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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Jun 07. 2024

저 경계 너머

낯선 상상 #1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거대한 도시의 삶은 굉장히 틀에 박혀 있다.

마치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딱히 불편하거나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족스러운 직업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각자만의 삶에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연도와 월(月)을 측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이 몇 년도인지 몇 월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


역사책에 기록된 내용으로는 2050년도에 엄청나게 발전한 AI로 벌어진 어떤 사태 이후 인류는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단지 이 한 줄만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대로라면 2050년 이후로는 측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연도와 월(月)을 측정하지 않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딱히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마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같았다.


시간의 개념은 그저 하루라는 단위와 계절의 변화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마치 멈춰진 삶과 비슷하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유로운 삶이라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각인 돼버린 것이다.


나는 도시의 경계를 바라보고 있다.


왜 사람들은 저 경계 너머에 존재할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나의 삶은 만족스러운가?


분명 나의 삶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번듯한 직업을 가진 나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마크. 뭐 하고 있어?"


제임스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넋을 잃고 그 경계를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 제임스! 잠깐 쉬고 있었지."


"저 경계를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아니야. 그냥 하늘을 보고 있었다네"


마크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새벽에 그 경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경계를 넘어섰다.



Tethered Moon - Que Nadie Sepa Mi Soufrir (1999년 음반 Chansons d' Édith Piaf)


그로부터 60년이 지났다.


마크는 이제 이곳에서 꾸렸던 가족들이 전부 모인 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간이 나에게 왔구나.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은 그 도시의 경계를 넘어 이곳으로 온 것이라네.

이곳은 시간이 존재했고 치열한 삶을 살아왔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열정이 넘쳤던 삶이었네.

그전까지 나는 시간의 압박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네.

하지만 이곳은 시간이 흘렀고 그에 따른 조급함도 있었다네.
우리네 삶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이네.

우리의 삶을 위한 투쟁도 하게 되었지.

그 도시는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면 되니까 투쟁도 그 어떤 것도 없었거든.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신에게 묻고 싶었다네.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인지 말일세.

물론 그 도시의 삶도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고 있네.

하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것이 궁금하군....


말이 끝나고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으며 마크는 치열했던 그의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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