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by 김유리

김장은 겨울철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김치를 많이 담가서 저장하고 먹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의 김장은 필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겨울철에도 먹을 게 풍부하고, 마트나 편의점, 인터넷 등 어디서든 김치를 사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김장은 여전히 겨울철 하나의 풍경이다.


어린 시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엄마가 묻히는 김치를 옆에서 참새 처럼 입을 벌려 받아먹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집 앞마당에 땅바닥을 파서 장독을 묻어 김치를 보관하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요즘도 시골에서는 김장철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김치를 무치고, 한쪽에서는 고기를 삶아 갓 무친 김치에 거하게 한잔하기도 한다. 나의 어린시절 부터 지금까지 매년 우리 집은 김장을 해왔다.

집 앞 마당에 묻었던 김장독에서 지금은 집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치냉장고로 바뀌기 까지.

여전히 김장은 우리 집의 연례행사다.


어릴 땐 엄마가 김장을 할 때 면, 옆에서 지켜 보는 게 좋았다.

분주한 엄마의 모습이 바쁘고, 힘들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활기가 느껴졌던 거 같다.

엄마가 방금 무친 김치를 맛보라며 입에 넣어 줄 때면, 기분이 좋았다.

어린아이에게 매운 김치였는데, 엄마에게 계속 달라고 했었다. 그러다 배탈이 났던 기억도 난다.


내가 자랄수록 엄마는 늙어갔다.

젊었을 땐 엄마 혼자 하던 김장이 더 이상 엄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때부터 였다.

김장이 싫어 진 게. 왜냐하면 내가 같이 해야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못됐다.

김장은 정말 귀찮고 힘든 일이였다. 배추를 씻어서 소금에 절이고, 김치 속을 만들기 위해 무와 갖가지 채소들을 다듬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였다.


사춘기 때는 김장하는 날에 일부러 약속을 잡아 나가곤 했다.

그렇게 나갔다 오면 김장은 엄마와 아빠가 다 끝내놓았고, 두 분은 시름시름 몸살을 앓곤 했다. 그러게 김장을 왜 굳이 해서 저렇게 힘들어 하나라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했다. 엄마의 고집이. 김장에 대한 집착이.

‘나는 김치 안 먹을 거니까 김장 안 해.’ 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 김장은 서로 설득되지 않는 주장의 연속이였다.

나는 김치 사먹자. 주의 였고. 엄마는 곧 죽어도 김장 집에서 해야 한다. 주의 였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진짜 하늘이 무너 진다는게 이런거구나. 처음으로 느낀거 같다. 그 당시에 진짜 심정이 차라리 나 데려가라고, 우리 엄마 데려가지 말고, 나 데려가라고 속으로 계속 빌었었다. 엄마는 신경통이 있었다. 신경통 검사 때문에 CT 를 찍었었고, 거기서 폐에 종양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1.5cm 정도 되는 작은 결절 같다고 했다. 신경과 의사가 호흡기내과가서 정밀하게 검사해 보라고 했지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했다. 그 이후, 3개월인가 지났을때, 신경과 의사가 호흡기내과 가봤냐고 물어봤는데, 엄마가 안갔다고 하니까, 큰일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빨리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제야 엄마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호흡기내과 진료를 보게되었고, 의사가 CT를 보더니, 결핵을 앓았던 적 있냐고, 결핵이 지나간 흔적 같다고, 근데 확실히는 검사를 해봐야 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폐암 판정을 받았다.


폐암 수술 후, 엄마의 옆구리에는 작은 튜브를 꼽혀있었다. 폐에 고인 피를 빼내기 위해서 며칠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 피를 잘 나오게 하려면, 많이 걸어야 된다고 했다. 엄마랑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걷곤 했다. 엄마는 수술통증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혼자는 못 일어 났다. 몸을 일으키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엄마를 일으키고 눕히고, 같이 밥 먹고, 병원에서 엄마 옆을 지켰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엄마랑 이렇게 많이 대화를 나눴던 게 언제 였던가.. 라는 생각. 사춘기를 겪으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을 가면서, 어느새 엄마는 항상 뒷 전 이였던 거 같다. 병원에서 엄마를 돌볼 때, 엄마의 뒷모습을 많이 봤었다. 아.. 엄마는 그 동안 이렇게 내 뒷모습을 봤겠구나. 외로웠겠구나. 병원에서 나가면 엄마랑 많은 시간 보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엄마는 병원생활을 하던 중에도 김장 걱정을 하였다.

그 놈에 김치, 김장.. 그게 뭐 길래.

본인이 아파 누워있는 와중에도 식구들 목구멍으로 들어갈 김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엄마의 폐암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 여서, 수술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의 고집대로 김장은 계속 되었다.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아버지와 나 동생은 거실에 모여 김장을 했다.

지겨웠던 김장이 그날은 즐거웠던 거 같다.

우리 집은 여전히 매년 김장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에 김장의 귀찮음을 느꼈지만,

엄마의 퇴원 후, 김장 하던 그 날을 기억하곤 한다.

더 이상 엄마의 김장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으리.

그리고 생각한다. 언제 가는 먹고 싶어도 못 먹는 날이 올 텐데.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지.


엄마에게 김장하는 방법을 적어 달라고 하자 엄마는 이렇게 적어 줬다.

‘배추 고를 때 속이 노랗고, 배추 갓이 얇고, 길이는 짧고,

겉잎이 진한 녹색이고, 아주 큰 것보다 보통인 배추를 고르는 것이 좋다.

배추 절일 때는 소금은 천일염 관수를 뺀 소금.

소금은 배추절일만큼 물에 소금을 푼다.

다음은 배추를 반으로 갈라서 소금물에 배추를 푹 적신다.

적신 배추를 건져서 배추 사이사이에 소금을 조금씩 뿌린다.

다음은 세시간 후에 배추가 절여졌으면 배추를 3~4번 행군다.

다음은 배추가 물이 쪽 빠질 때 까지 둔다.

다음은 배추 속을 만든다. 배추 속은 고춧가루, 세우젖, 멸치액젖, 마늘, 쪽파, 갓, 생강, 매실청, 깨소금, 찹쌀 풀을 적당하게 넣어서 골고루 석는다.

다음은 배추에 속을 배추사이사이에 무친다.

다음은 김치통에 김치를 차곡차곡 넣으면 끝이다.‘

나는 그 종이를 여전히 잘 갖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김치 그 까짓 것 안 먹으면 그만 이라고, 혹은 사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면, 어떻게 김치를 안 먹냐고, 돈 아깝게 뭐하러 김치를 사먹냐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김치는 집에서 담가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그런데, 라면에 김치 없으면 아쉽고, 세상 어느 김치보다 엄마김치가 가장 맛있다.

고춧가루 팍팍 뿌리고, 소금 팍팍 뿌려서 한철 푹 익히고 나면, 깊은 맛을 내는 김치처럼 서로에게 독한 말 하고, 상처 줘도 결국은 사랑으로 보듬는 게 가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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