를 늘린 이번 주부턴 점심시간입니다. 토요일 낮술도 못하고. 이게 사는 건가요. 아무튼 밥 먹으러 갑니다.


흐린 날 따릉이는 정말 최곱니다.

마파두부덮밥 하나 주세요.

만두집인데 마파두부가 더 유명하답니다. 옆 테이블은 여러 메뉴 시켜 나눠 먹고 있습니다. 남자 둘이라 딱히 부럽진 않습니다.


반찬은 김치와 깍두기가 답니다. 마라향이 강렬하게 올라옵니다.


예전엔 마파두부가 마늘, 파, 두부인 줄 알았습니다. 순전히 식물로만 만든 음식을 왜 돈 주고 사 먹나 생각했습니다. 마라 맛을 안 뒤로는 마파두부도 맛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식물로만 만든 음식인 건 그대로인데 말이죠.


접시가 작아 비비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비빔밥을 괜히 양푼에 비비는 게 아닙니다.

아예 김치와 단무지도 다 넣어서

한 번에 비벼줍니다.

마라의 얼얼하고 매운 정도가 적당합니다. 초피의 향이 풍부하면서도, 먹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지는 않습니다.


인기가 있을법한 맛입니다. 그러나 같은 가격으로 전주식당에서 한 상 가득 제육볶음백반을 먹을 수 있음을 고려하면, 가성비는 좀 떨어집니다.

카운터 알바가 바이링걸입니다. 주방과는 중국어로, 손님과는 한국어로 대화합니다. 저에겐 없는 능력입니다.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네.

옆 테이블에서 김치를 요청합니다. 추가 반찬은 셀프지만 바이링걸 알바는 아무렇지 않게 김치를 추가해줍니다. 표정에 미동 하나 없습니다. 저 알바도 밤에 잠을 잘 못 잘 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파두부덮밥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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