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장 생활칼럼
문득 아침에 일어났는데 새벽에 겪은 일이 꿈같이 느껴졌다. 새벽 세시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
“아랫집이에요”
아랫집? 아랫집은 한국 가족이 사는데 누구지? 문을 열어보니 웬 중국 아줌마 한분이 서있었다.
“혹시 청소기 틀고 계세요?”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청소기를 틀어요? 저 지금 자다 나온 거 안 보이나요?”
그때서야 이 아줌마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내가 몇 호 사시는 분이냐고 물어보니 우리 밑집의 건너편 집이었다. 아니 우리 밑 집도 아닌데 우리 건너편 집에게 물어봐야지 왜 우리 집에 물어보나?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다시 잠을 청하는데 귀신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에 살면 참 많은 일을 겪는다. 윗집에 물이 세거나 층간 소음에 시달리거나 보수 공사를 하면 매우 곤역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처음 이사 오고 나서 작업실에서 가져온 음향기기를 시험 운전하는 날이었다. 오후 두시쯤 음악을 틀어 점검을 하는데 아랫집 한국인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소리가 크다고 놀랬다고 하시어 나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직접 방문하여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김치나 맛있는 음식을 하여 나누며 정감을 나눴다. 요즘은 오후 네시부터 해지기 여섯 시까지 발성연습과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아주머니는 많은 이해를 해주신다.
반대로 우리 윗집은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 쿵쿵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난감할 때가 많다 거기다 오십대로 보이는 중국인 부부가 부부싸움을 자주하여 고성과 물건 부숴 지는 소리가 자주 난다. 그것도 낮시간에 나는 하는 수없이 항의를 해볼 까 하다가 기발한 생각을 했다. 부부가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노래방 기기를 틀어 화해와 사랑에 관한 노래를 불렀다. 소리를 크게 하여 윗집에 전달될 수 있게 하였는데 소리에 특성상 노래는 하늘로 전달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대 없으면 난 못살아”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도대체 내가 왜 이런지 몰라”
한바탕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윗집의 부부싸움 소리는 간데없고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나는 흥에 겨워 분노를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좋고 윗 층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누군가가 반응한다는 것을 인지해서 좋다. 또 음악은 사람을 치유한다 고 하지 않던가! 가사는 알아듣지 못해도 그 멜로디에서 상처 받은 영혼들의 치유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밑에 집 한국 아주머니도 부부싸움 소리보다는 노랫소리가 그나마 듣기 좋을 테니까. 아마 윗집 노부부는 부부싸움하기 전에 아랫집 뚱땡이 총각이 노래 부르니까 싸우지 말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 층에는 모두 여섯 가구가 사는데 우리 집 주방과 맡다 있는 유 씨 할머니는 혼자 사신다. 가끔 내가 떡도 갔다 드리고 말동무도 해드리며 인사하는 사이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가스 불을 안 끄고 외출하시는 바람에 불이 날 뻔한 적이 있다. 다행히도 내가 백방으로 연락하여 더 큰 사고는 막을 수 있었지만 할머니의 눈빛에 약간의 치매끼와 혼자 사는 독거노인의 외로움과 슬픔이 보여 가슴이 아려왔다. 사람이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기억의 저편에서 흐려지는 나를 보면 얼마나 슬플까? 처음 내가 이사 올 때보다 하루가 다르게 연세의 흔적이 짙어지시는 유 씨 할머니를 보고 있노라니 가족의 의미와 도시의 외로움이 번갈아가며 스쳐갔다. 사람이 많은 곳이 더욱더 외로운 것이구나.
인간들의 삶 속에서 특히 도시의 생활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강아지를 산책하며 알게 된 10년 지기의 아주머니 집이며 그 세월의 정은 이웃사촌의 연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작은 먹거리 하나라도 나눌 수 있는 세상 사람은 정이 있고 그 주변은 따뜻하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주변에 익숙한 얼굴이 있으면 인사해 보자.
안녕하세요!
그러면 하루가 즐겁다.
2019년 3월 27일 북경에서
2012년 독일 발행 아파트 인터폰 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