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제로포인트는 속초 영금점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속초는 해파랑길과 사잇길을 걷기 위해 여러 번 왔던 곳이라
낮에는 익숙한 도시였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어둠 속에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같은 거리도 낯설게 느껴졌다.
요즘처럼 제로포인트 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경로 안내도 없었다.
그냥 네이버지도와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후기를 참고해
소공원까지 스스로 찾아가야 했다.
자정에 영금점을 출발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깜깜한 밤이라 오직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만 보고 걸었다.
지도는 생각보다 외진 골목을 안내했고
그 길을 따라가면서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사람 하나 없는 시간,
불 꺼진 골목,
조용한 바람.
낮에 수없이 지났던 거리도
밤에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그러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터졌다.
멀리서 사람이 다가오니
개도 자기 역할을 다하는 거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동네 강아지에게 물린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개를 무서워한다.
그래서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그래도 목줄은 했겠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개는 대형견이었다.
담을 거의 넘을 듯이 짖어대고 있었고
그 소리에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목줄이 있었지만
그 앞을 지나가는 몇 초가 꽤 길게 느껴졌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 도로가 보였을 때
그 자리에서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혼자 걸어오다 보니
그 한마디가 잠깐 멈추게 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대로변으로 걸었다.
밝은 가로등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됐고
그제야 속초에서 여러 번 보았던 익숙한 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소공원 가는 길 맞네.”
그 말을 속으로 내뱉으며
힘이 조금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설악산을 향한 진짜 여정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그 첫걸음은
낮보다 밤이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