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글쓰기 미션 : 단편 소설
고흐는 사랑 의미를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살아가면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도록 만드는 것이 사랑의 원동력이라고 말하죠.
어느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끝없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은 삶에서 균형을 찾아갈 테니까요.
한쪽이 행복해지면 나머지는 필연적으로 그만큼 불행해지는… 그럼에도 그 행복과 불행을 나눠가짐으로써 우리는 균형을 찾는 거죠. 평범함이란 서로가 가진 행복과 불행을 나누고 참을 수 없는 것과 참을 수 있는 것을 교환하면서 찾아가는 게 아닐까요?
여러분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가요? 결혼은 사랑의 결실일까요? 완성일까요? 보완일까요? 단순한 가능성에 불과할까요?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게 결혼의 의미?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은 우리의 일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옵니다. 계절로 치면 요즘과 같은 한여름이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사랑해서 그리워서 함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서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 결혼을 선택합니다.
오늘은 사랑과 결혼 두 단어를 생각하며 두 가지 관점에서 글을 써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왜 결혼을 선택하셨습니까? 만약,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아름다운 순간에 어떤 선택(결혼)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선택이 궁금합니다.
- 공심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그러니까 내일 내가 결혼식을 하게 됐대, 1년 후도 아니고 한 달 후도 아냐 당장 내일이라고. 웃긴 것은 옆집 영훈이도 아니고 뒷집의 영식이도 아니라는 거야. 결혼식의 주인공이 나야. 바로 나라고.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대답 좀 제발 해줘. 눈앞이 까맣기만 해. 완벽하게 새까만 블랙이 존재한다면 바로 내 눈앞에 있으니 그걸 증명할 수 있다고 나는 색채를 채집하는 연구자에게 내 안구를 기증할 거야. 어쨌든 결혼식이 코앞이라고 하니 나는 이 벌어져서는 안 될 사태에 동참해야 하겠지. 이거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니냐고.”
“난, 단지 토요일 토스트 한 개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잠시 낮잠을 자다 깼을 뿐이라고 그런데 그다음 날이 결혼식이래. 와 진짜 살 떨리는 일 아니냐고. 너무 미치겠더라. 아니, 그것도 결혼할 당사자가 선미래. 아니 선미가 누구야. 기획실 막내 그 선미 맞아? 내 카톡에 선미가 왜 '사랑하는 여보'라고 되어 있냐고. 어떻게 내가 원수 같은 선미랑 결혼을 하게 된 거지? 설명 좀 해줘 봐. 내가 왜 이 이상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네가 해명 좀 해줘. 나와 선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네가 아는 사실을 전부 얘기해 줘.”
기훈은 일요일 낮잠에서 깨어났다. 아주 달콤하고도 깔끔한 그런 잠이었다. 시간적으론 짧았지만 아주 오래 잠을 잔 기분이 들게 만든 역사적인 낮잠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훈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이한 현상 때문에 기억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선미가 기훈에게 보고서에 자신의 이름이 누락된 문제로 온갖 악담을 퍼분 그날로부터 선미와의 결혼식을 앞둔 전날까지의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달콤함과 씁쓸함의 낯선 조합이라고 할까. 아무튼 기훈은 선미와 만나기 전, 그 시점으로 특정 구간이 완벽하게 소거되고 말았다.
긍정적으로 그 사건을 해석해본다면 기훈에게는 일종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기도 했다. 어쩌면 신이 전달한 최종 시그널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전으로 돌려버릴 만한 어떤 혁명적 찬스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는 그 사태에 대해 30년 지기 친구, 성재에게 전화로 털어놓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을지 말이다.
“그러니까. 네 말인즉슨 낮잠에서 일어났더니 너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고 하필이면 선미와 사귀기 전까지의 기억은 모두 온전한데, 그 이후의 기억은 너와 관계없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내일 결혼을 앞둔 남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거지? 야이 새끼야, 너 갑자기 변심이라도 한 거 아냐? 어디 다른 여자 숨겨놓은 거 아니냐고. 결혼식이 닥치니까 막 겁도 나고, 비혼 주의자들이 부러워지고 그러니 결혼을 물러야 할 것 같고 적당한 이유는 필요할 것 같은데,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란 게 고작 기억상실 따위 아니냐고. 야 무슨 삼류 막장 드라마 찍냐? 정신 차리고 내일 결혼식 준비나 제대로 해.”
성재는 한바탕 욕을 하더니만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기혼은 거실에 앉아 망각의 바닷속에 빠지고 싶었다.
“나는 내일 결혼해야 한다. 이 사실은 거짓이 아니다. 정보를 취합해 본다면 내가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대체로 없다. 어쩌면 드라마틱한 번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객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중대 발표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여기 서 있는 저는 분명치 않은 인간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그것조차 인식하기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신부 대기실에서 앉아 화사하게 색조화장을 끝마친 그리고 해맑게 웃고 있는 저 여자가 누군지 잘 모릅니다. 아니, 누군지는 잘 압니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제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선택은 제가 한 것이 맞습니다. 동시에 제가 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현재 기억 중에서 일부 구간이 까맣게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기억 중에서 일부가 암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하객들이 ‘그래, 그랬구나 그랬어. 너는 기억을 잃었구나. 그래, 불쌍한 녀석. 기억이 나지 않으면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래 그런 결혼이 무슨 소용이야. 여기서 결혼식을 엎도록 하자꾸나’ 이렇게 말해주려나” 그는 공상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남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기억상실증에 걸린단 말인가. 그런 일은 정신병원에 찾아가도 받아주지 않는다.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는 일만 당할 뿐이다.
“야,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내가 아까 이야기했잖아. 3년 전부터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오늘이 2002년이니까, 난 99년 밀레니엄 사건 이후, 기억나는 게 단 한 1초도 없다고. 와, 그러고 보니까 밀레니엄 1999 버그 큰 일 없었어? 난 그게 너무 궁금하네. 2000년에 대혼란이 찾아오진 않았어?” 기훈은 갑자기 중요한 기억이 되살아난 사람처럼 밀레니엄 버그에 대해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해 성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야, 근데 기억을 잃은 게 전부가 아니야. 네가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갑자기 몸이 노곤해지더라고. 그래서 또 낮잠에 빠졌지 뭐야. 난 어떤 기대를 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한다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기억을 회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한 거야. 낮잠 때문에 기억을 잃었으니까 낮잠 덕분에 일부분을 찾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난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다시 소파 위에 누워버린 거지.”
“그런데, 꿈에서 말이야 기막힌 일이 벌어졌어. 꿈속에서 나는 2022년 그러니까 정확히 20년 후로 옮겨졌더라. 와, 근데 네가 그 광경을 구경했어야 했는데, 정말로 기가 막혔어.” 기훈은 그러면서 그가 꿈에서 본 장면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도대체 뭔데 내 인생에 개입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관심 같은 거 1도 없잖아. 갑자기 왜 친한 척하고 그러냐고. 그냥 평소처럼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 서로 신경 안 쓰면 편하잖아. 나도 아빠를 네 인생에서 지운 지 이미 오래됐다고."
"아니. 아빤 대화를 잠깐 나눠보고 싶어서 그래. 연수야 너는 늘 대화 자체를 거부하잖니. 아빠 이렇게 노력하려는데 왜 자꾸 우리는 멀어지기만 할까. 아빠도 노력할 테니깐 연수야 너도 노력 좀 해봐"
"무슨 대화? 웃기고 있어. 아빤 맨날 이런 식이야. 대화하고 싶다고 날 불러놓고 탸이르려고만 하잖아. 지금까지 대화 없이도 우리 집 잘 돌아갔잖아. 그냥 나에 대해서 신경을 그냥 꺼줬으면 좋겠어. 그게 아빠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야... 밖에 나가서 돈이나 잘 벌어와."
"꽝"
문 닫히는 소리가 번쩍 하고 집안을 들썩거리게 했다. 머릿속에 숯덩어리가 모조리 타들어가서 이제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빠진 상황을 더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까.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이제 마지막 남은 작은 희망의 온기마저 모두 태워버린 것 같았다.
딸과의 관계가 나빠진 것은 업무량이 부쩍 늘어난 무렵이기도 했다. 야근이 반복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나는 점차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오직, 돈이 전부라 믿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나마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했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그렇지만 채우면 채울수록 더 허기가 졌다.
전적으로 나를 이해해주던 선미도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선미에겐 특별한 친구가 없었다. 우린 대화를 자주 나눴었는데 일은 선미와 나를 격리시켰다. 일에 지친 어느 날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날을 그렇게 희미하게 기억한다.
"오늘도 늦었네. 메시지라도 좀 보내 주지..."
"늦는 게 뭐 어제오늘 일인가. 내가 얘기하지 않았어? 오늘도 많이 늦을 거라고 분명 얘기한 것 같은데..."
"당신 얘기 안 했어..."
"그래? 바빠서 깜빡 잊었나 봐. 머릿속에 일들이 꽉 차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 뭐. 피곤해 죽겠다. 빨리 씻고 자야겠어."
"오늘 연수가 말이야..."
"아 뭔데? 바빠. 내일 얘기하자 내일. 나 대충 씻고 자야겠어. 내일 아침에도 고객과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바로 자야 한단 말이야. 아침 일찍 바로 깨워줘"
"알았어..."
그날부터였다. 그 후 회사는 더욱 바빠졌다. 새로운 제품의 출시 일정을 지키기 위하여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진 시기이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 호텔 하나를 잡아놓고 TF팀을 몰아넣기로 계획을 세웠다. 일정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냐는 대표의 발언이 나왔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맹세해야 하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날로 TF 팀원들은 짐을 싸서 호텔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 한 달 정도의 시간이라면 양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말도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합사는 한 달은커녕 몇 달째 이어졌다. 일은 끝이 없었다. 새로운 요구 사항, 고객의 변심, 대표의 새로운 아이디어, 미래에 대한 부질없는 기대, 가망성 없는 희망을 우리는 여전히 붙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어느 순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욕심만을 채우는 이기적인 인간 같은 것으로.
“이게 내가 꾼 꿈이야. 와 이게 내 미래란 말이야. 나한테 딸이 하나 있고 그 딸의 이름은 연수래. 근데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도 한참 잘못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야. 연수가 나를 원수 대하듯 해. 신입 사원인 선미가 나를 원수 대하듯 그날 오해한 사건처럼. 20년 후의 연수도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어떤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데, 결과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어.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어. 난 아마도 미래를 잘못 살 게 될 것이 분명해. 그게 결혼 때문이라고. 난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낙제점을 받을 게 뻔하다고. 그런데 이런 비관적인 각본으로 미래를 맞을 게 뻔한데, 결혼을 해야 돼? 어쩌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신의 한 수 아니야? 신이 나에게 마지막 은총을 베푼 게 아니냐고”
"니체가 그랬잖아. 우리의 삶은 영원히 반복된다고. 어쩌면 꿈이 사실일지도 모르잖아. 너무나 생생해서 나는 꿈이 꿈으로 그칠 것 같지 않았어. 내가 그 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이를테면 결혼식을 번복하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결혼식장에서 폭탄선언을 하는 거야. 니체를 언급하면서 마치 산에서 바로 내려온 니체의 고양된 그 표정으로 니체처럼 말하는 거야. 영원회귀에 입각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똑같은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나는 그럼에도 그 결정론에서 비켜 서보겠다고 선언하는 거지. 난 지금 뭐라도 해야 되겠어. 내 운명이란 것에 맞서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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