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하니, 보기 싫은 면상(面相)들만 떠오르네!
"핑크색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 머릿속에는 핑크색은 아니라도 대충 코끼리 비슷한 게 떠오릅니다.
강의를 하면 참석자 중 꼭 한 분은 제게 명상 관련 질문을 합니다. 그럼 저는 "명상을 왜 하시려고 하세요?"라고 물어봅니다. 떠오르는 잡 생각들을 없애기 위해서라 답변하십니다. 그럼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오히려 생각을 없애는 생각에 집중하게 됩니다.
생각을 없애는데 집중할 때, 의도치 않게 동반하는 일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없애야 될 생각이 떠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원치 않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원치 않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부터 하게 됩니다.
생각을 없애야지라는 행위는 생각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역설적으로 잡생각을 없애는 행위가 잡생각을 더 부르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가리켜서 리바운드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생각을 불러들이고, 다시 그 생각을 없애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에너지가 낭비됩니다. 청소를 하기 위해서 일부로 쓰레기는 버리고, 어지럽히는 사람은 없겠지요. 눈 앞에 보이는 쓰레기만 청소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없애려고 명상하는 것은 생각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부자연스럽게 생각을 불러냈고, 잘 돌려보내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가 큽니다. 그래서 명상을 한다고 했다가 더 스트레스받는 악순환을 겪습니다.
사실 생각을 없애는 단계는 명상의 맨 끝 단계라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생각 없애기를 시도해서 없애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런 느낌이 들더라도 위에 말한 것처럼 억누르면서 그렇다고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럼 마지막 단계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가 뛰기 전에 걷기, 걷기 전에 기는 단계를 거치듯 쉬운 단계들이 있습니다. 생각을 없애는 단계 이전에는 생각을 바라볼 수 있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생각과 친해지는 단계입니다.
보통 감정과 함께 생각이 떠오릅니다.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채고, 나에게 득이 되는 생각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감정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것이 바라보는 단계입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단계에 먼저 익숙해져야 생각을 없애는 단계(저는 흘려보내는 단계라고 부릅니다)로 갈 수 있습니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생각을 없애려고 억누르면 생각의 나무들은 기를 쓰고 빽빽하게 뿌리를 뻗어갑니다.
감정과 함께 떠오른 생각을 바라보고 그들이 떠오른 이유를 온전히 느끼고 그 생각을 향해서 미소 지어주고, 용서해보고, 혹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줄 때(글 마지막에 이 행위를 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떠오른 생각들은 자기 할 일을 마치고 가벼워져서 자리를 뜨거나 흘러갑니다. 생각을 억누르면 생각은 더 무거워지고, 흘러가거나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SNS에 악플이 달렸을 때, 그 악플을 누르기 위해 방어하는 논리를 가져다 싸우고 욕하거나 차단을 시키면, 악플은 점점 더 힘이 세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자신에게 동조하는 세력을 데리고 와서 더 큰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듭니다.
상대가 악플을 달 수밖에 없는 환경을 상상해보고, 인정하는 말을 쓰고 마음에서 용서를 하고, 일어났던 감정적 동요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게(글 마지막에 이 행위를 한 단어로 표현합니다.) 악플의 힘이 빠지고 스쳐가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에너지를 아끼는 게 낫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바라볼 줄 모르고 그들과 친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통제하는 게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이런 단계를 건너뛰고는 생각을 없애거나 흘려보내는 단계로 갈 수 없습니다. 억지로 억누르면서, 생각이 없어진 단계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명상의 효과가 없는 데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될 것 같아서 스트레스와 답답함만 더 쌓일 뿐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라보는 단계 역시 어렵습니다. 계속 나를 봐달라는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도 고역입니다. 단지 생각을 억누르는 것보다 쉽고 그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단계 조차 어렵기 때문에 그 이전에 거칠 단계가 있습니다.
지금 몸의 각 부위를 떠올리면 각 부위로 의식을 옮기실 수 있나요? 지금 글을 읽으면서도 해볼 수 있습니다.
왼쪽 무릎에 의식을 집중해보세요. 잘 안되면, 눈을 감고 호흡에 푸른빛을 실어서 무릎까지 보내고 거기서 빛이 난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다음은 정수리에 의식을 집중해보세요. 의식이 이동하는 게 느껴지나요?
다시 오른쪽 엄지발가락 끝에 의식을 집중해보세요. 의식이 이동하는 게 느껴지나요? 생각보다 쉽게 되는 분도 있고, 잘 안 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를 하다 보면 얻는 영감이 있습니다. 물질화된 몸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의식을 보내기도 어려운데 비 물질화된 생각을 통제하고 없애는 단계 먼저 집착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을 통제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라앉히고, 생각이 사라지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생각이 텅 빈 상태가 되었을 때, 그곳을 채우는 놀라운 생각의 씨앗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마주하며 제대로 느끼고, 바라보고 흘려보내다 멍해지는 상태, 잠깐 빈 상태에서 이전에 연결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연결되면서 특별한 솔루션과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억지로 생각을 없애며 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운 좋게 터득하는 경우도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분 공식을 외워서 미분 값을 빠르게 구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수학 문제 하나를 빨리 해치우기 위해서 미분 공식을 사용하면 쉽게 답을 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 해결할 수 있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고민할 기회는 사라지고 재미도 없어집니다. (수학 공식만 달달 외워 점수를 잘 받고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해야 되는 단계에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생각을 없애는 단계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 익숙해지고, 터득해야 할 단계가 존재합니다. 그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그 단계에 이른 것 같은 착각에 익숙해지는 것은 지금 당장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는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명상을 하면서 더 힘들어졌다고 저에게 털어놓는 분들은 보통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명상은 어렵고 힘든 과정일 거야 라는 상을 가지고 극기 훈련하듯이 접근하면 명상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집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명상에 대한 상을 죽여야 된다고 제가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 보다 더 쉬운 단계도 있습니다. 몸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쉬운 단계는 호흡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우리는 호흡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찰 대상이 아닐 뿐입니다.
호흡이 들어갔다 나왔다만 관찰해보는 단계에 익숙해지면, 그다음 몸을 인식하는 것도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그다음 생각을 바라보는 것도 수월해집니다. 그 출발은 호흡에 대한 관찰입니다.
지금 글을 보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수련입니다. 운동하면서 호흡을 관찰하는 것도 저는 명상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랑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호흡이 불규칙해짐을 보는 것도 명상이라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게 사실은 명상인 것입니다. 하루 종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쉽게 정복됩니다.
혹시나 호흡 관찰에 익숙해진 느낌이 들었다면,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 사이에 끊김이 없도록 호흡하면서 관찰해보세요. 좀 더 호흡에 집중할 수 있고, 몰입한 상태에 잘 도달하기 위해 깨달은 분들이 사용하는 호흡 방법이라 합니다.
실패에는 적극적인 실패와 소극적인 실패가 존재한다고 하지요. 이 중에 우리에게 도움되는 실패는 어떤 실패일까요?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도전하면서 맞이하게 되는 적극적인 실패일까요?
실패하기 싫어서 피하기만 하다가 궁지에 몰려서 맞이하게 되는 소극적인 실패일까요?
맞습니다. 첫 번째가 도움되는 실패입니다. 실패를 피하려다 맞이하는 실패는 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적극적인 도전 가운데서 실패할 때 대비도 유리하고 성장에 더 도움이 됩니다.
생각을 없애는 명상에 접근하는 방식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피하고, 억누르면 나중에 감당하지 못하는 생각의 쓰나미에 휩쓸리게 됩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친해지고, 통제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명상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일단 몸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될 것 같고, 조용한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상을 우리는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명상하지 못하는 명상을 하게 됩니다.
명상을 뜻하는 meditation이라는 단어는 곰곰이 생각하고, 마음을 조사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좋지 않은 것을 없애고 치유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의미는 상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어있는 자리에 특별한 생각의 씨앗이 돋아나는 것을 떠올리면 두 가지 의미는 공존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비우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채우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거의 동시에 두 가지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자연스러운 단계이고, 떠오르는 생각을 관찰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여기서 관찰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이 어떤 뜻을 가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관찰)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앞에 언급했던 한단어 표현은 사랑입니다)있는 그대로 올라오는 생각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을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일부로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랑 때문에 나에게 필요한 생각은 머물 것이고, 불필요한 생각은 자리를 뜰 것입니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어렵고 힘들기만 한 명상을 죽이고, 앞서 알려드린 것 중에 지금 자신에게 가장 쉬운 단계를 찾아서 틈나는 대로 시도하면 살아있는 명상을 하게 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긴 글을 써봤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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