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상상 #29
리나가 눈을 뜨는 시간은 언제나 해가 떨어지는 늦은 저녁이다.
밝은 빛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창백해진 그녀의 피부는 남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뱀파이어처럼 유난히 드러나는 송곳니는 더욱더 그녀를 신비롭게 만든다.
하지만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에 고통스러운 화상을 입기도 해서 언제나 낮에는 잠을 잔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제야 일어나 다른 사람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하며 지낸다.
그날은 세비야에서 온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녀의 주치의인 호르헤가 오는 날이다.
호르헤는 2주에 한번 그녀를 찾아온다.
"리나. 어디 아픈 곳이나 불편한 곳은 없니?"
"그저... 태양을 보고 싶어요."
호르헤는 아마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그녀를 지켜봤던 그는 10살이 되던 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면서 낮에는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를 자주 봐왔던 주민들도 그녀가 저녁에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소문이 다른 곳까지 퍼지면서 몇 해 동안은 그녀의 집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마늘 냄새가 났고 심지어는 말뚝과 십자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생겼다.
사람들이 자신을 뱀파이어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시간이 지나니 그리 힘든 게 아니었다.
오히려 리나가 정말 힘든 것은 그럴수록 밝은 곳에서 친구들과 지내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홀로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호르헤 아저씨.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나요?"
언제나 어두운 밤에 홀로 있던 그녀에게 호르헤 아저씨는 집 밖의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일한 창가였다.
스페인의 전역을 다니는 호르헤는 그날도 역시 리나에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그녀에게 해주었다.
호르헤는 그녀의 삶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했다.
"리나야. 아저씨가 언제 한번 마차를 준비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구나. 내가 카를로스에게 부탁을 해보마."
몇 달 후 호르헤는 리나의 아버지 카를로스에게 허락을 얻어내고 카를로스와 함께 리나에게 세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카디스에서 출발해 호르헤가 있던 세비야를 거쳐 마드리드 그리고 여러 도시를 지나 빌바오로 향했다.
그녀의 마지막은 빌바오의 소펠라나의 바닷가였다.
거친 숨을 내쉰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바닷가를 향해 빌었다.
"태양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달이 되고 싶어요. 그나마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 같으니까요."
그리고는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늘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듯 태양은 지고 서서히 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dedicated to Fred Buscaglione’s Guarda Che 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